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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방천동 김광석거리

2014.12.13

 

 

 

대구 방천동 김광석거리-2014.12.13

 

대구에 가면 김광석길이 있다. 가수 김광석(金光石), 그는 이곳 대봉동에서 나고 자랐다. 1964 1 22~ 1996 1 6일. 대한민국의 싱어송라이터이다. 1982년에 명지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하였고, 이후 대학연합 동아리에 가입하면서 민중가요를 부르고 선배들과 함께 소극장에서 공연을 시작하였다.

 

[1984]]에 김민기의 음반에 참여하면서 데뷔하였으며, 노찾사 1집에도 참여하였다. 이후 동물원의 보컬로 활동하면서 이름을 일반 대중에까지 알렸으며, 동물원 활동을 그만둔 후에도 통기타 가수로 큰 인기를 누렸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1996 1 6일 자살로 일생을 마쳤다. 향년 31 (대한민국식 나이 향년 33). 대표곡으로는 〈사랑했지만〉, 〈바람이 불어오는 곳〉, 〈서른 즈음에〉, 〈그날들〉, 〈이등병의 편지〉,〈먼지가 되어〉 등이 있다.

 

2007, 그가 부른 노래 중 하나인 〈서른 즈음에〉가 음악 평론가들에게서 최고의 노랫말로 선정되었다.

2008 1 6일에는 12주기 추모 콘서트와 함께 노래비 제막식이 열렸다. 노래비는 대학로의 학전 블루 소극장에 세워졌으며 조각가 안규철이 제작했다.

 

또한 2010년 그가 태어난 대구 대봉동 방천시장에는 그를 기리는 '김광석 거리'가 조성되어 350미터의 길에 김광석의 삶과 노래를 주제로 한 다양한 작품들이 들어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

 

 

 

대구 방천동 김광석거리-2014.12.13

 

방천시장은 수성교 옆에 자리한 재래시장이다. 수성교 벽면이 김광석길의 메인이니 바로 옆이라고 할 수 있다. 1945년 해방 후 일본과 만주에서 온 사람들이 장사를 시작하며 생성됐다. 포항의 죽도시장, 부산의 자갈치시장처럼 여기 방천시장도 해방과 625전후를 기점으로 만들어지고 성장했다. 당시 방천시장은 남도자락에서 올라온 곡물들을 판매했다고 한다. 매우 활발한 시장이었음을 알 수 있다. 좋은 시절의 얘기다. 한때는 대구 서문시장, 칠성시장과 더불어 대구를 대표하는 시장으로 손꼽혔지만 지금은 쇠락한 모습을 감출 수 없다. 시끌벅적한 장터의 모습은 흐려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숨소리는 들려온다.

 

 

대구 방천동 김광석거리-2014.12.13

 

 

시장이 다시금 주목을 받게 된 것은 2009년 김광석길과 더불어 문화예술가들이 이곳으로 몰려들면서부터다. 일상에서도 가장 치열한 일상, 시장으로 몰려온 예술은 불필요한 겉옷을 벗고 생기를 불어넣었다. 예술이 스러져가는 시장에 새 숨을 전한 것. 시장 구석구석은 예쁜 색색의 벽화로 덧칠되기 시작했고, 예술가들이 하나 둘 시장에 터를 잡았다. 그들이 뿜어내는 활기가 방천시장으로 전해지면서 이 생기는 다시금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여기에 정부 부처의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한 ‘문전성시’ 사업도 한몫을 더했다.

 

 

대구 방천동 김광석거리-2014.12.13

 

간신히 살아나긴 했지만 시장은 여전히 조용한 편이다. 곳곳에 자리잡은 갤러리들이 눈길을 끈다. 어디든 좋으니 마음에 드는 곳에 들어가 구경해도 좋겠다. 특히 데이트로 이곳을 찾았다면 시장통에 자리한 예쁜 카페에서 시원한 음료를 한잔 하는 것도 잊지 말자. 혼자라면 구석에 자리한 떡집에서 3000원이라는 가격에 황홀한 팥빙수를 맛보는 것도 좋겠다. 오래된 벽과 가게 간판은 간신히 시간의 끝에 매달려 있는 것 같다. 위태위태하지만 그래도 굳건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대구 방천시장 김광석 거리에는 유난히 '청춘'이 많다. 수많은 청춘이 김광석이 그려진 벽화 앞에서 셀카를 찍고 스피커에서 울려나오는 노래를 흥얼거린다.

 

 

[ 사진제공 ]

멋쟁이 사진작가

김태용님

 

 

 

 

 

Posted by 호롱불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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