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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미성지 야외행사 동영상

 

8분 15초의 떨림!

 

 

2015.5.16

 

 

 

 

 

 

주 예수 그리스오와 바꿀 수는 없네!

 

이 세상 부귀 영화와 권세도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신

예수의 크옵신사랑이여

주 예수그리스도와 바꿀 수는 없네

 

이 세상 부귀 영화와 권세도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신

예수의 크옵신사랑이여

세상 즐거움 다버리고

세상 명예도 버렸네

 

 

 

 

주 예수그리스도와 바꿀 수는 없네

세상 어떤 것과도

세상 즐거움 다버리고

세상 명예도 버렸네

주 예수그리스도와 바꿀 수는 없네

세상 어떤 것과도

 

 

 

 

 

 

주 예수 그리스오와 바꿀 수는 없네!

 

이 세상 부귀 영화와 권세도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신

예수의 크옵신사랑이여

주 예수그리스도와 바꿀 수는 없네

이 세상 부귀 영화와 권세도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신

예수의 크옵신사랑이여

세상 즐거움 다버리고

세상 명예도 버렸네

 

주 예수그리스도와 바꿀 수는 없네

세상 어떤 것과도

세상 즐거움 다버리고

세상 명예도 버렸네

주 예수그리스도와 바꿀 수는 없네

세상 어떤 것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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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아우구스티누스

[ Aurelius Augustinus ]

354.11.13~430.8.28

 

요약:

기독교의 가장 위대한 사상가

초대 그리스도교 교회가 낳은 위대한 철학자이자 사상가. 고대문화 최후의 위인이었다. 중세의 새로운 문화를 탄생하게 한 선구자였다. 주요 저서인《고백록》에서 관심을 가졌던 것은 신과 영혼이었다.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은 354 11 13일에 그 당시 로마의 통치령이었던 북아프리카의 누미디아 키르텐시스(Numidia Cirtensis) 지방에 있는 타가스테(Tagaste, 오늘날의 알제리에 있는 수크 아라스(Souk Ahras))에서 태어났다. 타가스테는 아우구스티누스가 주교로 있던 아프리카 북쪽 해안의 항구도시인 히포(Hippo)에서 내륙으로 8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그는 형제 중 장남이었다. 아버지 파트리키우스(Patricius)는 그리스도 신자가 아니었으나 370년 사망하기 전에 그리스도 신자가 되었고, 어머니는 가톨릭에서 성녀로 추앙하는 모니카 성녀이다.

 

어린 시절 아우구스티누스는 어머니 모니카를 통해 그리스도교의 관습과 신자들의 경건함을 접할 수 있었다. 열여섯 살 무렵에 그는 잠깐 마다우라(Madaura)에서 문법과 수사학을 공부했는데, 경제적인 여건이 좋아진 371년부터 비로소 북아프리카의 대도시였던 카르타고에서 수사학 공부를 계속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가 학생일 때 이미 여자와 동거 생활을 했는데,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이 동거녀와의 사이에 아데오다투스라는 아들을 두었다. 이 동거녀는 밀라노 시절인 385년까지 그와 같이 살았다.

 

열아홉 살 때 그는 키케로의 영향으로 철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는 수사학과 철학을 공부한 뒤 375년 무렵 문법과 수사학을 가르치기 위해서 타가스테로 돌아갔다. 그리고 타가스테의 부자인 로마니아누스의 도움으로 그는 자신의 능력에 적합한 곳이라고 생각한 카르타고로 돌아갈 수 있었다. 여기에서 사귄 친구들과 학생들이 『고백록』을 비롯한 그의 작품에 등장한다. 이 시기의 끝 무렵에 그가 카르타고에서 만난 사람이 마니교의 파우스투스이다. 383년 그는 로마로 가서 새로운 아카데미아 사상을 접하게 되었다. 384년에 시의 지사(知事)이자 황제의 대변인이며 원로원의 의장이었던 고위 관리인 심마쿠스(Symmachus)가 아우구스티누스의 능력을 알아보고 그 당시 콘스탄티노플과 트리어와 더불어 황제의 수도였던 밀라노의 수사학 교사로 그를 추천했다.

 

이 시기부터 안정된 지위와 권위 있는 직업을 갖게 되자 아우구스티누스는 그의 신분에 어울리는 결혼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는 어머니가 승낙한 소녀와 약혼했다. 이제 동거녀와의 관계를 끊어야만 했다. "그동안 내 죄는 더 쌓여만 갔습니다. 내 결혼에 방해가 된다고 동거녀를 떼어 버렸습니다. 그녀에게 달라붙어 있던 내 마음도 찢어졌으며 상처 입었고 피 흘렸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결코 다른 남자를 다시는 사랑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하느님 당신에게 맹세하면서 그녀가 낳은 아들을 내게 남겨 놓은 채 아프리카로 되돌아갔습니다."(『고백록』 6, 15, 25)

 

그러나 약혼녀가 어렸으므로 2년 동안 결혼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는 그동안 정부를 두었다. 하지만 결혼을 위한 시간이 오기 전에 종교가 그의 일부가 되었고, 그는 생의 나머지를 독신으로 살았다. 여전히 밀라노에 머물고 있던 그는 밀라노의 주교인 암브로시우스의 설교를 들었고, 이때 플라톤의 저술들도 알게 되었다. 이런 것들이 결국 아우구스티누스가 마니교에서 멀어지게 만들었다. 그는 386년 여름 휴가 이후에 교사직을 그만두고 그의 아들과 알리피우스와 함께 밀라노에서 세례를 받기로 되어 있었다.

 

386~387년은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전환점이 된 기간이다. 그는 키케로의 책에서 참된 행복은 우리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선한 것을 원하는 데 있다는 것을 배웠다. 이것은 덕을 구성하며 행복과 덕은 진리에 대한 탐구인 철학에서 분리될 수 없다. 그는 원하지 않았지만 391년에 히포에서 사제가 되었고, 395년에는 주교로 임명되었다. 그리고 그의 전임자인 발레리우스가 사망한 후 397년부터 히포 레기우스의 유일한 주교였다. 그는 히포가 반달족에 의해 점령당하고 있었던 430 8 28일 사망했으며, 그의 무덤은 8세기 이후로 파비아(Pavia)에 있다.

 

우리에게 전해지는 그의 초기 작품들은 대화체로 씌어 있는데, 핵심 내용은 이미 아우구스티누스의 철학적 견해를 대부분 포함하고 있다. 그는 387년 부활절에 가톨릭 교회에서 세례를 받은 뒤 밀라노에서 작품을 집필하는 데 전념했다. 이때 『음악론 De musica』『참된종교에대하여De vera religione』그리고『자유의지론De libero arbitrio』을집필했다. 그의 개종은 그 자신이 언급하는 바에 따르면 인상 깊은 철학서들을 읽은 경험이거나 아니면 하나의 극적인 개종의 경험에서 유래한다. 이 둘 중 어떤 경우이건 아우구스티누스는 그때까지의 인생 행로를 포기할 결심을 한다.

 

결국 건강상의 이유로, 그리고 철학을 더 깊이 연구하려는 의도에서 그 당시 서른 두 살이던 아우구스티누스는 어머니와 아들 그리고 몇몇 친구들 및 학생들과 함께 북이탈리아 지방인 카씨치아쿰에 있는 시골의 영지로 돌아갔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아프리카에서 수도사 같은 삶을 살 생각이었으나 아프리카로 떠나기 직전인 387년 늦은 봄에 어머니가 사망했다. 그래서 이 계획은 388년에야 이루어졌다.

 

여기에서 그의 주요 저작들이 집필된 연대를 정리해보자. 그의 저작들은 크게 세 부류로 분리될 수 있다. 첫째, 386년과 388년 사이, 즉 그가 '전향' 직후에 집필한 작품들이 카씨치아쿰의 대화편들이다. 여기에는 386년에 완성한 『아카데미아 학파 논박』 『복된 삶에 대하여』 『질서론』과 386~387년에 집필한 『독백』, 387년에 집필한 『영혼불멸론』, 388년 로마에서 집필한 『영혼의 크기』 그리고 로마에서 388~389년에 집필한 『가톨릭 교회의 윤리』가 속한다. 둘째 부류에 속하는 저서들은 388~395년 사이에 아프리카에서 집필한 과도기 시대의 작품들이다.

 

우선 387~389년에 집필한 『음악론』, 388년 『자유의지론』 1, 391~395년에 집필한 이 책의 2권과 3, 388~389년의 작품인 『마니교도들에 반대하는 창세기 주해』, 389년의 작품 『교사론』, 388~396년의 작품인 『서로 다른 83개의 문제집』, 389~391년의 작품인 등이 그것이다. 셋째 부류에 속하는 작품들은 그가 주교로 있을 때의 작품들로서 특히 그의 대표작들이다. 이 저서들은 그의 사상의 원숙함을 보여줌과 동시에 그의 사상이 총체적으로 표현된 대작들이다. 396~398년에 완성된 『고백록』, 396~397년과 426~427년에 집필한 『그리스도교 교양』, 399~419년의 작품인 『삼위일체론』, 401~414년의 작품인 『창세기 축어 주해』, 413~426년의 『신국론』, 그리고 마지막으로 426~427년에 집필한 『재론고』 등이 이 시기의 작품들이다.

(아우구스티누스-기독교의 가장 위대한 사상가, 2006.11.30, ㈜살림출판사)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 Saint François dAssise ]

1182~1226.10.3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라틴어: Sanctus Franciscus Assisiensis, 이탈리아어: San Francesco d'Assisi, 1181년 또는 1182 ~ 1226 10 3)는 이탈리아의 로마 가톨릭교회 수사이자 저명한 기독교 설교가이다. 또한, 프란치스코회의 창설자이기도 하며, 프란치스코 사후 프란치스코회는 작은형제회와 카푸친 작은형제회, 꼰벤뚜알 작은형제회의 1회 수도회, 2회 클라라회, 3회 재속회로 나뉘었다. 프란치스코는 생전에 사제 서품을 받은 적은 없었지만, 역사적으로 유명한 종교인 가운데 한 사람이다.

프란치스코의 부친은 당시 이탈리아에서 매우 번영한 상인이었던 피에트로 디 베르나르도네였다. 혈기왕성한 부유층 자제로 태어나 자란 그는 군인으로서 전투에 참여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1204년 전쟁에 참전하기 위해 가던 길에 환시를 체험하고 아시시로 돌아간 프란치스코는 세속적 생활에 대해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로마로 순례를 떠난 그는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구걸하는 걸인들을 보고 깊은 감동을 느껴 이후로 평생 가난한 삶을 살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다.

아시시로 돌아간 그는 길거리에서 복음을 전파하였으며, 그의 삶에 감동을 받아 따르는 추종자들이 생겨났다. 프란치스코는 1210년 교황 인노첸시오 3세의 인가를 받아 남자 수도회인 프란치스코회를 설립하였다. 그 다음에 그는 여자 수도회인 클라라회와 제3회를 설립하였다.

1219년 프란치스코는 십자군 전쟁을 평화롭게 해결하고자 이집트의 술탄에게 직접 찾아가서 그를 개종시키려고 하였다.  이 당시, 프란치스코회는 설립 당시보다 규모 면에서 크게 성장하였다. 그리하여 프란치스코는 수도회를 보다 체계화하기 위하여 이탈리아로 돌아갔다. 교황으로부터 수도회 인가를 받은 후에 그는 점차 외부 문제를 멀리하였다. 1223년 프란치스코는 처음으로 베들레헴에서의 예수 탄생 사건을 재현한 성탄 구유를 만들었다.[3] 1224년 그는 그리스도의 수난 당시 그리스도가 받았던 상처인 성흔을 받았다.[5] 1226 10 3일 시편 142(141)편을 읊으며 선종하였다.

1228 7 16일 교황 그레고리오 9세에 의해 성인으로 시성되었다. 그는 동물과 자연환경, 상인 뿐만 아니라 시에나의 가타리나와 더불어 이탈리아의 공동 수호성인으로 공경받고 있다. 2013년에 선출된 교황 프란치스코도 이 사람의 이름을 딴 것이다.

 

 

교황 프란치스코

1936~

 

교황 프란치스코(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Jorge Mario Bergoglio) 1936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이탈리아 출신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대학에서 화학을 공부했지만 일찍이 품었던 종교적 소명에 따라 1958년 예수회에 입문해 1969년에 사제 서품을 받았다. 이후 예수회 아르헨티나 관구장을 지낸 뒤 1998년 부에노스아이레스 대주교, 2001년 추기경에 서임되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사임한 후 소집된 추기경단의 콘클라베에서 다섯 번의 투표 끝에 제266대 로마 가톨릭교회의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시리아 출신 교황인 그레고리오 3세 이후 1282년 만에 탄생한 비유럽권 출신 교황이자 가톨릭교회 역사상 최초의 미주 출신, 최초의 예수회 출신 교황이 된 것이다.

 

공식 교황명인 ‘프란치스코’는 이제까지 한 번도 교황명으로 사용되지 않은 이름으로, 청빈·겸손·소박의 대명사인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를 따르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그 굳건한 의지가 이끄는 대로 ‘가난한 자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며, 트위터를 통해 전 세계 수많은 이들과 교감하고 있다.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 곁에서 사랑과 위로의 말을 전하는 ‘목자’로, 전 세계에 부드러운 혁명을 일으키는 ‘가톨릭의 어진 수장’으로 많은 이들의 벗이자 귀감이 되고 있다.

 

1282년 만에 탄생한 비유럽권 출신의 교황 프란치스코는 청빈, 겸손, 소박의 대명사인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를 따르겠다는 의지의 표으로 ‘프란치스코’라는 교황명을 사용하였으며, 그의 굳건한 의지가 가난하고 고된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사랑의 메시지로 표출되면서 큰 감동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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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사롭다(권요셉 동영상)

 

 

 

 

( 이 동영상 제작에 사용된 사진은

분당 이매동 성바오로 성당

2013년 구유의 모습과

미국 뉴저지에서 김승길님이 보내온

성탄데코레이션 사진입니다!!)

 

 

하늘엔 영광

이 땅에는 평화를!!

 

 

 

 

성스러운 탄생의

기쁨이 온 누리에!

그리고

호프만 독자님들께~

사랑합니다 여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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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뉴론7 2014.12.25 06: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크리스마스 잘보내세요 다녀갑니다

  2. 한라산 2014.12.25 08: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호프만
    즐거운 성탄과 아울러 한해 마무리 잘하시길^^

  3. 호롱불촌장 2014.12.25 08: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늘엔 영광
    이 땅에는 평화!
    아기예수님 탄생의 기쁨이
    온 누리에...!!
    주님 부디 이 나라에 축복하소서!!
    아~ 대한민국...

  4. 호롱불촌장 2014.12.25 09: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권요셉을 아시는 모든 분들과 함께
    평화가 있기를!!

 

 

 

 

 

죽음을 미리 생각해 보는 자세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하여 일약 구라파의 거부가 된 스웨덴의 알프레드 노벨은, 1884 4월 어느 날 프랑스의 신문을 읽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그 신문에 자신의 사망 기사가 게재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실은 그의 형이었던 루두비히 노벨이 죽은 것을 신문사가 잘못 알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노벨에게 충격을 주었던 것은 자신의 사망 기사뿐만 아니라, 그 기사 속에 표현된 자신에 대한 호칭 때문이었습니다. 그 기사는 이렇게 쓰여져 있었습니다. “다이너마이트란 폭탄을 발명한 ‘죽음의 상인’ 알프레드 노벨 사망하다.

 

노벨은 사람들이 자기를 ‘죽음의 상인’이라 부르고 있다는 데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이후 노벨은 자신의 죽음과 죽음 이후를 심각하게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전 재산을 희사, 인류의 행복과 생명을 위해 기여한 사람에게 큰상을 주라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만약 그가 그의 잘못된 사망 기사가 게재된 프랑스 신문을 보지 않았더라면, 다시 말해 자신의 죽음에 대하여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를 갖지 않았더라면, 그는 그야말로 ‘죽음의 상인’으로 죽어버리고 말았을 것입니다.

 

당신이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한 당신은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하루살이 일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당신의 죽음을 알고 있다면 당신의 이미 생명의 사람이 다 되었습니다. 자기 죽음을 아는 자는 참 삶의 길을 걷게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자신의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며, 선행을 통해 이웃들에게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는 삶을 살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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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령성월 기도 동영상

 

 

 

 

위령성월 기도

 

시편 129

 

○깊은 구렁 속에서 주님께 부르짖사오니

주님, 제 소리를 들어주소서.

 

●제가 비는 소리를 귀여겨들으소서.

 

주님께서 죄악을 헤아리신다면

주님, 감당할 자 누구이리까.

 

오히려 용서하심이 주님께 있사와

더 더욱 당신을 섬기라 하시나이다.

 

제 영혼이 주님을 기다리오며

당신의 말씀을 기다리나이다.

 

파수꾼이 새벽을 기다리기보다

제 영혼이 주님을 더 기다리나이다.

 

파수꾼이 새벽을 기다리기보다

이스라엘이 주님을 더 기다리나이다.

 

주님께는 자비가 있사옵고

풍요로운 구속이 있음이오니

 

당신께서는 그 모든 죄악에서

이스라엘을 구속하시리이다.

 

+기도합시다.

사람을 창조하시고

믿는 이들을 구원하시는 하느님,

저희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어

주님을 섬기던 사람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그들이 바라던

영원한 행복을 얻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주님 그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영원한 빛을 그들에게 비추소서.

 

+세상을 떠난 모든 이가

하느님의 자비로 평화의 안식을 얻게 하소서.

 

아멘

 

*11월 1일부터 8일까지 열심한 마음으로 묘지를 방문하고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교우들은

연옥에 있는 이들에게 양도할 수 있는

전대사를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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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순교자들에게 바치는

기도 동영상

 

 

 

 

한국 순교자들에게 바치는 기도

 

 

○이땅의 모든 순교자여,

당신들은 하느님의 은총에 힘입어

굳은 신앙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복음과 교회를 위하여

피를 흘리셨나이다.

 

●저희는 현세에서 악의 세력과 치열하게 싸우며

당신들이 거두신 승리의 영광을 노래하고

모든 선의 근원이신 하느님을 찬양하오니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위대하신 순교자들이여,

천상의 모후이신 성모 마리아와 함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시어

하느님의 자비를 얻어주소서.

 

지금도 어둠의 세력이

교회를 박해하고 있사오니

하느님께서 전능하신 팔로 교회를 붙들어 보호하시며

아직 어둠 속에 있는 지역에까지

널리 펴시도록 빌어주소서.

 

용감하신 순교자들이여, 특별히 청하오니

우리 나라를 위하여 하느님께 빌어주소서.

 

당신들은 이땅에서

많은 고난을 겪으며 사시다가

목숨까지 바치셨사오니

 

○전능하신 하느님께 빌어주시어

교회를 이땅에서 날로 자라게 하시며

사제를 많이 나게 하시고

 

신자들이  주님의 계명을 잘 지키고

냉담자들은 다시 열심해지며

갈린 형제들은 같은 믿음으로 하나 되고

비신자들은 참신앙으로 하느님을 알아

천지의 창조주

인류의 구세주를 찾아오게 하소서.

 

참으로 영광스러운 순교자들이여,

저희도 그 영광을 생각하며 기뻐하나이다.

간절히 청하오니

자비로우신 하느님 아버지께 빌어주시어

저희와 친척과 은인들에게

필요한 은혜를 얻어주소서.

 

또한 저희가 죽을 때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한결같이 믿어 증언하며

비록 피는 흘리지 못할지라도

주님의 은총을 입어 선종하게 하소서.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이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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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종 최양업 토마스 사제

시복시성 기도 동영상

 

       

 

 

 

하느님의 종 최양업 토마스 사제

시복시성 기도문

 

지극한 사랑으로

인류를 구원하시는 하느님,

최양업 토마스 사제를 보내주시어

혹독한 박해로 쓰러져 가는

한국 교회를 다시 일으켜 세우셨으니

그 자애로운 은총에 감사하나이다.

 

땀의  순교자 최양업 토마스 사제는

굳건한 믿음과 불타는 열정으로

구만리 고달픈 길을 마다하지 않고

방방곡곡 교우촌을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신자들을 돌보는 데

온 정성을  다 바쳤나이다.

 

자비로운신 주님,

간절히 청하오니

최양업 토마스 사제를 성인 반열에 들게 하시고,

저희 모두가 그의 선교 열정과 순교 정신을 본받아

이 땅의 복음화와 세계 선교를 위하여

몸 바치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2006년 3월 1일 (최양업 토마스 사제 탄생 185주년)

청주교구장 장봉훈 주교 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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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이 보는 건 사람의 마음이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환호하는 군중에게 일일이 손을 잡으며 그들의 눈을 찾았다. 눈과 눈이 마주쳤다. 이 세상에 오직 그 사람만 존재한다는 듯이. 아무리 짧은 순간이라도 그랬다. 사람들은온전히 나에게만 집중하는 느낌이다며 좋아했다. 사실 그건 눈이 아니었다. 마음이었다. 그가 뚫어지게 바라본 건 상대방의 마음이었다.

 

교황은 그걸공감이라고 표현했다. 교황은진정한 대화에 대해 언급했다. “상대방에게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열 수 없다면 진정한 대화란 있을 수 없다.”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더 들어가라고 요구했다. 상대방이 하는 말만 들어선 곤란하다.” 말의 뒷면까지 보라고 했다. “말로 하지는 않지만 전해오는 그들의 경험·희망·소망·고난과 마음 깊은 곳에 담아둔 걱정까지 들을 수 있어야 한다.”

 

그건 곳곳에서 동맥경화 증세를 보이는 대한민국을 향한 교황의 통찰이자 소통의 노하우였다. 우리 사회는 둘로 쪼개져 있었다. 진보와 보수,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 대립과 반목의 창을 통해서 종종 상대를 바라봤다. 둘 사이에는다리가 보이지 않았다. 교황은다리 놓는 법을 일러주고, 직접 보여줬다. 방법은 간단했다. 상대에게 눈을 맞추고, 마음을 맞추는 일이었다. 교황은 그렇게 생겨난 공감이야말로 모든 대화의 출발점이라고 강조했다! 아~ 그렇군요....  (2014.8.20 중앙일보 백성호님의 글을 중심으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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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집무실에 걸린 글

 

 

 

 

1.

소란스럽고 바쁜 일상 속에서도

침묵 안에 평화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2.

포기하지 말고 가능한

모든 사람들과 잘 지내도록 하십시오.

 

 

3.

 조용하면서도 분명하게 진실을 말하고,

 어리석고 무지한 사람들의 말에도 귀를 기울이십시오.

그들 역시 할 이야기가 있을 테니까요.

 

 

4.

목소리가 크고 공격적인 사람들을 피하십시오.

그들은 영혼을 괴롭힙니다.

 

 

5.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

자신이 하찮아 보이고

비참한 마음이 들 수도 있습니다.

더 위대하거나 더 못한 사람은

언제나 있기 마련입니다.

 

 

6.

당신이 계획한 것뿐만 아니라

당신이 이루어 낸 것들을 보며

즐거워하십시오.

아무리 보잘 것 없더라도

당신이 하는 일에 온 마음을 쏟으십시오.

그것이야 말로 변할 수밖에 없는

시간의 운명 안에서

진실로 소유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7.

사업상의 일에도 주의를 쏟으십시오.

세상은 속임수로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상에 미덕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지나치지 마십시오.

많은 사람들이 높은 이상을 위해 애쓰고 있고,

삶은 영웅적인 행위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8.

당신 본연의 모습을 찾으십시오.

가식적인 모습이 되지 마십시오!.

 

 

9.

사랑에 대해서 냉소적이 되지 마십시오.

아무리 무미 건조하고 꿈이 없는 상태에서도

사랑은 잔디처럼 돋아나기 때문입니다.

 

 

10.

나이 든 사람들의 충고는 겸손히 받아들이고,

젊은이들의 생각에는 품위있게 양보하십시오.

 

 

11.

갑작스러운 불행에서 자신을 보호하려면

영혼의 힘을 키워야 합니다.

그러나 쓸데 없는 상상으로

스스로를 괴롭히지 마십시오.

많은 두려움은 피로와 외로움에서 생겨납니다.

 

 

12.

자신에게 관대해 지도록 노력하십시오.

당신은 나무나 별들과 마찬가지로

우주의 자녀입니다.

당신은 이곳에 머무를 권한이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느끼든 느끼지 못하든

우주는 그 나름의 질서대로 펼쳐지고 있습니다. 

.................................................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8 14일, 한국에 오셨습니다.

 45( 8 14~18일까지) 일정입니다.

이번 일정을 통해서

소외받고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은 용기를 얻고

한반도에 평화가 찾아오는

좋은 계기가 되기를 빌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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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당의 밥상 vs 지옥의 밥상

 

옛날 어느 마을에 자기가 가진 것을 나눌 줄 모르는 욕심쟁이 부자가 살고 있었다. 보다 못한 하늘에서는 저승사자를 내려 보내 부자에게 지옥과 천당을 구경시켜 주었다. 부자가 지옥에서  본 사람들은 식탁 위엔 맛있는 음식이 푸짐하게 쌓여 있었는데도 모두들 삐쩍 마르고 눈이 움푹 들어갔다.

지옥 사람들은 사람 키보다 훨씬 더 긴 젓가락으로 음식을 먹는데 앞 다투어 서로 먼저 먹으려는 바람에 한입도 먹지 못했다.  

한편 천당 사람들도 지옥 사람들과 같은 젓가락을 쓰고 있었지만, 다른 점은 서로 상대방을 먹여 주는 것이었다. 저승 여행이 끝났을 때 부자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존 버니언의 『천로역정』이란 소설을 보면 지옥엔 놀랍게도 맛있는 음식이 가득하다. 하지만 젓가락이 팔 길이보다 길다. 지옥사람들은 긴 젓가락으로 음식을 자기 입에 가져가려고 바둥댄다. 그러다 눈앞의 음식을 두고, 고통 속에 굶는다.

천당의 음식과 젓가락은 지옥과 똑같다. 그런데 천당사람들은 긴 젓가락으로 음식을 떠 마주 앉은 사람의 입에 넣어 준다.

똑같은 밥상, 똑같은 젓가락인데 지옥과 천당 사람들은 왜 다른 모습을 보여줄까? 나 혼자만 잘 먹고 잘 살려고 하면 너도 죽고 나도 죽고, 이웃을 생각하며 더불어 살면 나도 살고 이웃도 산다!! 그게 그리 어려운 문제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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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신영헌 2014.08.05 08: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내것을 남에게 나누어 주는 삶을 사는 사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 천당이닐까요?

 

 

 

 

 

축일의 의미

 

가톨릭 신자들은 세례 때에

성인이나 성녀를 택하여

그분 들의 이름을

자신의 세례명으로 정하고,

그 성인들께서 이 세상에 살아 계셨던 동안

실천하신 덕행을 본 받아

살아갈 것을 다짐합니다.

 

가톨릭 신자로 태어날 때에 세례명을

정해 받는 것은 13 세기부터였고,

현대에는 필수적으로 되었으며

교회법(1917년에 공포된

현행법전 761)에서도

이를 명하고 있습니다.

 

 

성인들을 본받는다는 것은

그들에 대한 우리의 최대의 존경입니다.

모든 성인 중에는 각 계급,

각종 직업인이 포함되어 있어,

제왕도 있고 병사도 있으며,

사제 (師弟)가 있는가 하면

자본가, 노동자도 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실로 연령에 있어서도

여러 층에 있는 인물들인 것입니다.

더욱이 성인은 과거에만 존재한 것이 아니며,

현재에도 또한 장래에도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나 다 자기가 받들어

거울로 삼을 성인을 자유로이

선택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성인의 축일은 대개 그분들이

돌아가신 날로 정하였으며,

이 날을 기념합니다.

이는 초대교회에서 순교자들의 죽음은 바로

축복받은 새 생명으로 탄생한

것으로 여긴 데서 기인합니다.

 

신자들은, 성인들께 위대한 은혜를

베풀어주신 하느님을 찬미하고,

그러한 은혜를 받으신 성인들께서

우리를 위한 기도를 해 주실 것을 청하며,

그분들의 생애를 모범으로 삼아

생활할 것을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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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부활이여 빛의 부활이여~

 

 

온 세상이 우울한 잿빛으로 보이던가 그대여

온 세상이 어둠으로 보이던가 그대여

이제 어둠은 가고 빛의 시대여 오라~

 

 

 

 이제 거짓은 물러가고 진실이여 오라

이제 불의는 물러가고 정의여 오라

 

 

 

 이제 미움은 사라지고 사랑의 부활이여 오라

이제 증오는 사라지고 용서의 꽃이여 활짝 피어라~

 

 

 

이제 불신은 사라지고 믿음의 세월이여 우리에게 오라

이제 이기주의의 편협함은 사라지고 이타주의의 넓음이여 우리를 덮으라!

아~ 빛이여

부디 이 세상을 화알~ 짝 밝히소서!!

 

2014.4.20 부활절 아침

희망의 호롱불

호프만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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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조철제 2014.04.21 12: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연의 힘은 위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