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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재테크/호프만칼럼

협쟁(copetition)을 통해 상생(win-win)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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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쟁(copetition)을 통해

상생(win-win)하자!

 

 

 

바야흐로 졸업 시즌, 졸업식을 취재하는 기분으로 세 학교를 탐방했다. 졸업생의 학교생활이 담긴 동영상 상영을 제외하고는 예전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한 학교에서 시간을 재보았더니 한 시간 넘게 진행된 졸업식에서 막상 졸업장 수여에 소요된 시간은 단 3분이었다. 그에 반해 몇 명의 빛나는 수상자를 위한 시간은 지루할 만큼 길었고, 내빈 소개에도 상당 시간이 할애되었다. 사회자는 학교장상이 수석졸업자에게 주어진다는 점을 힘주어 강조했고, 졸업식장 입구에는 SKY와 의대 합격자 명단이 게시되어 있었다.

탈학교론자인 일리치(Illich)는 학교를 ‘강제적인 교육과정에 종일제로 참석해야 하는 연령 집단별 조직으로 교사와 관련이 된 기관’이라고 규정했다. 졸업식에서 대부분의 학생이 ‘○외 ○명’의 범주로 분류되는 현실을 목도하며 학교가 학생을 ‘소외’시킨다는 일리치의 냉소적인 해석에 공감하게 되었다. 최근에는 교육청의 권고와 교장의 의지에 따라 전체 학생이 단상에 올라 한 명씩 졸업장을 받고 다양한 공연이 곁들여지는 축제형 졸업식도 있지만 여전히 대다수의 학생을 들러리 세우는 졸업식이 더 보편적인 것 같다
.

 그런데 졸업식만 학생의 마음을 멍들게 하는 것은 아니다. 특정학교 합격자를 알리는 현수막 게시는 국가인권위원회의 자제 결정에도 불구하고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일부 학교에서는 수시합격이 유망한 학생의 스펙을 위해 상을 몰아주기도 한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조사에 따르면 최상위권 학생만의 특별반을 편성해 차별적 혜택을 제공하는 사례, 성적 우수자에게만 기숙사 혜택을 주어 스파르타식으로 훈육하고 심지어 급식까지도 성적순으로 배식하는 믿기 어려운 사례도 있다. 그렇다고 경쟁교육으로 일관하는 학교를 비난할 수도 없다. 명문대 합격자 수에 따라 매겨진 학교 등수가 공개되고, 순위에 들지 못하면 삼류로 취급받는 상황에서 초연할 수 있는 학교가 얼마나 될까?

 

 이와 관련하여 두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첫 번째는 소수의 학생이 부각되는 졸업식에서 탈피해 모두가 주인공이 되는 행사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어느 외국 학교에서는 졸업식 전에 수상자와 그 가족이 참석하는 별도의 시상식을 갖는다. 상장에 적힌 판에 박힌 문구가 아니라 수상 학생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들려주며 축하하는 화기애애한 자리다. 이렇게 되면 졸업식에서는 시상을 생략하고 졸업의 본질적 의미를 되새기는 데 집중할 수 있다. 또 다른 학교는 학급별로 작은 졸업식을 갖는다. 담임교사는 학생 모두에게 각각 이름을 붙여 상을 주는데, 학업에 대한 상뿐 아니라 유머가 풍부한 학생, 가장 그리울 것 같은 학생에게 주는 상도 있다. 마지막과 시작의 의미를 동시에 품고 있는 졸업식에서 모두가 수상을 함으로써 학생들은 자존감 속에 끝을 맺고 힘차게 첫발을 내딛게 된다.

  두 번째는 신문과 방송이 명문대 합격자수를 공개하지 않는 것이다. 학부모의 알 권리와 상충됨에도 불구하고 이런 제안을 하는 이유는 합격자 수가 학교 서열화를 조장하는 주범이기 때문이다. 합격자 수는 대학에서 제공한 자료를 통해 공식 보도되기도 하지만 사교육업체가 직접 조사해 ‘단독’의 제목으로 발표하는 경우도 있다. 고등학교 중에는 소신에 따라 자료 제출을 거부하는 곳도 있지만 순위에서 배제되면 학교 명예가 실추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응하게 된다. 앞으론 학교가 이런 조사에 일절 답하지 않도록 연대했으면 좋겠다
.

 양적 변화가 질적 개선을 선도한다고 했던가? 이런 변화가 누적되면 학교가 친구를 밟고 올라서야 하는 경쟁의 장(
)에서 배려하고 소통하는 협력의 장()으로 선회할 수 있지 않을까. 협력(cooperation)과 경쟁(competition)을 결합시킨 협쟁(copetition)은 경쟁자들이 서로 협력하면서 승자가 되어 이익을 최대화한다는 경영학 용어인데, 학교야말로 협쟁이 필요한 곳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관의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는 이를 반영해 올해부터 ‘협력적 문제해결’ 평가를 신설했다. 협력적 문제해결 평가에서 학생은 컴퓨터에 프로그래밍되어 있는 가상의 친구와 채팅하면서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의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적절하지 않은 전략을 내놓는 친구와 협의하면서 설득과 타협을 해야 하는데 이게 바로 미래세대에게 필요한 자질이다
.

 일등 지상주의의 척박한 학교 풍토를 개선하는 것은 쉽지 않다. 줄세우기 교육은 견고한 대학서열에서 비롯되었고, 그 이면에는 학벌의 지배를 받는 채용시장이, 그 기저에는 학력주의 가치관이 연쇄적으로 맞물려 있다. 하지만 졸업식의 개선과 합격자 수 보도 자제와 같은 작은 실천이 마중물이 된다면 학교가 보다 따뜻하고 인간다운 곳으로 변모할 수 있을 것이다
. 협쟁을 통한 상생, 그것이 살길이다!!

 ( 2015.2.18 박경미 홍익대 수학교육학 교수의 글을 읽고 느낀 소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