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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는여행/부산釜山

해운대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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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의 역사

 

 

 

 

행복도시 해운대

Happy City haeundae

 

 

원조할매국밥

48년 전통

그러면

1970년대 이전부터

해운대를 지키고 있었다는 뜻!

 

 

 

1978년에 오픈한 해운대구 우동 조선비치호텔

(부산 웨스틴조선호텔)

객실 290실의 5성급 호텔이다.

 

프레지덴셜 스위트룸은 78년 고 박정희 대통령

전용객실로 사용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전체 면적이 50평이고 메인룸(15평)과 경호원실,

수행원실 등 3개의 방에다 응접실 등을 갖추고 있어서

더 유명해졌다

 

 

 

파라다이스 부산 호텔

1981년에 오픈한

530실 규모의 5성급 호텔이다.

 

 

 

동백섬의 인어공주상. 1974년에 건립됐고 1987년 태풍 셀마 때 유실됐다가 1989년 공모를 통해 다시 만들었다. 높이 2.5미터 규모다. 오른손에 수정 구슬을 들고 있는  이 인어공주는 아득한 옛날, 동백섬 무궁국의 왕과 결혼한 대마도 나란다국의 '황옥공주'라는 전설을 담고 있다. 수정 구슬을 비추면 고향인 나란다국을 보여줘 황옥공주의 향수병을 달래줬다고 전해진다. 인어공주는 가야국 김수로왕의 왕비가  된 인도 아유타국의 '허황옥'이란 설도 있다. 해운대의 관광명소 중 하나다.

 

 

 

2005년엔 APEC회의가 이곳 동백섬 누리마루에서 열렸다.

 

 

 

동백섬 '누리마루 APEC 하우스 인근에 있는 등대에선

광안대교와 오륙도가 보여 동백꽃과 함께

부산의 황활한 경치도 함께 즐길 수 있다.

 

 

 

광안대교의 야경

 

부산광역시 수영구 남천동과

해운대구 우동의 센텀시티를 잇는

총길이 7,420미터,

너비 18~25미터,

2층 복층 구조의 왕복 8차로의 다리로

1994년 8월에 착공해 2003년 1월 6일에 개통하였다.

 

 

1964년 김기 감독

신성일 엄앵란 주연의 '동백아가씨' 영화 포스터

 

같은 해 한산도 작사 백영호 작곡으로

 이미자가 영화주제가 '동백아가씨' 발표

 

 

 

 

2015.4.27 촬영

동백섬의 동백꽃

몇 년 정도 되었을까...

 

옛날엔 땅에 떨어진 동백꽃이 지천이라 동백섬이라 불렀다.

남쪽은 동백꽃이 2월부터 피기 시작하여 3월 하순에서

4월초가 최고조에 이른다.

동백꽃은 '겸손한 마음',

'그대를 누구보다 사랑합니다'라는 꽃말을 가지고 있다.

나무에 매달려 그리고 땅에 떨어져 한번 더

곱게 피어나는 동백꽃에 어울리는 꽃말이다.

 

 

몇 년 전 부터인가

동백섬 건너편은 고층아파트가 점령하고 있다

 

 

우동 어촌계 해녀 탈의장

몇 년이나 되었을까

 

 

 

 

우동의 유래는 이렇다

옛날에 중동 일대의 옛 온천지역인 구남평원을 가로질러

동백섬 옆 수영만으로 흐르는 춘천천이 있었는데,

이의 오른쪽에 자리한 마을이란 연유로 우동이란 이름이 붙었다.

 

 

해운대 해수욕장의 유래

예로부터 해운대는 우리나라의 8경 중 하나로

온천과 해수욕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이름높은 명승지였다.

 

 

해운대 엘레지

한산도 작사

백영호 작곡

손인호 노래

1956년 손인호님이 불렀다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오래전부터

철학관이 자리잡고 있다

고객이 있다는 이야기인데...

 

 

해운대에 올라

 

이안눌 (1571-1637)

 

해운대 명명자인 최치운을 생각하며 쓴 詩.

 

구름속에 치솟는 듯

아스라이 대는 높고..

 

 

돌아와요 부산항에

황선우 작사 작곡

조용필 노래

1972년에 발표했다.

 

 

갈맷길이 지나는 길 해운대

갈맷길은 부산의 상징인 갈매기와

길의 합성어이다.

 

 

2015.2.16일 준공식을 갖은

해운대 우동 영화의 거리는

마린시티 해안 800미터 구간으로

'영화와 놀고 즐기기'를 주제로

'1000만 관객 영화존''애니메이션존'

 '해운대배경영화존'등 3개 테마거리로 조성됐다.

 

 

 

갈맷길

갈매기가 노는 길

9개 코스로 20개 구간으로 나눠진다.

2009년 부산시가 시역 내 걷기..

 

 

해운대는 옛날에 백사장에 수많은

거북이들이 알을 낳고 살았다 하여

'구남동'이라 붙여진 이름도 있다.

지금은 거북이들은 사라졌고 넓은 백사장도

줄어 들어 확장공사를 하기도 한다.

 

 

 

일찍이 최치원 선생을 비롯한 많은 시인 묵객들은

바다와 숲이 어우러진 이곳의 절경을 찾아 노닐며

그 감흥을 노래했다.

 

 

통일신라 말기의 학자인 최치원은 해운대의 빼어난 절경에

매료돼 동백섬 바위에 자신의 호 '해운'을 새겨

해운대의 지명을 유래시켰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자주 인용할 만큼

최치원은 중국인들에게 여전히 숭상받는 인물이다.

 

 

 

 

1972 6 26일 부산기념물 제22호로 지정되었다가 2007 10 1일에 국가지정문화재 명승(名勝) 24호로 지정되었다. 면적 0.02, 최고점 68m(굴섬)이다. 예로부터 부산의 상징물이었다. 영도구(影島區)의 조도(朝島)와 마주보며, 부산만 북쪽의 승두말로부터 남동쪽으로 6개의 바위섬이 나란히 뻗어 있다.

 

 

 

 

이 섬들은 육지에서 가까운 것부터 방패섬(2,166)·솔섬(5,505)·수리섬(5,313)·송곳섬(2,073)·굴섬(9,716)·등대섬(3,416)으로 나누어진다. 송곳섬은 작고 모양이 뾰족하며, 굴섬은 가장 크고 커다란 굴이 있다. 육지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등대섬은 평탄하여 밭섬이라고도 하였으나, 등대가 세워진 뒤부터 등대섬이라고 한다. 등대섬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무인도이다.

 

 

 

 

섬 이름은 1740년에 편찬된 《동래부지(東萊府誌)》 산천조(山川條)에 따르면, 동쪽에서 보면 여섯 봉우리가 되고 서쪽에서 보면 다섯 봉우리가 된다는 데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방패섬과 솔섬의 아랫부분이 거의 붙어 있어 썰물일 때는 1개의 섬으로 보이고, 밀물일 때는 2개의 섬으로 보인다는 데서 유래하였다는 설은 19세기에 일본 사람이 잘못 기록한 내용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섬의 형성과정을 살펴보면 12만 년 전까지는 육지에 이어진 하나의 소반도(小半島)였다가 유구한 세월 동안 거센 파도의 침식작용으로 육지에서 분리되어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것은 육지인 승두말과 인접한 방패섬과 솔섬의 지질 구성이 동일하다는 사실로도 증명된다. 섬 주변은 조류가 매우 빨라 뱃길이 위험하였기 때문에 옛날 이곳을 지나는 뱃사람들은 항해의 무사함을 기원하기 위하여 해신에게 공양미를 바쳤다고 전해진다.

[네이버 지식백과] 부산 오륙도 [釜山 五六島] (두산백과)

 

 

 

해운대 주변의 포구는 모두 7곳이었다. 재송포, 승당포, 운촌, 미포, 청사포, 구덕포, 그리고 가을포(加乙浦)라고 불리던 송정. 재송과 승당은 포구의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고 운촌은 옛 자연마을의 모습이 크게 바뀌었다. 어업이 이 지역 주민들의 주요 생업이었던 시절, 만선(滿船)을 이룬 고깃배들이 흰 돛을 펼치며 오륙도를 뒤로 하고 귀항하던 모습이 '오륙귀범(五六歸帆)'이다. 돛단배 위로 갈매기가 맴돌고, 뱃전에 부서지는 파도는 하얀 포말을 내뿜으며, 황금빛 저녁노을이 바다를 물들이니, 만선의 기쁨이 더욱 커지는 황홀한 순간이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