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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재테크/감동스토리

[여성조선] 고 김자옥 남동생 김태욱 아나운서 단독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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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조선] 고 김자옥 남동생

김태욱 아나운서 단독 인터뷰

 

 

 

 

“1달 전 누나와 작별 인사해행복하게 떠났다

 

영원한공주김자옥이 우리 곁을 떠났다.
그 환한 미소를 다시 볼 순 없지만 그녀의 기억만은 영원히 팬들 곁에 남기를. 고인의 명복을 빈다
.

지난 11 16일 탤런트 김자옥이 별세했다. 2008년 대장암을 선고받고 치료를 마쳤지만, 최근 다시 재발해 뇌로까지 전이된 것이 그 이유였다. 올 초까지만 해도 드라마와 예능, 연극무대를 넘나들며 연기 투혼을 펼쳤던 그녀이기에 갑작스러운 부고는 더욱 충격적이다. 서울 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에는 많은 연예계 동료 및 선후배들이 찾아와 고인의 넋을 기

발인식이 있었던 11 19, 원지동 추모공원에서 고 김자옥의 남동생 김태욱 SBS 아나운서를 만났다. 어렵사리 인터뷰를 요청했고, 그는 생각보다 자세하게 누나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누나의 마지막을 다시 한번 떠올리는 듯 때로는 가만히 미소 짓기도 했다.
 
 
누나와 사이가 각별했던 것으로 알고 있어요.

 

막내라서요. 막내라는 게 웃기죠. 누나하고 나이 차이가 9살이 나요. 어릴 때부터 관심사나 성격이 좀 비슷했어요. 누나가 처음 탤런트 시험 붙고 나서도 막냇동생이라고 방송국에 데려가고 그랬거든요.
막내라고 잘 챙겨주는 누나였나 봐요. 어머니가 예순아홉에 돌아가셨는데 가시기 전에 제 걱정을 많이 하셨어요. 얘 좀 잘 돌봐달라고. 그런 게 누나 마음에는 맺혀 있었나 봐요


평소에 누나와 자주 연락을 했나요?

 

 서로 연락을 잘 안 하는 성격이에요. 멀리서만 서로의 안부 묻고 걱정하고 그래요. 근데 누나 돌아가시고 나니까내가 누나한테 많이 의지하고 있었구나하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엄마 대신 누나라는 존재가 가까이 있었으니까요. 또 한 번 엄마를 잃어버린 느낌이었어요.

누나와 마지막 인사는 언제 나누었나요?

 

 1달 전에 누나와 이미 작별인사를 했어요. 매형이나 조카도 못 느끼는 마지막 모습(을 봤어요). 누나가 아파도 얘길 안 해요. 그래서 TV에 나올 때는 기분이 좋을 때예요. 조금이라도 아프면 집에만 있어요. 아픈 모습 보이기 싫어하니까요. 그래서 조카에게 대신 전화해서엄마 괜찮니?’ 하고 물어보죠. 근데 한동안 불안한 마음이 들더라고요. 마침 조카에게 전화가 왔는데 누나가 저를 찾는대요. 어디냐고 했더니 병원이래요. 그때 이미 뇌로 약간 전이가 된 상태였어요.
그게 1달 전쯤이고요. 병원에 갔는데 누나가 생각보다 밝은 모습이었어요. 근데 중간중간할아버지 산소에 뿌리면 되잖아라는 말을 하더라고요. 순간누나가 마지막이 다가오는 걸 느끼고 있구나싶었죠. 그날 병실 나오기 전에 처음으로 누나 손을 잡으면서너무 걱정하지 마그랬더니 갑자기 애기처럼 울더라고요. 그리고는자주 와라고 하더라고요. 누나가 그런 얘기 한 건 처음이에요. 누나가 저한테내가 얼마 안 남은 것 같아라는 마지막 인사를 한 것 같아요. 그날 저 혼자 병원 주위에서 1시간을 울었어요. 다음 날 조카에게 전화해서네 결혼식에 엄마가 못 갈 것 같다. 너의 생각보다 훨씬 빠를 수 있다는 얘기를 건넸어요
.

마지막 임종 전 모습은 어땠나요.

 

지난 금요일(11 14)에 조카에게 전화를 받았어요. ‘삼촌, 갑자기 엄마가 안 좋아져서 응급실에 왔어!’ 갔을 때는 이미 중환자실로 옮긴 상태였어요. 그리고 하루 반 만에…. 그날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는데 갑자기 병원에서 코드 블루 어쩌고 하면서 안내방송이 나오더라고요. 이어서 ‘5층 중환자실 종양내과그러더라고요. 누나다, 하고 올라갔더니 심폐소생술 하고 있었고….

예전에 대장암 진단을 받았을 때 완쾌되었다는 보도를 본 것 같은데 아니었나 봅니다.

 

좋게좋게 얘기하려고 그랬던 거죠. (대장암 판정을 받은 사실이 알려진) 초기에 치료하고 완쾌됐다고 보도를 했는데, 사실 처음 발견됐을 때 3기였어요. 4기에 가까운 3기요. 근데 그걸 굳이제가 3기 암입니다하고 밝힐 필요는 없잖아요. 활동을 위해서도 안 좋고요. 그런데도 의학이 많이 발달해서 6년을 더 살았어요.

오히려 그 당시 대장암 3기 진단을 받았을 때의 충격이 지금보다 더 컸을 수 있겠네요.

 

지금도 속상한 게 어머니가 대장암으로 돌아가셔서 형제들도 다 가족력이 있잖아요. 그래서 형제들 다 검사하고 그랬거든요. 전 누나도 당연히 했는 줄 알았어요. 근데 10년 동안 안 한 거예요. 처음 하러 갔더니 3기라고 하더라고요. 생존율이 25%인데 누나는 그 안에 못 든 거죠. 2~3년만 빨리 검사를 했었더라면 이 정도까지 오지 않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죠.

 

하고 싶은 연기 원 없이 하고 간 행복한 사람

 
누나에 대한 크고 작은 기억들이 많이 생각날 것 같아요.

 

7남매인데 그중에서도 누나는 가장 독특한 사람이었어요.(그 모습이 생각이 났는지 살짝 미소 짓는다.) 유일하게 애교가 많은 사람이었고 아빠가 너무 예뻐했죠. 어릴 때 머리 땋고 배화여고 가던 모습도 생각나요. 누나는 학교에서도 뭘 많이 했어요. 응원도 하고 성우도 하고 만날 그런 거 하던 사람이니까.(웃음) 그러다 혼자 그런 생각을 했어요. ‘화끈하게 (살다가) 가는구나.’ 누나는 하고 싶은 거 정말 원 없이 하고 갔어요. 6년 동안 투병생활 한 셈인데 몸만 괜찮으면 드라마 하고, 예능 하고. 결론적으로는 행복한 사람이에요.

 

마지막까지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갔어요.

 

마음이 행복해요. 멋있게 살다 간 것 같아요. 끝까지 여자처럼 살았고, 끝까지 아기처럼 살았고. 지금 아주 최고의 배우도 아니니 혹시나 빈소가 쓸쓸하진 않을까 걱정도 했는데 그게 아니었더라고요

 

 아들 결혼식을 보지 못하고 간 게 끝내 마음에 걸리셨을 것 같아요.

 

내년 3월에 날을 잡았어요. 언젠가 한번은 누나가 지나가는 말로한 달만 당기면 안 되니?’ 그랬대요. 그냥 웃으면서요

 

마지막까지 드라마 <세 번 결혼하는 여자>를 소화하며 연기 투혼을 펼쳤어요.

 

누나의 첫 출세작이 김수현 작가님의 작품 <수선화>(1974)예요. 작은 역할 하던 애를 스카우트해서 배역을 맡기신 거죠. 그 후에도 김수현 작가님 작품을 몇 개 더 했어요. 그리고 마지막을 또 김수현 작가님 작품으로 한 거예요. 정말 오랜만에 김수현 선생님이 직접 전화하셨대요. (몸 상태가 안 좋은데) 할 수 있겠느냐고요. 누나도 오랜만에 김수현 작가님 작품 하고 싶다고 해서 하게 된 거죠.

<
꽃보다 누나>로도 젊은 친구들에게 많은, 좋은 기억을 심어주고 가신 것 같아요.

 

귀여운 아줌마로 기억되지 않을까 싶어요. 연예인이라는 직업이 한편으론 정말 행복하고 한편으론 너무 파란만장해요. 불행하다고 볼 수도 있는데, 누나는 다른 일보다 카메라 앞에 서는 걸 즐겼어요. 그렇게 자기가 좋아하는 일 실컷 하다가 간 사람처럼 행복한 사람은 없다고 봐요. 그래서 누나도 행복하게 살다가 갔을 거예요.


암 선고 후  6년의 투병생활


고 김자옥은 여러 차례의 수술과 항암치료로 인한 면역력과 체력 저하를 이겨내지 못하고 지난 11 16일 가족들과 지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향년 6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고 김자옥의 주치의는암 환자에게 폐렴은 급성인데 (김자옥이 병원에 왔을 때는) 이미 폐렴이 생긴 상황이었다. 그게 패혈증으로 발전했다고 전했다.

2008
년 건강에 이상 신호가 왔던 김자옥은 병원을 찾았다가 갑작스러운 대장암 판정을 받았다. 몇 년 뒤 그녀는 방송을 통해 처음 암 선고를 받았을 때의 심경을 전하기도 했다. “그 생각 하면 아직도 아주 끔찍하다고 입을 연 그녀는처음에는왜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하는 원망도 많이 했다. 하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던 암이 내게도 일어날 수 있다고 마음을 바꿨다고 전했다. 이어후에는 치료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고 나중엔 웃으면서 수술실에 들어갈 정도였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

당시 김자옥은 고통스러운 항암치료가 시작된 와중에도 결코 연기를 내려놓지 않았다. 항암치료 와중에도 연기활동을 지속하며 아픈 내색 하나 없이 밝은 모습을 본 지인들은 김자옥이 완전히 나았다고 착각하기도 했다
.

최근까지도 그녀는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올 초에는 <꽃보다 누나>로 특유의 애교스러운 모습을 보였고 이후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 <세 번 결혼하는 여자>에도 출연하며 건재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암은 또 다시 그녀를 괴롭혔고 끝내 목숨을 앗아갔다
.
고인의 죽음이 더욱 안타까운 것은 내년 3월로 앞둔 아들의 결혼식을 차마 보지 못하고 떠났기 때문이다. 고인과 절친했던 배우 윤소정은며느리가 마음에 든다고 얼마나 좋아했는데 그걸 못 보고 갔다며 슬픔을 감추지 못하기도 했다
.

고 김자옥은 방송에서도 여러 차례 아이들에 대한 애정을 표현해왔다. 특히 아들은 늦은 나이에 기적처럼 얻은 자식이었다. 그녀는불임 판정을 받았었다. 처음에는 왜 나만 이럴까라는 생각을 했었지만 곧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게 됐다. 그렇게 마음을 탁 터놓은 후 딱 한 달 만에 아이를 가졌다. 38살에 얻은 아이다. 생명은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정말 기적 같은 일이었다고 각별한 애정을 드러낸 바 있다.

 

영정사진 속 아내날 보고 웃어주는 것 같아


고 김자옥의 발인식은 11 19일 오전 8 30분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됐다. 이날 남편 오승근은오늘 10시에 화장하고 분당에서 집사람과 헤어지려 합니다라며특히 오늘 아내를 보기 위해 해외에 사는 가족들이 모두 왔다. 참 보고 싶어 했는데 많이 보고 간다며 눈물을 닦았다. 고 김자옥은 발인식 후 서울 원지동 추모공원에서 화장된 뒤 분당메모리얼파크에 안치됐다.

고 김자옥은 1984년 가수 오승근을 만나 재혼해 연예계 대표 잉꼬부부로 불렸다. 한때 오승근이 사업 실패로 70억원이라는 거액의 손해를 봤을 때도 김자옥은 앞장서 남편을 다독이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

고인의 영정사진에 대한 비화도 있다. 김자옥은 과거 방송에서저 사진이 나이 61에 찍은 거다. 아침드라마 <엄마도 예쁘다> 할 때 회식하던 장소인데, 에어컨이 세서 추웠다. 그래서 담요를 덮었다. 화장도 안 하고 립스틱만 바르고 있는데 오디오 하시던 분이 카메라 들고 왔다 갔다 하면서 몇 장 찍더라. 어렸을 때부터 본 사람이고 나중에 몇 장 줬는데 정말 마음에 들어서 크게 뽑아놨다고 했다. 남편 오승근은 이 사진을 유독 좋아했다고 한다. 해당 사진을 보며그냥 있을 때도 예쁘지만 웃을 땐 더 예쁘다. 아내의 웃는 모습을 보고 반했다. 날 보고 웃어주는 것 같다며 좋아했던 사진이라고
.
한편 김자옥은 수의 대신 평소 아끼던 한복을 입었다고 전해졌다. 그녀는 생전 인터뷰에서예전에 해외 시상식을 간 적이 있는데 그때 한복을 입었다. 그래서 드레스를 입은 여배우들 사이에서도 한복 때문에 더욱 눈에 띄었던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만큼 한복에 애착이 컸던 그녀를 위해 한복디자이너 박술녀는선생님께서 수의를 입지 않고 평소에 아끼던 한복을 입고 가겠다고 했다더라. 남편 오승근 선생님이 한복을 가져오셔서 그걸 수의로 만들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브라운관의 영원한공주를 기리며


고 김자옥은 1970 MBC 2기 공채 탤런트로 연예계에 데뷔했다. 1975년에는 김수현 작가가 집필한 드라마 <수선화>의 여주인공을 연기하며 백상예술대상 TV부문 최우수연기상을 수상, 성공가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이듬해에는 변장호 감독의 영화 <보통 여자> 주연을 맡아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최우수연기상을 수상하며 김영애, 한혜숙과 더불어 1970년대 트로이카를 형성했다. 1980년 가수 최백호와의 결혼과 동시에 은퇴를 선언했던 그녀는 1982년 드라마로 다시 복귀했고 곧 이혼했다. 이듬해 오승근을 만나 재혼한 후 그녀는 뛰어난 연기력과 아름다운 외모로 다시 한번 주목받았고 1996년에는 친분이 있던 태진아의 권유로 가수로 전격 데뷔해 화제가 됐다. 당시 그녀는 1 <공주는 외로워> 60만 장의 앨범 판매량을 기록하며 대대적인 신드롬을 일으키기도 했다. 최근에는 tvN <꽃보다 누나>에서 동료배우 윤여정, 김희애, 이미연과 함께 해외 배낭여행을 떠나 원조 공주다운 우아한 모습으로 시청자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동료 및 선후배들의 마지막 안녕


고 김자옥은 후배들에게는 한없이 따뜻했던 언니이고 누나이자, 선배들에게는 애교 많은 소녀였다. 많은 연예계 동료 및 선후배들이 빈소를 찾아 고인의 죽음을 애도했다. 빈소를 찾은 송윤아는드라마 같이 할 때 저 많이 예뻐해주시고 걱정해주셨던 것 평생 잊지 않고 열심히 살겠다. 선생님도 아프시지 말고 이제 편히 쉬세요라고 애도를 표했다. 사미자는이런 천사 같은 애가 갔기 때문에 나는 정말 가슴이…. 왜 먼저 가서 나를 여기에 오게 하는지 원망스럽고, 더 살 수 있는 그 예쁜 애가 왜 이렇게 됐느냐며 눈시울을 붉혔다. 최화정은정말 예쁘고 너무너무 아름다운 분인데, 이제 하늘에서 편히 쉬실 것 같아요. 고통 없이 가셨다는 게 제일 잘된 일이에요. 장미꽃처럼 너무 예쁘세요. 선생님이라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 신성일은자옥 씨. 또 보니까 빈소에 있는 모습이 너무 예쁘더라. 우리가 촬영할 때도 참 예쁜 모습이었는데. 그 모습 오래오래 간직하겠다. 편히 잠드십시오라며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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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누나> 팀도 빈소를 찾았다. 특히 11 17일 빈소를 찾은 김희애는 고인의 사망 소식을 접한 후 한참 동안 오열했다는 후문이다. 김자옥은 과거 <꽃보다 누나> 방송에서 항암치료로 인해 지친 심경을 토로한 바 있다. 그는 그래도 여행을 와서 좋다며 동행을 제안한 윤여정에게 고마움을 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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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의 발인식에는 많은 연예계 동료들이 찾아 그녀의 마지막을 함께했다. 기독교식으로 진행된 발인 예배에는 박미선, 이성미, 이경실, 송은이, 윤유선, 김지선 등 동료 연예인들과 남편인 가수 오승근, 친동생 김태욱 아나운서 등 유족을 비롯해 약 100여 명 정도의 인원이 참석해 고인의 마지막 길을 함께했다
.

이날 김용건은믿어지지 않는다. 고통 없는 데서 편히 계시길 바란다고 애도했다. 태진아는공주, 하나밖에 없었던 공주인데 그 공주가 하늘나라로 갔어요라며 고인을 애도했다. 한 작품에서 선후배로 만났던 배우 강석우는찾아뵐걸, 전화라도 하고 만나볼걸 하는 후회가 가장 많이 들어요. 가장 믿어지지 않는 헤어짐인 거 같아요라며 깊은 안타까움을 내비쳤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2014.1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