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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생활/오늘의스포츠

88올림픽의 성지 잠실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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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8올림픽의 성지 잠실의 추억

 

 

 

1979년 88올림픽이 열리기 9년 전부터

 

이미 올림픽 유치의 서막이 올랐다!

 

 

 

그때와 비교하면 잠실은 상전벽해다!

 

참 많이도 변했다!! 이렇게 이렇게....

 

 

국민체육진흥회는 1979년 3월

 

제24회 서울올림픽 서울유치계획을 의결하였다!

 

 

 

 

1979년 10.26사태로 올림픽유치운동이 고비를 맞았으나...

 

 

 

 

1980년 12월 15일,역사적인 서울 올림픽 유치신청을 했다!

 

 

 

 

 

 

1981년 3월  올림픽조사단이 내한했다!

 

 

 

 

 

 

 

 

1981년 9월 30일 바덴바덴에서 열린 제84차 국제올림픽 총회를 앞두고

 

대규모 유치대표단을 구성하였다!

 

 

 

 

바덴바덴 10일 작전에 돌입하다!

 

 

 

 

1981년 9월 30일 마침내 운명의 순간이 다가왔다!

 

 

 

 

오후 2시 드디어 서울이 나고야를 누르고

 

제24회 하계 올림픽 개최지로 결정되었다!

 

한민족 역사에서 참으로 경사스런 날이었다!

 

 

 

대회 휘장

 

 

대회휘장은 우리민족 전래의 문양인 삼태극에서 착상됐다!

 

 

 

 

 

요트선수들

 

서울올림픽 폐막 직후 박세직(朴世直) 서울올림픽조직위원장은 사마란치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장과 함께

 

 공동 기자회견을 하였는데, 서울올림픽은 2520억 원의 흑자를 기록한 대회였다고 발표하였다.

 

총지출은 5,890억 원이었고 총수입은 8,410억 원이었다. 그러나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 자체의 재정흑자

 

2520억 원 가운데는 정부출연금 371억 원, 선수촌·기자촌·패밀리아파트 분양기부금 1,315억 원, 국민성금

 

565억 원, 올림픽공원 내 조형작품 조성기부금 90억 원 등 모두 2,341억 원의 기부금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순수한 올림픽 관계 이익금은 179억 원이라고 할 수 있다.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는 또한 이익금 중에서 12억 7,000여만 원을 국제올림픽위원회 지분(持分)으로 할당하

 

고 올림픽공원 내에 있는 세계평화의 광장에 1억 8,000여만 원을 들여서 올림픽운동 기념비를 건립하기로 하

 

였다.

 

 

국제올림픽위원회 지분이란 당초에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와 국제올림픽위원회가 합의했던 사항으로서, 서

 

울올림픽을 통해 1,000억 원 이상의 흑자를 내면 0.48%를 국제올림픽위원회에 할당하고, 1,000억 원 미만이

 

면 20만 달러 이하를 할당하기로 한 것이다.

 

 

 

                                                      

                                          역동적인 역도선수의 모습!

 

 

수입 부문을 세분하면 텔레비전 방영권료 2,188억 원, 아파트 분양수익금 1,315억 원, 휘장사업 수입금 819억

 

원, 기념주화 판매수익금 1,208억 원, 올림픽복권 수입금 1,174억 원, 국내외 성금 565억 원, 광고수입 282억

 

원, 입장권 판매수입금 209억 원, 선수촌과 기자촌 입촌료 116억 원, 우표 판매수익금 25억 원, 조형작품 조성

 

기부금 90억 원, 정부출연금 371억 원, 이자 48억 원 등이다.

 

 

 

 

 

 

탁구선수

 

 

서울올림픽에 사용된 경기장은 모두 34개이며 연습장은 72개였다. 개회식과 폐회식, 축구와 승마 결승전, 그

 

리고 육상경기가 거행된 올림픽 주경기장은 송파구 잠실동에 있는 메인스타디움으로서 필드의 넓이는

 

105×67m, 수용인원은 7만 명이다.

 

 

 

 

 

눈물겨운 투혼 드라마의 주인공 핸드볼 선수들

 

 

이 경기장은 건축가 김수근(金壽根)의 설계로 만들어졌으며, 1986년 제10회 아시아경기대회 때도 메인스타

 

디움으로 사용되었다. 스탠드가 2층으로 꾸며졌고 스탠드 위에 완만한 곡선의 지붕을 씌웠기 때문에 한국적

 

인 미와 조화를 느낄 수 있는 특징이 있다.

 

 

 

 

 

 

다이빙 선수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잠실 주경기장은 세계적인 명물이 되었으며,

 

한국을 상징하는 조형물로서도 그 가치를 높이 인정받게 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서울올림픽대회 [─大會]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의 메달박스 효자종목

양궁 선수들

 

여자 개인 금메달 김수녕

단체전에 함께한 왕희경 윤영숙

남자단체 전인수, 박성수, 이한섭

그리고 또 유명한 양궁대표 선수들

김진호, 서향순....이런 선수들은

 

지금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88올림픽의 땀방울이 아직도 선연한

잠실거리를 돌아보면서

필자는 잠시 감격과 흥분의 순간을

회상해보았다.

그때 그 땀방울과 치열한 노력이 있었기에

오늘의 한국이 있는 것이 아닐까?

아~대한민국

아아~우리 조국

영원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