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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 시 모음

 

민들레 - 김상미


너에게 꼭 한마디만, 알아듣지 못할 것 뻔히 알면서도, 눈에 어려 노란 꽃, 외로워서 노란 꽃, 너에게 꼭 한마디만, 북한산도 북악산도 인왕산도 아닌, 골목길 처마 밑에 저 혼자 피어있는 꽃, 다음 날 그 다음 날 찾아가보면, 어느 새 제 몸 다 태워 가벼운 흰 재로 날아다니는, 너에게 꼭 한마디만, 나도 그렇게 일생에 꼭 한번 재 같은 사랑을, 문법도 부호도 필요 없는, 세상이 잊은 듯한 사랑을, 태우다 태우다 하얀 재 되어 오래된 첨탑이나 고요한 새 잔등에 내려앉고 싶어, 온몸 슬픔으로 가득 차 지상에 머물기 힘들 때, 그렇게 천의 밤과 천의 낮 말없이 깨우며 피어나 말없이 지는, 예쁜 노란 별, 어느 날 문득 내가 잃어버린 그리움의 꿀맛 같은, 너에게 꼭 한마디만.

 

 

 

 

민들레 - 김종상


봄이 오는 들판에
민들레 곱게 피네.
파아란 하늘에
노오란 별의 무리.


날개옷 선녀들이
별 찾아 날아드네.
나풀나풀 춤추며
꿀을 따는 나비들.


봄이 가는 들판에
민들레 다 늙었네.
하얗게 센 머리칼
바람에 흩어지네.


뿔뿔이 떠나가는
수백 개의 낙하산.
다시 별로 태어날
민들레 아기씨앗.

 

 

 

민들레 - 류시화

민들레 풀씨처럼
높지도 않고 낮지도 않게
그렇게 세상의 강을 건널 수는 없을까
민들레가 나에게 가르쳐주었네
슬프면 때로 슬피 울라고
그러면 민들레 풀씨처럼 가벼워진다고

슬픔은 왜 저만치 떨어져서 바라보면
슬프지 않은 것일까
민들레 풀씨처럼
얼마만큼의 거리를 갖고
그렇게 세상 위를 떠다닐 수는 없을까
민들레가 나에게 가르쳐주었네
슬프면 때로 슬피 울라고
그러면 민들레 풀씨처럼 가벼워진다고

 

 

 

 

민들레 - 신용목


가장 높은 곳에 보푸라기 깃을 단다
오직 사랑은
내 몸을 비워 그대에게 날아가는 일
외로운 정수리에 날개를 단다
먼지도 솜털도 아니게
그것이 아니면 흩어져버리고
그것이 아니면 부서져버리고
누군가 나를 참수한다 해도
모가지를 가져가지는 못할 것이다

 

 

민들레 - 이윤학


민들레꽃 진 자리
환한 행성 하나가
앉아 있는 것이 보인다.

가벼운 홀씨들이
햇빛 에너지를
충전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정거장도
아닌 곳에
머물러 있는 행성 하나

마음의 끝에는
돌아오지 않을
행성 하나 있어

뿔뿔이 흩어질
홀씨들의
여려터진 마음이 있어

민들레는 높이
안테나를 세우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민들레 - 이정하


이렇게 헤어지면
다시 못 만날 것 같은 예감이 들었지만
그대, 이제 보내드립니다
그동안 내 안에 갇혀 있었으므로
다시는 내게 갇혀 있지 않으려고
훨훨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시겠지만
기왕 맘 먹었을 때
그대 보내드리렵니다
그대 날 사랑하긴 했었나요?
날 보고 싶어하긴 할까요?
그런 생각마저 그대와 함께 보내려다
아아, 나는 문득
봄날 들판에 지천으로 흩날리는
민들레 홀씨를 보았습니다
보내고 나서야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저 가슴 아픈 사랑을

 

 

 

 

민들레 - 이해인


밤낮으로 틀림없이
당신만 가리키는
노란 꽃시계


이제는 죽어서
날개를 달았어요


당신 목소리로 가득 찬 세상
어디나 떠다니며 살고 싶어서
당신이 사랑하는 모든 사람
나도 사랑하며 살고 싶어서


바람을 보면
언제나
가슴이 뛰었어요


주신 말씀
하얗게 풀어내며
당신 아닌 모든 것
버리고 싶어


당신과 함께 죽어서
날개를 달았어요

 

 

민들레 - 정병근


영문도 모르는 눈망울들이
에미 애비도 모르는 고아들이
담벼럭 밑에 쪼르르 앉아있다
애가 애를 배기 좋은 봄날
햇빛 한줌씩 먹은 계집아이들이
입덧을 하고 있다


한순간에 백발이 되어버릴
철없는 엄마들이

 

 

민들레 - 정호승

 

민들레는 왜
보도블럭 틈 사이에 끼여
피어날 때가 많을까
나는 왜
아파트 뒷길
보도블록에 쭈그리고 앉아
우는 날이 많을까

 

 

민들레 - 최동현


먼 산엔 아직 바람이 찬데
가느다란 햇살이 비치는
시멘트 층계 사이에
노란 꽃이 피었다
나는 배고픈 것도 잊어버리고
잠시 황홀한 생각에 잠긴다
무슨 모진 그리움들이 이렇게
고운 꽃이 되는 것일까
모진 세월 다 잊어버리고
정신없이 살아온 나를
이렇듯 정신없이 붙들고 있는 것일까
작은 꽃이파리 하나로도, 문득
세상은 이렇게 환한데
나는 무엇을 좇아 늘 몸이 아픈가
황홀한 슬픔으로 넋을 잃고
이렇듯 햇빛 맑은 날
나는 잠시 네 곁에서 아득하구나

 

 

민들레꽃 - 조지훈

 

까닭없이 마음 외로울 때는
노오란 민들레꽃 한 송이도
애처롭게 그리워지는데,
 
아 얼마나한 위로이랴.
소리쳐 부를 수도 없는 이 아득한 거리에
그대 조용히 나를 찾아오느니.
 
사랑한다는 말 이 한 마디는
내 이 세상 온전히 떠난 뒤에 남을 것,
 
잊어버린다. 못 잊어 차라리 병이 되어도
아 얼마나한 위로이랴.
그대 맑은 눈을 들어 나를 보느니.

 

 

민들레 꽃씨들은 어디로 - 곽재구


그 날
당신이 높은 산을
오르던 도중
, 하고 바람에 날려보낸
민들레 꽃씨들은 다 어디로

하릴없이
무너지는 내 마음이
, 하고 바람에 날려보낸
그 많은
민들레 꽃씨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민들레 뿌리 - 도종환


날이 가물수록 민들레는 뿌리를 깊이 내린다.


때가 되면 햇살 가득 넘치고 빗물 넉넉해
꽃 피고 열매 맺는 일 순탄하기만 한 삶도 많지만


사는 일 누구에게나 그리 만만치 않아
어느 해엔 늦도록 추위가 물러가지 않거나
가뭄이 깊이 튼실한 꽃은커녕
몸을 지키기 어려운 때도 있다.


눈치빠른 이들은 들판을 떠나고
남아있는 것들도 삶의 반경 절반으로 줄이며
떨어져나가는 제 살과 이파리들
어쩌지 못하고 바라보아야 할 때도 있다.


겉보기엔 많이 빈약해지고 초췌하여 지쳐있는 듯하지만
그럴수록 민들레는 뿌리를 깊이 내린다.


남들은 제 꽃이 어떤 모양 어떤 빛깔로 비칠까 걱정할 때
곁뿌리 다 데리고 원뿌리 곧게 곧게 아래로 내린다.


꽃 피기 어려운 때일수록 두 배 세 배 깊어져간다.
더욱 말없이 더욱 진지하게 낮은 곳을 찾아서.

 

 

민들레 압정 - 이문재


아침에 길을 나서다 걸음을 멈췄습니다 민들레가 자진(自盡)해 있었습니다
지난 봄부터 눈인사를 주고받던 것이었는데 오늘 아침, 꽃대 끝이 허전했습니다
꽃을 날려보낸 꽃대가, 깃발 없는 깃대처럼 허전해 보이지 않는 까닭은
아직도 초록으로 남아있는 잎사귀와 땅을 움켜쥐고 있는 뿌리 때문일 것입니다
사방으로 뻗어나가다 멈춘 민들레 잎사귀들은 기진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것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해낸 자세입니다
첫아이를 순산한 젊은 어미의 자세가 저렇지 않을는지요
지난 봄부터 민들레가 집중한 것은 오직 가벼움이었습니다 꽃대 위에 노란 꽃을
힘껏 밀어올린 다음, 여름 내내 꽃 안에 있는 물기를 없애왔습니다 물기가 남아
있는 한 홀씨는 바람에게 들켜 바람의 갈피에 올라탈 수가 없습니다 바람에
불려가는 홀씨는 물기의 끝, 무게의 끝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잘 말라있는 이별, 그리하여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결별,
민들레와 민들레꽃은 저렇게 헤어집니다
이별은 어느 날 문득 찾아오지 않습니다 만나는 순간, 이별도 함께
시작됩니다 민들레는 꽃대를 밀어올리며 지극한 헤어짐을 준비합니다
홀씨들을 다 날려보낸 민들레가 입정처럼 땅에 박혀 있습니다

 

 

민들레 연가 - 이해인


은밀히 감겨간 생각의 실타래를
밖으로 풀어내긴 어쩐지 허전해서
날마다 봄 하늘에 시를 쓰는 민들레.

앉은뱅이 몸으로는 갈 길이 멀어
하얗게 머리 풀고 얇은 씨를 날리면
춤추는 나비들도 길 비켜가네.


꽃씨만한 행복을 이마에 얹고
해에게 준 마음 후회 없어라.

혼자서 생각하다 혼자서 별을 헤다
땅에서 하늘에서 다시 피는 민들레.

느티나무와 민들레 - 최두석


간혹 부러 찾는
수백 년 묵은 느티나무 아래
민들레꽃씨가
앙증맞게 낙하산을 펼치고
바람 타고 나는 걸 보며
나는 얼마나 느티나무를 열망하고
민들레에 소홀하였나 생각한다
꿀벌의 겨울잠 깨우던 꽃이
연둣빛 느티나무 잎새 아래
어느 새 꽃씨로 변해 날으는
민들레의 일생을 조망하며
사람이 사는 데 과연
크고 우람한 일은 무엇이며
작고 가벼운 일은 무엇인가 찾아본다
느티나무 그늘이 짙어지기 전에
재빨리 꽃 피우고 떠나는
민들레꽃씨의 비상과
민들레꽃 필 때
짙은 그늘 드리우지 않는 느티나무를 보며
가벼운 미소가 무거운 고뇌와
함께 어울려 사는 모습 떠올린다

 

Posted by 호롱불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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