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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사자성어

 

 설중방우(雪中訪友)

 

雪 눈 설 中 가운데 중 訪 찾을 방 友 벗 우

 

 

눈 속에 벗을 찾아간다. 이 고사성어는 중국 위진남북조시대 두 예술가의 이야기에서 비롯되죠. 한 사람은 왕휘지(王徽之)로 서예가 왕희지의 다섯 째 아들인데 그 역시 저명한 서예가죠. 또 다른 사람은 그의 벗 대규(戴逵)로 금을 잘 연주하고 그림에도 뛰어난 문인화가죠. 왕휘지가 산음(저장성 사오싱)에 머물 때였죠. 밤에 큰 눈이 내렸는데 잠에서 깨어나 사방을 보니 세상이 하얗게 변해 있었죠. 마음이 심란해진 그는 술을 내 오라 하여 큰잔에 가득 따라 붓고 '좌사(左思)' '초은시(招隱詩)'를 읊었는데 문득 섬계(剡溪)에 사는 벗 대규가 보고 싶어졌죠

그는 다짜고짜 작은 배를 띄워 밤새 섬계로 배를 저어 갔는데 아침에야 배가 대규의 집 앞에 이르렀죠
. '
有朋 自遠方來 不亦樂乎', '벗이 있어 먼 곳에서 오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하지만 대규는 그를 만나는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죠. 왕휘지가 문을 두드려 주인을 부르지 않고 그저 발길을 되돌려 버린 것이죠. 사람들이 까닭을 묻자 그는 다음과 같이 답하죠. "吾本乘興而來, 興盡而返 何必見戴"  (오본승흥이래 흥진이반 하필견대) "내가 원래 흥을 타고 왔다가 흥이 다해 돌아가노라. 어찌 반드시 대규를 보아야 하겠는가?" 결국 그가 추구한 것은 내면의 진심과 자유, 그리고 편안함이었죠.
 
'
乘興而來 興盡而返(승흥이래 흥진이반)' 눈내리는 날이면 옛 문사들은 이 고사의 흥취를 떠올리면서 시문을 짓고 그림도 많이 그렸죠. 이중에 삼봉 정도전의 '설중방우(雪中訪友)'와 회재 이언적의 '신설(新雪)'을 한번 감상해 볼까요. 雪中騎馬訪韓生(설중기마방한생) 눈 속에 말을 타고 한생을 찾아가니 直到門前尙未晴(직도문전상미청) 문앞에 당도해도 눈은 아직 개질 않네  返路也乘餘興去(반로야승여흥거) 돌아가는 길에도 남은 흥을 타고 가리니 風流何似剡溪行(풍류하필섬계행) 풍류에 굳이 섬계의 옛일을 들먹이겠는가

고려에서 조선으로 교체되는 격동의 시기에 역사의 중심에서 새 왕조를 설계하였으나 자신이 꿈꾸던 성리학적 이상세계의 실현을 보지 못하고 끝내 정적의 칼에 단죄되어 조선 왕조의 끝자락에 가서야 겨우 신원 되는 극단적인 삶을 살았던 삼봉, 이 시를 볼 때보다 피도 눈물도 없는 비정한 정치가가 아니라 따뜻한 인간미의 그의 모습을 보게 되네요.

다음으로 회재의 시를 감상해 볼까요. 회재는 정여창, 김굉필, 조광조, 이황 등과 함께 '동방5'으로 불릴 정도로 조선 성리학을 대표하는 인물이죠
. 특히 조한보와 네 차례에 걸쳐 벌인태극무극논변(
太極無極論辨)'은 퇴계로부터이단의 사설(邪說)을 물리치고 성리학의 본원을 바로 세웠다는 평가를 받은 바도 있죠.
新雪今朝忽滿地(신설금조홀만지) 아침에 첫눈 내려 천지를 가득 덮으니 況然坐我水精宮(황연좌아수정궁) 황홀하게 수정궁에 나를 앉혀 놓았네 柴門誰作剡溪謗(시문수작섬계방) 사립문에 누구인지 섬계 찾아 왔으려나 獨對前山歲慕松(독대전산세모송앞산에 소나무만 홀로 마주하네

대성리학자인 그도 혼자 앉아 곱게 내린 흰 눈을 바라보니 괜시리 마음에 흥이 일었으나, 이 아침에 사립문을 느닷없이 두드려줄 왕휘지 같은 벗이 없으니, 허전한대로 사시사철 푸르른 소나무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
歲寒然後(세한연후), 知松柏之後凋(지송백지후조)',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의 늦게 시듦을 안다.' (논어) 언제나 변치않고 한 모양으로 우뚝 서서 그의 곁을 지키고 있는 낙락장송, 결국 소나무는 회재 자신을 의미한다고 봐야겠죠.

 

독자여러분! 누구나 눈이 오면 보고 싶은 친구들이 있겠죠. 술도 한잔하고 쌓였던 이야기도 나누고·· 이럴 땐 훌쩍 찾아가 회포를 푸는 것이 일반적인 우리 일상이지만 그냥 보고 싶은 그 마음 그대로 간직한 채 멀리서 바라보면 더 애틋한 맛이 있지 않을까요? 때로는 왕휘지처럼 격식이나 틀에 얽매이지 않고 살아가는 자유스러운 마음, 운치, 여유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핸드폰으로 자기 필요한 편한 시간에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하고 상대방 상황은 고려하지도 않고 바로 전화를 안 받으면 짜증부터 내는 요즈음의 모드로 볼 때 이 고사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 진정한 우정은 '만남'보다 '마음'에 있는 것, 괜스레 힘든 날 턱없이 전화해 말없이 울면서 오래 얘기할 수 있는 친구보다는 눈빛만 보아도 서로 알고 어느 곳에 있어도 다른 삶을 살아도 언제나 위로가 되주는 친구가 더 필요하지 않을까요?

시간은 흐르고 모든 게 변해도 늘 푸른 나무처럼 항상 변하지 않는 친구가 진정한 친구가 아닐까요
? "Just as yellow gold is tested in the fire, so is friendship to be tested by adversity." (오비디우스) "황금이 불 속에서 시험되듯, 우정은 역경 속에서 시험된다." 이글은 비록설중방우는 아니지만 먼 곳에서 찾아간 벗을 환대해준 친구에게 바치며 친구의 사업이 힘차게 솟아 오르는 아침해처럼 '
旭日昇天(욱일승천)'하기를 바랍니다. (옮긴 글)

아~ 좋다!! 이래서 좋은 글은 마음의 양식이 된다고 하는 모양입니다!!  

 

 

Posted by 호롱불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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