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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재테크/감동스토리

박목월의 사랑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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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목월의 사랑이야기

 

 

한 유명 시인이 사랑했던 아름다운 여대생과의 헤어짐의 아픔을 노래한 시가 <이별의 노래>라는 이야기는 1980년대에 나온박목월 평전·시선집’ <자하산 청노루> (이형기 편저, 문학세계사, 1986>에서 이 스토리를 정면으로 다룸으로써 세간에 기정 사실로 알려져왔다. <자하산 청노루>에서는 이 연애 사건에이별의 노래란 제목을 달아 평전(評傳)의 일부로 8(65-72)에 걸쳐 자세히 적어놓았다. 호사가들이 좋아할 만한 흥미진진한 러브 스토리이다. 신문, 잡지 등 워낙 여러 지면에서 이름있는 문인들이 대체로 이 책의 기록을 근거로시인의 애틋한 사랑이 낳은 슬프고도 아름다운 시라며 박목월(1916-1978) <이별의 노래>를 진지하게 설명해 놓았으므로 누구도 그 이야기를 의심치 않았다.

 

평전의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목월이 경주에서 금융조합 서기로 일하던 때 공주처녀 유익순과 불국사에서 우연히 만났다. 직장 친구의 처제여서 혼담이 오고 가다가 결혼하게 된다. 목월은 시인이기 이전에 아홉 식구의 가장으로 한국 동란을 전후한 빈궁하고 핍박한 세월을 보냈다."송아지 송아지 얼룩 송아지"로 이 땅의 아이들에게 동심을 키워준 동요시인 박영종(본명) 아닌 박목월은 청록파의 시인으로서 많은 명시를 썼다. 그러나 그에게도 슬프로고 아름다운 아픈 사랑이 있었다.

 

 목월이 6.25동란 피난시절 대구로 피란 내려 가 있던 1953년 봄 교회에서 시인과 詩를 좋아하는 서울의 명문 여대생인 문학소녀 H를 만났다. H 자매가 모두 목월의 시를 좋아해 그를 자주 찾아왔다. 처음에는 흔히 있는 팬과의 만남 정도로 대했다. 그러는 사이 휴전(1953 7)이 성립되었다. 목월은 가족보다 먼저 서울로 올라왔다. 서울의 대학들이 다시 문을 열었고 자매도 상경했다. 언니가 결혼을 하자 이번엔 동생이 혼자 목월을 찾았다. 동생의 가슴에 사랑의 뜨거운 불길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목월도 그녀에게 기울어져 가고 있었다. 1954년 초봄부터, 두 사람이 서울의 밤거리를 함께 거니는 날이 많아졌다.

 

목월은 40을 바라보는 나이였다. 자책감으로 괴로웠다. 어느 날 두 사람의 관계를 알고 있는 가까운 시인 Y를 불러 H양을 만나 자신을 단념하도록 설득해 달라고 부탁했다. Y씨를 만난 H, Y씨의 말을 듣고 나서, “선생님,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죄가 아니겠지요. 저는 다만 박 선생님을 사랑할 뿐, 이 이상은 아무 것도 바라지 않습니다. 이런 무상의 사랑은 누구도 막을 권리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그녀는 손수건으로 얼굴을 감싸고 울었다.

 

그해 여름이 가고 가을 바람이 불어 왔을 때 목월은 서울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그녀와 함께 제주도로 떠나 동거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제주 생활이 넉 달째 접어들어 겨울 날씨가 희끗 희끗 눈발을 뿌리던 어느날 부인 유익순이 제주에 나타났다. 목월과 H양이 살고 있는 집을 찾아온 그녀는 두 사람 앞에 보퉁이 하나와 봉투 하나를 내 놓았다. 보퉁이에는 목월과 H양이 입고 겨울을 지낼 수 있는 한복 한 벌씩이, 그리고 봉투에는 생활비에 보태 쓰라는 돈이 들어 있었다.

 

남편은 물론 H양에 대해서도 그녀는 전혀 싫은 소리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의 고달픈 객지 생활을 위로했던 것이다. 그러한 그녀 앞에서 H양은, “사모님!”하고 울었다. 목월도 눈시울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그 하숙생활은 그 후 두 달 남짓 끌다 끝났다. 유익순 앞에서 울었던 H양은 목월을 단념하게 된 것이다. 결국 목월은 H양과의 이별 후 제주에 좀 더 머물다 1955년 초봄 가정으로 돌아왔다.

 

 

박목월과 그의 부인 유익순

 

 그러나 원효로의 집으로 직행하지 못하고 효자동 종점 부근으로 하숙을 들어간다. 그 무렵 지은 시로 <효자동> <뻐꾹새> 등이 있는데, 당시 목월의 심경을 읽을 수 있다.

 

효자동(孝子洞)

 

숨어서 한철을 효자동에서 살았다.

종점 근처의 쓸쓸한 하숙집.

 

이른 아침에 일어나

꾀꼬리 울음을 듣기도 하고

간혹 성경을 읽기도 했다.

마태복음 5장을, 고린도 전서 13장을.

 

---(후략)---

 

뻐꾹새

 

잠이 오지 않는 밤이 잦다.

이른 새벽에 깨어 울곤 했다.

나이 들수록

한은 짙고

새삼스러이 허무한 것이

또한 많다.

 

---(중략)---

 

뻐꾹새는

새벽부터 운다.

효자동 종점 가까운 하숙집 창에는

창에 가득한 뻐꾹새 울음······

모든 것이 안개다.

 

---(후략)---

 

목월은 오랫동안 이 여인을 잊지 못했다. 1960년대 초에 쓴 그의 일기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12 10() 맑음 내세(來世)를 믿느냐 --- 이것은 지난 목요일, 수도여대에서 어느 학생이 질문한 말이다. 너무 엄청난 질문이므로 나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나는 꼭 같은 질문을 한 10년 전에 내가 사랑하는 여인에게 물어 본 일이 있었다. --- 사랑하는 여인에게 질문한 <내세> 유무는 우리의 사랑이 극도의 절망적인 운명에 부닥쳤을때, 죽음을 가정한 사랑에 대한 깊이를 다짐하는 말이었다.

 

내세가 있다면 죽음으로써 우리의 사랑을 청산하고 싶다는 것을 암시한 질문이다. 총명하고 영리한 그 여인은 갸름한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있고 말고요. 만일 내세가 없다면 무엇 때문에 이처럼 괴로운 운명을 스스로 불러오는 사랑에 우리가 모든 것을 바칠 리가 있겠어요?” 참으로 영리한 대답이라 생각했다. 내세가 있기 때문에, 삶을 포기할 것이 아니라 더욱 성실하게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뜻이다. 내 마음속을 환하게 꿰뚫어 보고 하는 대답 같았다.

 

목월은 세월이 한참 흐른 후 그 여인을 만났다. 어느 겨울날 그녀의 집을 방문한 것이다. 그녀는 결혼을 했고 어린 아들도 있었다. 목월은, “30년 가까운 세월의 저편 끝에서 찾아오는 한 사람의 나그네 같은 심정이었다종말의 의미란 그의 글에서 그 날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적고 있다. “내가 그녀를 방문한 것은 눈발이 내리는 날이었다. 백발이 되면 죽기 전에 한 번쯤 만나보고 이승을 하직하려니 하고 젊은 날에 마음 속으로 다짐하던 그녀를 찾아가게 된 것이다.

 

물론 내가 벼르던 만큼 백발이 된 것은 아니다. ----- 문이 열렸다.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막혔던 하나의 통로(通路)가 이제 열리는 것이다.----- 미소를 띤 그녀의 모습, 문득 나는 외면해 버렸다. 외면해 버렸다기보다 고개가 절로 돌아가 버린 것이다. 왜 외면해 버렸을까! 나도 모를 일이다. 유리창에는 여전히 눈발이 내리고 있었다. 그녀는 조용히 내 앞으로 다가왔다. 여전히 미소를 띤 채 ---. 그렇다. 나도 미소를 띠고 있었다. 이 미소를 띤 채 서로가 건너다 보기 위하여 나는 얼마나 많은 밤을 세웠으며 또한 얼마나 나 자신을 채찍질해야 했던가. 하지만 그것은 지난 일이다.

 

지금 그녀와 나는 서로 미소 띤 얼굴로 물끄러미 건너다 보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일어섰다. 이제 하직해야 할 때가 이르게 된 것이다.----- 이승을 떠나기 전에 꼭 한번 다시 만나 보려던 젊은 날의 그 새롭고도 눈물겨운 결심을 이루게 된 오늘의 나의 발걸음은 무척 허전하고도 가벼웠다.” 이 글 가운데, 가족들의 안부를 묻는 대화가 있다.  아드님도 벌써 많이 자랐겠지요?” “, 벌써 대학에서 선생 노릇을 하는걸요.”  "그렇게 컸어요--- 며느님을 보셨어요?”

 

 , 아직 장가는 들이지 않았습니다. 곧 장가를 보내야겠습니다. 댁의 아드님은?” “아직 어린걸요.”  아버님께서는 여전히 교회 일만 돌보십니까?” “아녜요, 아버님도 이제 많이 늙으셨는걸요.” 이 대목을 보니 제주에서 헤어진 그녀가 분명해 보인다. 그녀의 아버지가 목사였고, 제주에서 그녀는 매주일 교회에 열심히 나갔다는 기록 등으로 추측하는 것이다.

 

목월은 1978 3 24, 새벽 산책길에서 돌아온 후 고혈압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우리 나이 63세였다. 목월은이승을 떠나기 전에 꼭 한번 다시 만나 보려던 젊은 날의 그 결심을 이룬 이 극적인 해후의 뒤에

 

평전의 편저자는 목월의 제주행과 관련된 이야기를 이렇게 끝맺는다. “그 하숙생활은 두 달 남짓 끌다 끝났다. 집으로 돌아온 목월은 전보다 더 충실한 가장이 되었다. 비 온 뒤 땅이 굳어진 격이라 할까. 부인 유익순은 돌아온 남편을 물론 한마디도 탓하지 않고 반갑게 그리고 따뜻하게 맞이해 주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H는 누구일까 누구나 다 아는 현존 유명 시인이다. 서울대 국문학과 박동규 교수가 아들이다.

 

 

이별의 노래

박목월 시

김성태 곡

 

기러기 울어예는 하늘 구만리

바람은 싸늘 불어 가을은 깊었네

아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한낮이 끝나면 밤이 오듯이

우리의 사랑도 저물었네

아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산촌에 눈이 쌓인 어느 날 밤에

촛불을 밝혀두고 홀로 울리라

아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