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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는여행/우리문화답사

경기도 연천 조선왕가 한옥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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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가 한옥호텔

 

경기도 연천군 연천읍 고문리 420-1

(현문로 339-10)

전화: 031-834-8383

 

 

      

    서울시 명륜동 성균관대학교 기숙사에 터를 내주고, 경기도 연천의 새로운 터로 옮겨 앉은 조선왕가의 본채 염근당. 집을 옮기기 위해 해체하던 중, 고종 황제의 손자 ‘이근’의 집이라는 상량문이 발견되었다. 높은 기단 위에 우뚝 자리한 염근당은 일반 민가에서 보기 힘든 곧게 뻗은 기둥과 서까래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어디 하나 금 가고 터진 곳이 없는 자재는 모두 궁궐을 지을 때 쓰이는 금강송을 잘 말려 사용한 것이라고. 연천평야가 한눈에 들어오는 누마루가 인상적인 사반정과 어우러져 ‘ㅁ’자 마당을 완성하는 염근당 뒤편엔 별채인 자은정이 있다. 모두 황토로 벽과 바닥을 채워 힐링을 위한 장소로 재탄생되었다.
고려왕들의 위패를 모신 연천 숭의전지, 임진강이 한눈에 들어오는 연천 당포성, 화산이 만든 계곡 지형을 볼 수 있는 동이리 주상절리, 선사시대 사람들의 삶을 살펴볼 수 있는 전곡선사박물관도 연천을 대표하는 관광지다
문의전화 : 조선왕가 031)834-8383 연천군청 문화관광체육과 031)839-2061

 

 

 

연천으로 옮겨 앉은 황손의 ,

조선왕가

 

경기도 연천군은 한국전쟁으로 생겨난 비무장지대를 품고

      경기도 연천군은 한국전쟁으로 생겨난 비무장지대를 품고 있다. 전쟁으로 황폐해진 연천군에 활기를 불어넣은 것은 토박이 주민들과 그 옛날 선사시대 사람들처럼 새로운 삶터를 찾아온 이들이다. 지금도 맑고 깨끗한 자연을 찾아 이곳으로 이주하는 사람들이 있다. 연천군 연천읍 현문로에 자리한 조선왕가도 그중 하나다. 조선왕가의 염근당은 원래 서울시 종로구 명륜동에 자리하고 있었다. 성균관대학교 옆에 있던 이 집은 대학 기숙사에 터를 내주고 사라질 운명이었다. 위기에 처한 염근당을 연천군으로 옮겨 지은 사람은 조선왕가의 주인 남권희․김미향 씨 부부다.


 

 

    

      건물 해체 도중 집주인이 누구인지 밝혀줄 상량문이 발견되었다. 상량문에는 이 집을 지은 사람이 고종 황제의 손자 ‘이근’이며, 건물의 이름이 ‘미나리처럼 혼탁한 물속에서도 추운 겨울을 이기고 자라는 기상을 생각하는 집’이라는 뜻이 있는 ‘염근당’이라는 내용이 기록되었다. 황손의 집이 어떤 모습인지 알 수 있는 귀중한 한옥인 것이다.

 

 

 

  

     남권희․김미향 씨 부부는 염근당을 연천으로 옮겨 짓는 동안 커다란 기둥 하나, 장대석 하나 다치지 않고 조선 시대 건축양식에 맞게 복원되도록 꼼꼼히 살폈다. 여러 전문가의 도움이 있었다고 해도 99칸 한옥을 옮기는 일이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한겨울 추위에 황토 작업을 할 수 없어 인부들을 돌려보낸 일도 그중 하나. 그 겨울 왜 이리 힘든 일을 자처했는지 슬며시 고민이 머리를 들었다. 하지만 소나무 위에 작은 둥지를 틀기 위해 수많은 나뭇가지를 떨어뜨리며 수고하는 까치를 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덕분에 객실 내부에 현대식 화장실을 갖추고 125칸으로 규모를 키운 조선왕가가 만들어졌다.

 

 

조선왕가의 한옥은 본채인 염근당과 행랑채인 사반정, 별채인 자은정으로 구성된다. 조선왕가의 손님맞이는 편의 시설이 자리한  현대식 건물 1층에서 시작된다. 이곳에서 입․퇴실 절차와 식사 예약을 마치고 한옥으로 건너가 편안히 쉴 수 있다.

 

 

     염근당은 황손의 집답게 장대석을 높이 쌓은 기단 위에 우뚝 자리한다.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좌우로 뻗은 건물은 ‘ㄷ’자 모양이다. 주련으로 장식된 기둥과 대들보는 일반 민가에서 보기 드문 곧게 뻗은 나무를 사용했다. 어디 하나 금 가고 터지지 않은 나무를 보면 오래전 지은 집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모두 궁궐을 지을 때 쓰이는 잘 말린 금강송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염근당은 휜 나무를 그대로 사용해 푸근한 곡선미를 보여주는 민가에 비해 반듯한 위엄이 서린 건축물이다. 저절로 발걸음을 조심조심 떼게 되는 공간이다.

   

염근당을 내려서면 대문채인 사반정이 있다. ‘一’자 건물인 사반정에는 연천평야가 한눈에 들어오는 누마루가 있다. 따뜻한 햇볕이 내리쬐는 한낮, 이곳에 앉아 차 한잔 마시며 여유를 즐겨도 좋겠다.

      염근당 뒤편에 자리한 자은정은 이 집의 별채다. 연천으로 온 주인 부부가 처음 기거하던 곳인데, 지금은 여러 가족이 함께 머물 수 있는 공간으로 준비되었다. 명륜동 시절엔 고 박정희 대통령도 자주 들른 집이다.

 

   

조선왕가에서는 숙박 외에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다. 여러 가지 약재를 넣어 끓인 물로 온몸의 독소를 빼내는 왕가비 훈욕 테라    피, 황토편백찜질방에서 찜질하기, 약재 가루를 넣어 비누 만들기 등이다. 봄부터 가을까지는 글램핑장도 운영된다. 이곳에서 직접 발효한 여러 가지 효소차와 약선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카페테리아도 운영된다. 단 식사는 예약해야 한다.

 

 

      조선왕가와 더불어 돌아볼 연천의 관광지는 강과 마주하고 있다. 그 첫 번째는 사적 제223호로 지정된 연천 숭의전지다. 조선 시대에 고려 왕 7명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 지내던 곳으로, 숭의전은 한국전쟁 당시 불타고 말았다. 임진강과 어우러진 풍경이 아름답다.

 

 

연천 당포성(사적 제468호)은 여타 성곽에 비해 그리 크지 않다. 절벽으로 구성된 지형이 천혜의 성벽 역할을 했기 때문. 임진강이 한눈에 들어오는 당포성에 올라서면 삼국시대에 임진강을 따라 오가던 배와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화산이 만든 계곡 지형이 있는 연천군은 ‘지질 교과서’라고 불린다. 여러 곳에서 주상절리를 만날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임진강과 한탄강이 만나는 동이리에도 주상절리가 있다.

 

    

     연천에는 오래전부터 우리나라에 사람이 살았음을 증명하는 공간이 있다. 연천 전곡리 유적(사적 제268호)이다. 1978년에 주한 미군으로 우리나라에 온 그렉 보웬이 아슐리안형 주먹도끼를 발견하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전곡리 유적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전곡선사박물관에서 살펴볼 수 있다.

 

     주먹도끼의 다양한 모양, 매머드 뼈로 지은 집의 형태, 아프리카부터 한반도까지 걸어서 이동한 구석기인의 삶을 보여주는 영상물 등 선사시대의 이해를 돕는 다양한 전시가 펼쳐진다. 아이들과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된다.

 

     ○ 당일 여행코스
문화 유적 답사 : 연천 숭의전지→연천 당포성→동이리 주상절리→전곡선사박물관→조선왕가
명소 탐방 코스 : 재인폭포→조선왕가→전곡선사박물관→연천 숭의전지

 1박 2일 여행코스
첫날 : 연천 숭의전지→연천 당포성→전곡선사박물관→조선왕가
둘째날 : 조선왕가→재인폭포→귀가


○ 관련 웹사이트 

 - 연천군청 문화관광 www.iyc21.net:_yc:tour:a06_b09_c01.asp
 - 조선왕가 www.royalresidence.kr
 - 전곡선사박물관 www.jgpm.or.kr


○ 문의 

 - 연천군청 문화관광체육과 031-839-2061
 - 조선왕가 031-834-8383
 - 전곡선사박물관 031-830-5600
 
○ 잠자리
 - 조선왕가 : 연천읍 현문로, 031-834-8383, www.royalresidence.kr (명품고택)
 - 초성모텔 : 청산면 청신로, 031-835-2610 (굿스테이)


○ 먹거리

 - 불탄소가든 : 민물매운탕, 연천읍 현문로, 031-834-2770
 - 한탄강오두막골 : 가물치구이․민물새우탕, 청산면 청창로141번길, 031-832-4177
 - 망향비빔국수 : 비빔국수, 청산면 궁평로, 031-835-3575
 - 나능이 : 능이버섯백숙, 전곡읍 평화로, 031-833-9988


○ 주변 볼거리 : 한탄강관광지, 평화누리길, 연천 경순왕릉, 연천 호로고루  /  한국관광공사_사진제공


 

 

 

고종황제의 영손(令孫)으로 조선조 역대 왕의 종묘제례를 관장했던 황족 이근(李芹)의 고택인 염근당(念芹堂)이 경기도 연천군 연천읍에 중건돼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

 

 ‘조선왕가’로 재탄생, 2011.6월부터 일반에 공개되며 현재 전통한옥 호텔로 활용하고 있다. 조선왕가는 1800년대 짓고 1935 99칸으로 중수된 황실가의 전통한옥으로 큰 가치를 담고 있지만 이를 알아보는 이가 없어 한때 헐릴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하지만 염근당은 남권희(51)씨의 눈에 들어와 ‘조선왕가’의 이름을 얻고 세상의 밝은 빛을 보게 됐다. 의약품 수출입업을 하며 남부럽지 않게 살던 그는 마음에 드는 한옥을 발견하면 그가 공장부지로 오래전 마련해둔 연천에 옮겨 짓겠다는 생각을 품고 살았다.

 

 

“사실 우리 가족이 오붓하게 쉴 수 있는 20평 규모의 한옥을 생각했어요. 무엇보다 옛 사람들의 손때가 묻어 있는 헌집이었으면 했고요. 새로 짓는 한옥은 고즈넉한 맛이 떨어지고 깊은 맛이 없거든요. 전통한옥을 찾아 전국을 돌아다니다 5년 전 마음에 드는 집을 발견했는데 제가 출장을 다녀온 이틀 사이에 강화도로 팔려 나갔더라고요. 그때처럼 아쉬웠던 적이 없는 것 같네요(웃음).

 

 

그렇게 낙담하고 6개월이 지난 후 그는 인생을 바꿀 만한 결심을 하게 된다. “우리의 궁궐 건축양식 그대로를 담고 있는 염근당을 발견하게 된 겁니다. 저도 그렇고 소유주였던 성균관대 측도 이 고택이 조선왕가인 줄은 꿈에도 몰랐지요. 건평만 250, 이는 과거 영의정이 살던 집의 10배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규모예요.

 

 

구입이 망설여지기도 했지만 다시는 이런 기회가 오지 않을 것만 같아 제 전 재산을 걸어 과감한 선택을 했습니다. 또 그 부지에 성균관대가 기숙사를 짓기로 한 상태여서 고택이 헐릴 수밖에 없다는 안타까움도 제 선택에 부채질을 했고요.

 

 

그는 2008 615일부터 약 5개월에 걸쳐 염근당을 해체, 기와ㆍ대들보ㆍ서까래ㆍ기둥ㆍ주춧돌ㆍ기단석ㆍ토방돌 등을 연천읍 고문리의 자은산 기슭, 5000평 부지에 옮기는 작업에 돌입했다. 트럭 약 300대 분량의 엄청난 양이었다.

 

 

남 회장이 이 전통한옥이 황족의 고택인 염근당이었다는 것을 알게된 건 염근당을 이건하기 위해 해체하는 과정 중 상량문이 나오면서다. 2008 815일은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상량문이 발견된 날이거든요. 대들보에서 붉은 비단에 싸여진 상량문과 함께 금 셋, 은 다섯, 동 일곱 덩어리 등이 함께 나왔지요. 말 그대로 보물을 발견한 듯 상당히 흥분됐습니다.

 

 


 

염근당 창건 당시 상량문은 홍문관 대제학을 지낸 정만조 선생이 짓고, 당대의 명필인 이병희 선생이 글씨를 쓴 것으로 밝혀졌다.

 

 

상량문엔 왕가의 주인이 고종황제의 영손이며, 이근의 고택임을 증명하는 내용과 집주인이 높은 지위에도 불구하고 소박하고도 청렴해 어진 사람임을 칭송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상량문 끝 구절에 ‘一華石必使愼守芬擇永存(일화석필사신부문택영존ㆍ꽃 한 송이 돌 하나라도 반드시 신중하게 지키시어 아름답고 향기로운 은택이 영원히 보존되게 하여 주소서)’라는 문구가 있는데 마치 제게 하는 말 같았죠. 제대로 복원하지 않으면 영원히 역사의 후손들에게 죄를 짓게 되는 것만 같아 사명감을 갖고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정성껏 복원했습니다.

 

 

 염근당을 이전ㆍ복원하는 일은 무형문화재 도편수 최명렬 선생과 무형문화재 와공 이도경 선생이 직접 참여, 대들보ㆍ서까래ㆍ기둥ㆍ주춧돌ㆍ기단석에 번호를 일일이 기록해 원형의 모습에 어긋남이 없도록 했다.

 

 

“대들보ㆍ서까래ㆍ기둥 등의 목재는 당시 춘양목으로, 기와ㆍ주춧돌ㆍ기단석ㆍ토방돌까지도 당시의 것을 사용했습니다. 왕가의 건물 벽체와 바닥은 천연 황토를 사용했고요.

 

 

그리고 2010. 9월 지금의 조선왕가 모습으로 염근당은 새 생명을 얻게 된 것입니다. 전 이곳에서 사계절을 모두 지내 봤는데, 주변 자연환경과 조선왕가의 아름다움이 어우러져 최고의 풍경을 그려내고 있어요. 매일매일이 새롭고 놀라운 경험이지.

 

 

남 회장은 조선왕가가 재탄생하는 동안 인생관과 가치관도 많이 달라졌다고 했다.
“사실 제가 하던 사업은 날로 번창해 그동안 아무 부족함과 어려움 없이 누리고만 살아왔거든요. 그러니 주변을 되돌아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어요. 그러다 조선왕가와 인연을 맺으며 ‘우리 전통한옥에 담긴 선조들의 지혜와 멋을 널리 알려야겠다’는 사명감을 갖게 됐습니다. 그래서 사업은 현재 다른 직원들에게 맡기고 저는 조선왕가 일에만 집중하고 있습니다.

 


조선왕가는 2011.6월 부터 전통한옥 호텔로 일반인에게도 개방됐다. 풍요로운 자연 속에 멋드러지게 지어진 우리 옛 건축물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며 충분히 쉴 수 있는 공간으로 거듭난 것이다.

 

 

“이미 입소문이 나 많은 분들이 다녀가셨는데 반응이 상당히 좋습니다. 자연 속에서 ‘진정한 휴식’을 맛보고 간다 하시면서요. 다양한 프로그램도 상시 진행하려고 해요. 2011.7.22일부터 85일까지 4차에 걸쳐 ‘2011 글로벌 미래 인재 개발 리더십 캠프’를 열어 해외동포 자녀들에게 한국의 아름다움과 우수한 문화를 알렸다.” 남 회장은 “세계적으로 왕손의 집을 온 국민에게 개방해 직접 묵을 수 있게 한 사례는 조선왕가가 최초”라고 강조했다.

 


 

“우리나라가 ‘문화 강국’으로 나아가는 데 작은 보탬이 되고 싶어요. 조선왕가 복원공사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앞으로는 조선왕가 건립사업을 외국에서도 적극 추진해 볼 계획입니다.

=홍연정기자 hong@ 사진=조선왕가 제공 http://www.cnews.co.kr/uhtml/read.jsp?idxno=201107190915311630061

 

 

 

 

여행에는 주제와 목적도 있어야 한다.

주제가 없는 여행은 방황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주제와 목적이 있는 여행을 할 때

열린 마음으로 만나는 것들을 통해

비로소 여행의 기쁨과 지혜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인생도 일종의 여행과 같다.

출발점이 있으면 종착점도 있다

인생도 여행도 가끔 휴식과 재충전이 필요하다

 

지금 당신은 어떤 여행자의 모습으로

인생길을 걷고 있는가?

(호프만 지음,

행복은 돈이 되는 것일까?

p.1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