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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마다 다른 느낌이 연출되는 아름다운 정원

 

부여 궁남지(宮南地) 여행

2015.6.3

 

 

 

궁남지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16-1

 

 

 

최초의 인공 정원

 

경주의 안압지가 통일신라 궁궐건축의 당당함을 보여준다면 궁남지의 차분한 아름다움은 백제의 단아한 옛 멋을 느끼게 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 연못이라 하여 사가의 작은 정원을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궁궐의 남쪽이라는 뜻의 궁남지는 수양버들이 하늘거리는 주변을 따라 산책하기에 좋다. 신선이 노니는 산을 형상화하였다는 연못 중심의 작은 산에는 정자가 세워져 있는데 연못을 가로지르는 다리와 어울려 그 모습이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하다.

 

 

신라 진평왕의 딸인 선화공주와의 아름다운 사랑으로 유명한 백제 무왕의 전설이 전해지는 곳이기도 하다. 부여 사비성의 이궁지로도 추측되는 궁남지는 넓은 주변으로 연꽃을 종류별로 재배하는 공원이 조성되어 여름철 연꽃이 필 때면 더욱 아름답다.

[네이버 지식백과] 궁남지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국내 여행 1001, 2010.1.15, 마로니에북스)

 

 

 

 

 

 

 

 

 

 

 

 

 

 

 

 

 

 

 

 

 

 

 

 

 

 

 

 

사비길

왕포천

 

 

 

 

 

 

 

 

 

 

 

 

 

 

 

홍련

 

 

 

 

 

황금련

 

 

대하연

 

 

 

빅토리아연

 

 

천년의 사랑

 

 

 

 

 

 

 

 

 

 

 

 

 

 

 

 

 

 

 

 

 

 

 

 

 

 

 

수련

 

 

 

창포

 

 

노란꽃창포

 

 

 

 

 

 

 

 

 

 

 

 

 

 

서동과 선화공주의 사랑이야기

 

 

 

 

 

포룡정

 

 

 

 

 

 

 

 

 

 

 

 

 

 

 

 

 

 

 

 

 

 

 

 

 

 

 

 

 

 

 

 

 

 

 

 

 

 

 

 

 

 

 

 

 

 

 

 

 

 

 

 

 

 

 

 

 

 

 

 

 

 

 

 

 

 

 

 

 

 

 

 

 

 

여행에는 주제와 목적도 있어야 한다.

주제가 없는 여행은 방황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주제와 목적이 있는 여행을 할 때

열린 마음으로 만나는 것들을 통해

비로소 여행의 기쁨과 지혜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인생도 일종의 여행과 같다.

출발점이 있으면 종착점도 있다

인생도 여행도 가끔 휴식과 재충전이 필요하다

 

지금 당신은 어떤 여행자의 모습으로

인생길을 걷고 있는가?

(호프만 지음,

행복은 돈이 되는 것일까?

p.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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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답사

제천여행(2)

2015.7.12

 

제천 신륵사

고산사

황강영당

수암사

송계계곡 명오리 고가

김세균 판서 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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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답사

제천여행(1)

2015.7.12

 

제천 신륵사

고산사

황강영당

수암사

송계계곡 명오리 고가

김세균 판서 고택

 

 

 

 

 

 

 

 

 

 

 

 

 

 

 

 

 

우리말천수경

 

 

 

 

 

 

멀리 신비로운 영산이 희미하게 보인다

 

 

 

 

 

 

 

 

 

 

 

 

영험하다는 나한상

 

 

 

 

 

 

 

 

 

 

 

 

 

 

 

 

 

 

 

 

 

 

 

 

 

 

 

복분자

 

 

 

 

 

피마자

 

 

 

 

 

 

 

 

 

 

 

 

 

 

 

 

 

 

 

 

 

 

 

 

 

 

 

 

 

한석봉의 글씨라는 설이 있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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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회탈의 기원과 사랑이야기

The Origin od Hahae Mask

and The Love Story

 

 

먼 옛날 하회마을에 전염병이 돌아서 많은 사람들이 죽고 원인 모들 화재가 자주 발생하자 마을 사람들의 걱정이 대단하였다. 어느날 이 마을에 사는 젊은 청년인 허도령의 꿈에 산신령이 나타나서 "지금 마을에 퍼지고 있는 재앙은 이 마을을 지켜주는 신의 노여움을 샀기 때문이다"고 일러주며 " 그 신을 위해 탈을 만들어 춤을 추면 신의 노여움이 풀리고 마을이 다시 평안을 찾을 것이다"라고 했다.

 

그러나 "탈을 만드는 것을 아무도 모르게 하여야 하며 만일 누군가 엿보거나 알게 되면 너는 그자리에서 피를 토하고 죽게 될 것이다"라고도 했다. 허도령은 꿈이 너무나 기이하고 생시감이 느껴져서 그날부터 마을 어귀에 탈막을 짓고 탈을 조각하기 시작했다. 한편 마을에는 허도령을 사모하는 처녀가 있었는데 도무지 허도령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연민의 정이 사무쳐 허도령이 탈을 제작하는 탈막으로 다가가 엿보고 말았다.

 

그러자 뇌성벽력이 천지를 진동하며 허도령은 그 자리에서 피를 토하고 죽고 말았다. 허도령이 죽게 되자 처녀는 죄의식에 사로잡혀 그만 자결하게 되니, 마을 사람들이 처녀의 넋을 위로하기 위하여 화산 중턱에 성황당을 짓고 처녀를 성황신으로 만들어 매년 정월 대보름에 동제사를 올리게 되었다.

 

 

 

 

안동시

[ Andong-si, 安東市 ]

 

동쪽은 영양군·청송군, 서쪽은 예천군, 남쪽은 의성군, 북쪽은 영주시·봉화군과 접한다. 경상북도에서 면적이 가장 넓을 뿐만 아니라 서울 면적의 2.5배나 된다. 경상분지(慶尙盆地) 지질구조에 해당한다. 따라서 암석은 중생대 백악기에 형성된 퇴적암 외에, 화산활동으로 그 위를 덮은 화성암 및 그뒤 이를 관입한 심성암의 활동으로 화강암과 화강편마암도 많이 분포한다.

 

태백산맥의 지맥이 군을 동서 방향으로 횡단하여 북쪽에는 봉수산(烽燧山:570m)·미면산(美面山:461m)·연점산(鉛店山:871m) 등 높은 산지가 솟아 있고, 남서쪽은 보문산(普門山:643m)·백자봉(白自峰:369m)·갈라산(葛羅山:570m) 등의 산지가 병풍 모양으로 둘러싸고 있다. 따라서 북동쪽은 높고 남서쪽은 비교적 낮다. 이들 산지 사이에 흐르는 낙동강과 그 지류인 반변천(半邊川)이 시내에서 합쳐져 서쪽으로 흐르는데, 그 주위에 풍산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기후는 남부내륙형 기후에 속해 한서의 차가 심하고 강수량은 다소 적은 편이다. 연평균기온은 11.8, 8월 평균기온 25.0, 1월 평균기온 -2.3℃이고, 강수량은 연평균 1,049.9mm이다(평년값 기준). 안동댐과 임하댐이 건설된 후 안개 끼는 날이 많아졌다. [네이버 지식백과] 안동시 [Andong-si, 安東市] (두산백과)

 

 

 

 

Posted by 호롱불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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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한산성 탐방 여행

 

2015.6.27

 

 

 

 

 

 

 

 

 

 

 

 

 

 

 

 

 

 

남한산성 비석군

 

 

 

 

 

 

 

 

 

 

 

 

 

 

 

 

 

 

 

 

 

 

 

 

 

 

 

 

 

 

 

 

 

 

비온 뒤 날씨가 맑아 시야가 좋다

잠실 롯데 123층 건물도 보인다

 

 

 

 

 

 

 

 

 

 

 

 

 

 

 

 

 

 

 

 

 

 

 

 

성남이 한 눈에 들어오네

 

 

 

 

 

 

 

 

 

 

 

 

 

 

 

 

 

 

 

요즘 관광지에 이런 것을 깔아서

눈비올때 걷기 편하게 하는 것이

유행이다

 

 

 

 

 

 

 

 

때마침 지나가는 비행기 포착

 

 

 

 

 

 

 

 

 

 

 

 

 

 

 

 

 

 

때마침 지나가는 비행기 포착

 

 

 

 

 

 

 

 

 

 

 

 

 

 

 

 

 

 

 

 

 

 

 

 

 

 

 

 

 

 

 

 

 

 

 

 

 

 

 

 

 

 

효자우물

 

 

 

 

 

 

 

 

 

 

 

 

 

 

 

 

 

 

 

 

 

 

 

 

 

 

 

 

 

 

 

 

 

 

 

 

 

 

 

 

 

 

 

 

 

다리가 떨릴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참지 말고

가슴이 떨릴 때

더 넓은 세상으로 여행을 떠나자

 

 

 

 

그리하면

힐링이라는 값진 선물이 주어질 것이다

켜켜이 쌓인 내 절망의 찌꺼기는 어느새

다 사라져버리고

새로운 희망에 벅차서

다시 일터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이제

내 가족 내 이웃을 더 열심히 사랑하고

더 큰 열정으로 즐겁게 일을 하는

큰 가슴이 되어

새로운 일상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가슴이 떨릴 때 여행을 떠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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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뉴론♥ 2015.06.27 09:4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남한산성에도 여러가지로 볼거리가 있긴해도 왼지 쌀늘하네여

  2. 목요일. 2015.06.27 17: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초등학교때 가본 것이 거의 마지막이었던 것 같아요.

 

 

 

 

 

백제의 왕도 부여

 백제역사문화관 여행

 

2015.6.3

 

 

 

 

 

백제문화단지

 

"우수하고 화려했던 백제문화로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다!"

 

국내 최초로 삼국시대 백제 왕궁과 평민들의 사는 모습까지 그대로 재현한 백제문화단지. 부여군은 우수한 문화로 번성했던 백제의 역사를 후세에 알리고자 1994년부터 2010년까지 17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공을 들여 단지를 조성했다.

 

 

 

 

 

 

 

 

 

 

 

 

 

 

 

 

 

 

 

 

 

 

 

 

 

 

 

 

 

 

 

 

 

 

 

 

 

 

 

 

 

 

 

 

 

 

 

 

 

 

 

 

 

 

 

 

 

 

 

 

 

 

 

 

 

 

 

 

 

 

 

 

 

 

 

 

 

 

 

 

 

 

 

 

 

 

 

 

 

 

 

 

 

 

 

 

 

 

 

 

 

 

 

 

 

 

 

 

 

 

 

 

 

 

 

 

 

 

 

 

 

 

 

 

 

 

 

 

 

 

 

 

 

 

 

 

 

 

 

 

 

 

 

 

 

 

 

 

 

 

 

 

 

 

 

 

 

 

 

 

 

 

 

 

 

 

 

 

 

 

 

 

 

 

 

 

 

 

 

 

 

 

 

 

 

 

 

 

 

 

 

 

 

 

롯데 리조트

롯데가 여기에...또...단지를 조성할려나...

 

 

 

다리가 떨릴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참지 말고

가슴이 떨릴 때

더 넓은 세상으로 여행을 떠나자

 

 

 

 

그리하면

힐링이라는 값진 선물이 주어질 것이다

켜켜이 쌓인 내 절망의 찌꺼기는 어느새

다 사라져버리고

새로운 희망에 벅차서

다시 일터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이제

내 가족 내 이웃을 더 열심히 사랑하고

더 큰 열정으로 즐겁게 일을 하는

큰 가슴이 되어

새로운 일상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가슴이 떨릴 때 여행을 떠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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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곽 안에 산 정상과 골짜기가 모두 있는 대규모 산성

 

백제의 왕도 부여 부소산성(扶蘇) 여행

 

충남 부여군 부여읍 관북리

 

2015.6.3

 

 

 

부소 산성(扶蘇山城 )

 

사적 제 5. 충청남도 부여군 부소산에 있는 백제 시대의 성터부소 산성은 538년 백제 성왕이 웅진에서 사비로 도읍을 옮긴 후 백제가 멸망할 때까지 123년 동안 백제의 도읍이었던 곳으로, 당시에는 사비성이라 불렀다.

 

 

* 백제 문화의 보고, 부소산과 부소산성 *


부여에 들어서면 시가지 북쪽에 검푸른 숲을 이룬 해발 106m 의 나지막한 부소산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 온다. 부여의 진산인 부소산에는 수많은 백제 여인들이 꽃잎처럼 떨어져 죽음으로 절개를 지킨 낙화암, 백화정, 사자루, 반월루, 궁녀사, 고란사, 부소산성(사적 제5), 해맞이하는 영일루, 성충ㆍ흥수ㆍ계백의 백제 충신을 모신 삼충사, 곡식 창고터였던 군창지, 백제 군인의 움집 수혈병영지 발길 닿는 곳마다 발걸음을 붙잡는 토성들, 백제의 역사와 백제왕실의 이야기가 곳곳에 배어 있다.

 

 


금강의 남안에 있는 부소산의 산정을 중심으로 테뫼식 산성이 동서로 나뉘어 붙어 있고, 다시 그 주위에 북동쪽의 계곡을 둘러쌓은 포곡식(包谷式)산성을 동반한 복합식 산성으로, 성내에는 사자루, 영일루(迎日樓), 반월루(半月樓), 고란사(皐蘭寺), 낙화암(落花巖), 사방의 문지(門址), 군창지(軍倉址) 등이 있다. 『삼국사기(三國史記)』 백제본기(百濟本紀)에는 사비성, 소부리성(所扶里城)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산성이 위치한 산의 이름을 따서 부소산성으로 불리고 있다.

 

 


이 산성은 백제의 수도인 사비 도성의 일환이며, 왕궁을 수호하기 위하여 538(성왕 16)수도의 천도를 전후한 시기에 축조된 것으로 보이나, 이 보다 먼저 500(동성왕22)경 이미 산성이 축조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후 천도할 시기를 전후하여 개축되었고, 605(무왕 6)경에 대대적인 개수축이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편 일부의 성벽은 통일신라시기에 수축되고 고려와 조선 시대에는 고을의 규모에 맞도록 축소되어 이용된 것으로 여겨진다.

 

 


* 백제 문화를 만난다, 부소산의 유적지 *


* 삼충사
부소산성 정문인 사비문을 지나 조금 걸어올라가면 삼충사가 있다. 외삼문과 내삼문을 지나 사당에 들어서면 백제말 삼충신인 성충, 흥수, 계백의 영정과 위패가 모셔져 있다. 해마다 10월 백제문화제때 제향을 올리고 세분의 숭고한 구국충절을 기린다.

*
영일루
영일루는 부소산성의 맨 동쪽 산봉우리에 세워져 백제왕과 귀족들이 멀리 계룡산의 연천봉에서 떠오르는 해를 맞이하며 국정을 계획하고, 나라의 태평과 백성들의 평안을 기원했던 영일대에 세운 누각이다.

*
군창지
일명 만리창(萬里倉)이라 불렀던 이곳은 1915년 불에 탄 쌀이 발견된 군대 곡식을 보관했던 창고이다.

*
수혈병영지
군창지를 조금 지나면 움집이 보인다. 움집은 백제 때 군인들의 움막을 발굴, 복원한 것으로 1m 가량 움을 파고, 사방을 나무나 짚으로 벽을 두른 뒤 초가지붕을 얹은 모습이다. 원래 움집터와 저장고를 발굴한 곳에 전시실을 지어 구조를 자세히 살필수 있게 하였다.

*
사자루
부소산 가장 높은 곳(해발 106m)에 위치한 사자루는 동쪽 영일루와 더불어 일월 음양을 뜻하며 달이 밝은 밤 누각에 오르면 아름다운 경치가 눈앞에 펼져지고 시흥이 절로 일어난다. 사자루 건립 당시 터를 파다가 광배 뒷면에 명문이 새겨진(정지원명) 금동석가여래입상(보물 제196)이 발견되었다. 사자루 현판 글씨는 의친왕 이강의 친필이고, 뒤쪽에 붙은
白馬長江은 서예가 해강 김규진의 작품이다.

*
백화정
낙화암 절벽위에 세워진 육각지붕의 정자가 백화정이다. 백마강을 시원하게 내려다 볼 수 있는 백화정은 백제멸망 당시 꽃잎처럼 떨어져 죽음으로 절개를 지킨 숭고한 백제 여인들의 원혼을 추모하기 위해 1929년에 부풍시사(
扶風詩社)라는 시모임에서 세웠다.

*
궁녀사
반월루 광장에서 동북쪽 태자골로 조금 내려가면 궁녀사가 나온다. 이 궁녀사는 백제 의자왕 20(660)에 나당 연합군에 의해 사비성이 함락되던 날, 낙화암에서 꽃잎처럼 떨어져 죽은 백제 여인들의 충절을 추모하고 그 뜻을 후세에 널리 기리고자, 1965년에 세웠다. 10월 백제문화제 때 제향을 올리고 있다.

*
부여관북리백제유적
부여군 부여읍 관북리 725번지에 위치한 이 유적은 현재 왕궁지로 알려져 있으며, 국립부여 문화재연구소 남쪽일대 184필지 95,048(28,780) 33필지 2,102㎡는 1983 9월 충청남도 기념물 제43호 전백제왕궁지(
傳百濟王宮址)로 지정되어 있다.

1982
년부터 이 일대를 중심으로 충남대학교 박물관에서 5차에 걸쳐 발굴조사하여 1983년도에는 방형석축연지(
方形石築蓮池)가 발견되었고, 1988년 발굴조사에서는 토기 구연부에 북사(北舍)라는 명문이 발견되었으며, 1992년 조사에서는 현재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의 남쪽 50m 지점에서 백제시대의 도로유적과 배수시설이 드러났다. 삼국시대의 궁궐 중 고구려의 안학궁을 제외하면 아직까지 신라와 백제의 왕궁은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지만, 백제시대 마지막 도읍이었던 사비도성의 일부 유적이 밝혀진 것은 매우 중요한 학술적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백제의 마지막을 바라보다

백제의 마지막 도읍지 사비, 지금의 부여 낙화암의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부소산성이 있다. 산이라고 하지만 해발 100m 정도밖에 되지 않는 언덕으로 그 주변을 두르고 있는 산성은 백제의 마지막 보루가 되었던 곳이다. 천천히 걸으면서 백제의 마지막을 기억해보자.

입구에서 올라 오른편으로 돌아가면 먼저 삼충사라는 사당이 나오는데 백제 말의 충신인 성충·흥수·계백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는 곳이다. 임금에게 직언을 하다 감옥에 갇혀서도 나라 걱정을 했던 성충, 성충과 함께 임금께 고하다 유배를 당한 흥수, 황산벌전투로 잘 알려진 계백 등 역사 속 인물들을 만나보자
.


 

 
삼충사를 지나 조금 더 오르면 동쪽을 향하고 있어 해맞이를 할 수 있는 영일루가 나오며, 그 뒤편으로는 곡식창고 자리였던 군창 터가 있다. 낮은 울타리로 둘러놓아 들어가지는 못하지만 이곳에서 불탄 쌀이나 콩들이 발견되는데 바로 군량을 적에게 내어주지 않기 위해 불을 낸 흔적이다
.

 


부소산성 가장 꼭대기의 사자루는 달을 바라보는 서편을 향하여 자리하고 있다. 여기까지 왔으면 이제 내려가는 길만 남았는데 내려가는 길에는 더욱 특별한 장소들이 기다리고 있다. 낙화암이 그곳으로, 삼 천 궁녀가 몸을 던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이다
.

 


삼국사기에 기록된 바에 의하면 이곳의 원래 이름은 사람이 떨어져 죽은 바위라는 뜻의 타사암이라고 하니 백마강이 내려다보이는 시원한 풍경을 마냥 즐기기에는 슬픈 이야기이다. 낙화암 아래에는 한 번 먹을 때마다 3년이 젊어진다는 약수로 유명한 고란사가 있으니 내려가서 고란사도 둘러보고 약수도 마셔보도록 하자.

[네이버 지식백과] 부소산성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국내 여행 1001, 2010.1.15, 마로니에북스)

 

 

 

 

 

 

 

 

 

 

 

 

 

 

 

 

 

 

 

 

 

 

 

 

 

 

 

 

 

 

 

 

 

 

 

 

 

 

 

 

 

영일루

 

 

 

 

 

 

 

 

 

군창지

 

 

 

 

 

 

 

 

 

 

 

 

 

 

 

 

 

 

 

 

 

 

 

 

 

 

 

 

 

 

 

 

 

 

 

 

 

 

 

 

 

 

 

 

 

 

 

 

 

 

 

 

 

 

 

 

 

 

 

 

 

 

 

 

 

 

 

 

 

여행에는 주제와 목적도 있어야 한다.

주제가 없는 여행은 방황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주제와 목적이 있는 여행을 할 때

열린 마음으로 만나는 것들을 통해

비로소 여행의 기쁨과 지혜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인생도 일종의 여행과 같다.

출발점이 있으면 종착점도 있다

인생도 여행도 가끔 휴식과 재충전이 필요하다

 

지금 당신은 어떤 여행자의 모습으로

인생길을 걷고 있는가?

(호프만 지음,

행복은 돈이 되는 것일까?

p.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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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강 구드래나루터 여행

2015.6.3

 

 

 

 

 

 

 

 

 

 

 

 

 

 

 

 

 

 

 

 

 

 

 

 

 

 

 

 

 

 

여행에는 주제와 목적도 있어야 한다.

주제가 없는 여행은 방황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주제와 목적이 있는 여행을 할 때

열린 마음으로 만나는 것들을 통해

비로소 여행의 기쁨과 지혜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인생도 일종의 여행과 같다.

출발점이 있으면 종착점도 있다

인생도 여행도 가끔 휴식과 재충전이 필요하다

 

지금 당신은 어떤 여행자의 모습으로

인생길을 걷고 있는가?

(호프만 지음,

행복은 돈이 되는 것일까?

p.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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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송이 꽃으로 산화된

3천 궁녀의 넋이 머무는 곳

 

 

부여 낙화암(落花岩) 여행

 

2015.6.3

 

 

 

낙화암(落花岩)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부소산(扶蘇山)에 있는 바위. 1984 5 17일 충청남도문화재자료 제110호로 지정되었다. 서기 660(백제 의자왕 20) 백제가 나당연합군(羅唐聯合軍)의 침공으로 함락되자 궁녀 3,000여 명이 백마강(白馬江) 바위 위에서 투신하여 죽었다고 한다. 그 바위를 사람들이 낙화암이라고 불렀는데, 이 암석 위에 1929년 다시 그곳 군수 홍한표(洪漢杓)가 백화정(百花亭)을 지었고,

 

 

절벽 아래에는 ‘낙화암(落花岩)’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바위 위에는 백화정(百花亭)이라는 조그마한 정자가 있다. 《삼국유사》에 인용된 백제고기(百濟古記)에 의하면 부여성 북쪽 모퉁이에 큰 바위가 있어 아래로는 강물에 임하는데, 모든 궁녀들이 굴욕을 면하지 못할 것을 알고 차라리 죽을지언정 남의 손에 죽지 않겠다고 하고, 서로 이끌고 이곳에 와서 강에 빠져 죽었으므로 이 바위를 타사암(墮死巖)이라 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내용으로 보아 낙화암의 본래 명칭은 타사암이었는데, 뒷날에 와서 궁녀, 즉 여자를 꽃에 비유하고 이를 미화하여 붙인 이름이 분명하다. 이 바위와 관련되어 전해오는 전설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백제의 마지막 왕인 의자왕은 용담(勇談)이 많은 영주(英主)였는데, 여러 차례 신라의 여러 고을을 쳐서 천하에 그 성세(聲勢)를 높인 뒤로는 정사는 돌보지 않고 날마다 궁성 남쪽의 망해정(望海亭)에서 궁녀들을 데리고 가무주연(歌舞酒宴)의 향락을 일삼았다.

 

 

좌평 성충(成忠)은 이를 근심하고 극력 간()하였으나, 왕은 이 말이 귀에 거슬려 그를 옥에 가두어버렸다. 그러자 그는 마음이 아파서 죽고 말았다.

 

 

이러할 때 일찍이 백제의 침략을 받아온 신라는 무열왕 및 김유신(金庾信) 등의 영주와 명신(名臣)이 나타나서 나라의 힘을 크게 길러 복수를 하고자 당나라 군사와 힘을 합하여 백제를 치게 되었다. 이에 백제의 용장 계백(階伯) 4천의 적은 군사로써 황산(黃山)벌에서 신라 군사와 싸웠으나 패하고 말았다.

 

 

그러자 나당연합군의 수많은 군사가 일시에 수륙 양면에서 쳐들어와 왕성(王城)에 육박해오자 왕은 그제야 성충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음을 후회하였다. 왕은 하는 수 없이 해질 때를 기다려 왕자 효()를 데리고 웅진성(熊津城)으로 달아나서 싸웠으나 성문은 부서져 열리고 말았다.

수많은 궁녀들이 슬피 울면서 흉악한 적군에게 굴욕을 당하는 것보다 깨끗하게 죽는 것이 옳다 하여 대왕포(大王浦) 물가 높은 바위 위에서 치마를 뒤집어쓰고 사비수 깊은 물에 몸을 던지고 말았다. 이러한 일로 인하여 이 바위를 낙화암이라 하였다고 한다.

 

 

 

* 백제시대의 전설을 만난다, 낙화암 (백화정) *


부소산 북쪽 백마강을 내려다보듯 우뚝 서 있는 바위 절벽이 낙화암이다. 낙화암은 사비성이 나당연합군에게 유린될 때, 수 많은 백제 여인들이 꽃잎처럼 백마강에 몸을 던졌다는 전설이 깃든 곳이다. 이 전설로 낙화암이라는 꽃답고 애절한 이름을 얻었지만, [삼국유사]에는 타사암(墮死岩-사람이 떨어져 죽은 바위)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백제 성왕이 국가 중흥의 원대한 꿈을 펼치려 사비로 도읍을 옮긴 후 관산성 전투에서 전사하는 비운을 맞기도 하였으나, 위덕왕·무왕·의자왕에 이르는 동안 최강의 국력을 자랑하게 되었다. 이에 신라는 단독으로 백제에 대항하기가 어려워 당나라와 연합하여 백제와 대결하기에 이르렀다. 이때 백제는 국운을 다했던지 의자왕도 정사를 소홀히 하고, 나라가 흔들리게 되었다. 결국 의자왕 20(660) 사비성은 신라·당나라 연합군에게 함락되고, 성내에 살던 궁녀와 도성에 남은 여인들은 부소산성으로 피신하였다. 그러나 침략군이 부소산성까지 몰려들자, 백제 여인들은 적군에게 잡혀가 치욕스러운 삶을 사느니보다 차라리 푸른 강물에 몸을 던져 무너지는 국운과 함께 목숨을 깨끗이 버리는 길을 택했던 것이다.

 


이처럼 여자의 정조를 생명보다 더 소중히 하고, 백제마지막 순간까지 지키려 했던 백제 여인들의 충절과 넋이 어린 곳이 바로 낙화암이다. 바위 절벽에 새겨진 ‘낙화암(
落花岩)’이라는 글씨는 조선시대 학자인 우암 송시열 선생이 쓴 글씨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낙화암  (대한민국 구석구석, 2013.6, 한국관광공사)

 

 

 

 

 

 

 

 

 

 

 

 

 

 

 

 

 

 

 

 

 

 

 

 

 

 

 

 

 

 

 

 

 

 

 

 

 

 

 

 

 

 

 

 

 

 

 

 

 

 

 

 

 

 

여행에는 주제와 목적도 있어야 한다.

주제가 없는 여행은 방황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주제와 목적이 있는 여행을 할 때

열린 마음으로 만나는 것들을 통해

비로소 여행의 기쁨과 지혜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인생도 일종의 여행과 같다.

출발점이 있으면 종착점도 있다

인생도 여행도 가끔 휴식과 재충전이 필요하다

 

지금 당신은 어떤 여행자의 모습으로

인생길을 걷고 있는가?

(호프만 지음,

행복은 돈이 되는 것일까?

p.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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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가 한옥호텔

 

경기도 연천군 연천읍 고문리 420-1

(현문로 339-10)

전화: 031-834-8383

 

 

      

    서울시 명륜동 성균관대학교 기숙사에 터를 내주고, 경기도 연천의 새로운 터로 옮겨 앉은 조선왕가의 본채 염근당. 집을 옮기기 위해 해체하던 중, 고종 황제의 손자 ‘이근’의 집이라는 상량문이 발견되었다. 높은 기단 위에 우뚝 자리한 염근당은 일반 민가에서 보기 힘든 곧게 뻗은 기둥과 서까래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어디 하나 금 가고 터진 곳이 없는 자재는 모두 궁궐을 지을 때 쓰이는 금강송을 잘 말려 사용한 것이라고. 연천평야가 한눈에 들어오는 누마루가 인상적인 사반정과 어우러져 ‘ㅁ’자 마당을 완성하는 염근당 뒤편엔 별채인 자은정이 있다. 모두 황토로 벽과 바닥을 채워 힐링을 위한 장소로 재탄생되었다.
고려왕들의 위패를 모신 연천 숭의전지, 임진강이 한눈에 들어오는 연천 당포성, 화산이 만든 계곡 지형을 볼 수 있는 동이리 주상절리, 선사시대 사람들의 삶을 살펴볼 수 있는 전곡선사박물관도 연천을 대표하는 관광지다
문의전화 : 조선왕가 031)834-8383 연천군청 문화관광체육과 031)839-2061

 

 

 

연천으로 옮겨 앉은 황손의 ,

조선왕가

 

경기도 연천군은 한국전쟁으로 생겨난 비무장지대를 품고

      경기도 연천군은 한국전쟁으로 생겨난 비무장지대를 품고 있다. 전쟁으로 황폐해진 연천군에 활기를 불어넣은 것은 토박이 주민들과 그 옛날 선사시대 사람들처럼 새로운 삶터를 찾아온 이들이다. 지금도 맑고 깨끗한 자연을 찾아 이곳으로 이주하는 사람들이 있다. 연천군 연천읍 현문로에 자리한 조선왕가도 그중 하나다. 조선왕가의 염근당은 원래 서울시 종로구 명륜동에 자리하고 있었다. 성균관대학교 옆에 있던 이 집은 대학 기숙사에 터를 내주고 사라질 운명이었다. 위기에 처한 염근당을 연천군으로 옮겨 지은 사람은 조선왕가의 주인 남권희․김미향 씨 부부다.


 

 

    

      건물 해체 도중 집주인이 누구인지 밝혀줄 상량문이 발견되었다. 상량문에는 이 집을 지은 사람이 고종 황제의 손자 ‘이근’이며, 건물의 이름이 ‘미나리처럼 혼탁한 물속에서도 추운 겨울을 이기고 자라는 기상을 생각하는 집’이라는 뜻이 있는 ‘염근당’이라는 내용이 기록되었다. 황손의 집이 어떤 모습인지 알 수 있는 귀중한 한옥인 것이다.

 

 

 

  

     남권희․김미향 씨 부부는 염근당을 연천으로 옮겨 짓는 동안 커다란 기둥 하나, 장대석 하나 다치지 않고 조선 시대 건축양식에 맞게 복원되도록 꼼꼼히 살폈다. 여러 전문가의 도움이 있었다고 해도 99칸 한옥을 옮기는 일이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한겨울 추위에 황토 작업을 할 수 없어 인부들을 돌려보낸 일도 그중 하나. 그 겨울 왜 이리 힘든 일을 자처했는지 슬며시 고민이 머리를 들었다. 하지만 소나무 위에 작은 둥지를 틀기 위해 수많은 나뭇가지를 떨어뜨리며 수고하는 까치를 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덕분에 객실 내부에 현대식 화장실을 갖추고 125칸으로 규모를 키운 조선왕가가 만들어졌다.

 

 

조선왕가의 한옥은 본채인 염근당과 행랑채인 사반정, 별채인 자은정으로 구성된다. 조선왕가의 손님맞이는 편의 시설이 자리한  현대식 건물 1층에서 시작된다. 이곳에서 입․퇴실 절차와 식사 예약을 마치고 한옥으로 건너가 편안히 쉴 수 있다.

 

 

     염근당은 황손의 집답게 장대석을 높이 쌓은 기단 위에 우뚝 자리한다.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좌우로 뻗은 건물은 ‘ㄷ’자 모양이다. 주련으로 장식된 기둥과 대들보는 일반 민가에서 보기 드문 곧게 뻗은 나무를 사용했다. 어디 하나 금 가고 터지지 않은 나무를 보면 오래전 지은 집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모두 궁궐을 지을 때 쓰이는 잘 말린 금강송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염근당은 휜 나무를 그대로 사용해 푸근한 곡선미를 보여주는 민가에 비해 반듯한 위엄이 서린 건축물이다. 저절로 발걸음을 조심조심 떼게 되는 공간이다.

   

염근당을 내려서면 대문채인 사반정이 있다. ‘一’자 건물인 사반정에는 연천평야가 한눈에 들어오는 누마루가 있다. 따뜻한 햇볕이 내리쬐는 한낮, 이곳에 앉아 차 한잔 마시며 여유를 즐겨도 좋겠다.

      염근당 뒤편에 자리한 자은정은 이 집의 별채다. 연천으로 온 주인 부부가 처음 기거하던 곳인데, 지금은 여러 가족이 함께 머물 수 있는 공간으로 준비되었다. 명륜동 시절엔 고 박정희 대통령도 자주 들른 집이다.

 

   

조선왕가에서는 숙박 외에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다. 여러 가지 약재를 넣어 끓인 물로 온몸의 독소를 빼내는 왕가비 훈욕 테라    피, 황토편백찜질방에서 찜질하기, 약재 가루를 넣어 비누 만들기 등이다. 봄부터 가을까지는 글램핑장도 운영된다. 이곳에서 직접 발효한 여러 가지 효소차와 약선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카페테리아도 운영된다. 단 식사는 예약해야 한다.

 

 

      조선왕가와 더불어 돌아볼 연천의 관광지는 강과 마주하고 있다. 그 첫 번째는 사적 제223호로 지정된 연천 숭의전지다. 조선 시대에 고려 왕 7명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 지내던 곳으로, 숭의전은 한국전쟁 당시 불타고 말았다. 임진강과 어우러진 풍경이 아름답다.

 

 

연천 당포성(사적 제468호)은 여타 성곽에 비해 그리 크지 않다. 절벽으로 구성된 지형이 천혜의 성벽 역할을 했기 때문. 임진강이 한눈에 들어오는 당포성에 올라서면 삼국시대에 임진강을 따라 오가던 배와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화산이 만든 계곡 지형이 있는 연천군은 ‘지질 교과서’라고 불린다. 여러 곳에서 주상절리를 만날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임진강과 한탄강이 만나는 동이리에도 주상절리가 있다.

 

    

     연천에는 오래전부터 우리나라에 사람이 살았음을 증명하는 공간이 있다. 연천 전곡리 유적(사적 제268호)이다. 1978년에 주한 미군으로 우리나라에 온 그렉 보웬이 아슐리안형 주먹도끼를 발견하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전곡리 유적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전곡선사박물관에서 살펴볼 수 있다.

 

     주먹도끼의 다양한 모양, 매머드 뼈로 지은 집의 형태, 아프리카부터 한반도까지 걸어서 이동한 구석기인의 삶을 보여주는 영상물 등 선사시대의 이해를 돕는 다양한 전시가 펼쳐진다. 아이들과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된다.

 

     ○ 당일 여행코스
문화 유적 답사 : 연천 숭의전지→연천 당포성→동이리 주상절리→전곡선사박물관→조선왕가
명소 탐방 코스 : 재인폭포→조선왕가→전곡선사박물관→연천 숭의전지

 1박 2일 여행코스
첫날 : 연천 숭의전지→연천 당포성→전곡선사박물관→조선왕가
둘째날 : 조선왕가→재인폭포→귀가


○ 관련 웹사이트 

 - 연천군청 문화관광 www.iyc21.net:_yc:tour:a06_b09_c01.asp
 - 조선왕가 www.royalresidence.kr
 - 전곡선사박물관 www.jgpm.or.kr


○ 문의 

 - 연천군청 문화관광체육과 031-839-2061
 - 조선왕가 031-834-8383
 - 전곡선사박물관 031-830-5600
 
○ 잠자리
 - 조선왕가 : 연천읍 현문로, 031-834-8383, www.royalresidence.kr (명품고택)
 - 초성모텔 : 청산면 청신로, 031-835-2610 (굿스테이)


○ 먹거리

 - 불탄소가든 : 민물매운탕, 연천읍 현문로, 031-834-2770
 - 한탄강오두막골 : 가물치구이․민물새우탕, 청산면 청창로141번길, 031-832-4177
 - 망향비빔국수 : 비빔국수, 청산면 궁평로, 031-835-3575
 - 나능이 : 능이버섯백숙, 전곡읍 평화로, 031-833-9988


○ 주변 볼거리 : 한탄강관광지, 평화누리길, 연천 경순왕릉, 연천 호로고루  /  한국관광공사_사진제공


 

 

 

고종황제의 영손(令孫)으로 조선조 역대 왕의 종묘제례를 관장했던 황족 이근(李芹)의 고택인 염근당(念芹堂)이 경기도 연천군 연천읍에 중건돼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

 

 ‘조선왕가’로 재탄생, 2011.6월부터 일반에 공개되며 현재 전통한옥 호텔로 활용하고 있다. 조선왕가는 1800년대 짓고 1935 99칸으로 중수된 황실가의 전통한옥으로 큰 가치를 담고 있지만 이를 알아보는 이가 없어 한때 헐릴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하지만 염근당은 남권희(51)씨의 눈에 들어와 ‘조선왕가’의 이름을 얻고 세상의 밝은 빛을 보게 됐다. 의약품 수출입업을 하며 남부럽지 않게 살던 그는 마음에 드는 한옥을 발견하면 그가 공장부지로 오래전 마련해둔 연천에 옮겨 짓겠다는 생각을 품고 살았다.

 

 

“사실 우리 가족이 오붓하게 쉴 수 있는 20평 규모의 한옥을 생각했어요. 무엇보다 옛 사람들의 손때가 묻어 있는 헌집이었으면 했고요. 새로 짓는 한옥은 고즈넉한 맛이 떨어지고 깊은 맛이 없거든요. 전통한옥을 찾아 전국을 돌아다니다 5년 전 마음에 드는 집을 발견했는데 제가 출장을 다녀온 이틀 사이에 강화도로 팔려 나갔더라고요. 그때처럼 아쉬웠던 적이 없는 것 같네요(웃음).

 

 

그렇게 낙담하고 6개월이 지난 후 그는 인생을 바꿀 만한 결심을 하게 된다. “우리의 궁궐 건축양식 그대로를 담고 있는 염근당을 발견하게 된 겁니다. 저도 그렇고 소유주였던 성균관대 측도 이 고택이 조선왕가인 줄은 꿈에도 몰랐지요. 건평만 250, 이는 과거 영의정이 살던 집의 10배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규모예요.

 

 

구입이 망설여지기도 했지만 다시는 이런 기회가 오지 않을 것만 같아 제 전 재산을 걸어 과감한 선택을 했습니다. 또 그 부지에 성균관대가 기숙사를 짓기로 한 상태여서 고택이 헐릴 수밖에 없다는 안타까움도 제 선택에 부채질을 했고요.

 

 

그는 2008 615일부터 약 5개월에 걸쳐 염근당을 해체, 기와ㆍ대들보ㆍ서까래ㆍ기둥ㆍ주춧돌ㆍ기단석ㆍ토방돌 등을 연천읍 고문리의 자은산 기슭, 5000평 부지에 옮기는 작업에 돌입했다. 트럭 약 300대 분량의 엄청난 양이었다.

 

 

남 회장이 이 전통한옥이 황족의 고택인 염근당이었다는 것을 알게된 건 염근당을 이건하기 위해 해체하는 과정 중 상량문이 나오면서다. 2008 815일은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상량문이 발견된 날이거든요. 대들보에서 붉은 비단에 싸여진 상량문과 함께 금 셋, 은 다섯, 동 일곱 덩어리 등이 함께 나왔지요. 말 그대로 보물을 발견한 듯 상당히 흥분됐습니다.

 

 


 

염근당 창건 당시 상량문은 홍문관 대제학을 지낸 정만조 선생이 짓고, 당대의 명필인 이병희 선생이 글씨를 쓴 것으로 밝혀졌다.

 

 

상량문엔 왕가의 주인이 고종황제의 영손이며, 이근의 고택임을 증명하는 내용과 집주인이 높은 지위에도 불구하고 소박하고도 청렴해 어진 사람임을 칭송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상량문 끝 구절에 ‘一華石必使愼守芬擇永存(일화석필사신부문택영존ㆍ꽃 한 송이 돌 하나라도 반드시 신중하게 지키시어 아름답고 향기로운 은택이 영원히 보존되게 하여 주소서)’라는 문구가 있는데 마치 제게 하는 말 같았죠. 제대로 복원하지 않으면 영원히 역사의 후손들에게 죄를 짓게 되는 것만 같아 사명감을 갖고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정성껏 복원했습니다.

 

 

 염근당을 이전ㆍ복원하는 일은 무형문화재 도편수 최명렬 선생과 무형문화재 와공 이도경 선생이 직접 참여, 대들보ㆍ서까래ㆍ기둥ㆍ주춧돌ㆍ기단석에 번호를 일일이 기록해 원형의 모습에 어긋남이 없도록 했다.

 

 

“대들보ㆍ서까래ㆍ기둥 등의 목재는 당시 춘양목으로, 기와ㆍ주춧돌ㆍ기단석ㆍ토방돌까지도 당시의 것을 사용했습니다. 왕가의 건물 벽체와 바닥은 천연 황토를 사용했고요.

 

 

그리고 2010. 9월 지금의 조선왕가 모습으로 염근당은 새 생명을 얻게 된 것입니다. 전 이곳에서 사계절을 모두 지내 봤는데, 주변 자연환경과 조선왕가의 아름다움이 어우러져 최고의 풍경을 그려내고 있어요. 매일매일이 새롭고 놀라운 경험이지.

 

 

남 회장은 조선왕가가 재탄생하는 동안 인생관과 가치관도 많이 달라졌다고 했다.
“사실 제가 하던 사업은 날로 번창해 그동안 아무 부족함과 어려움 없이 누리고만 살아왔거든요. 그러니 주변을 되돌아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어요. 그러다 조선왕가와 인연을 맺으며 ‘우리 전통한옥에 담긴 선조들의 지혜와 멋을 널리 알려야겠다’는 사명감을 갖게 됐습니다. 그래서 사업은 현재 다른 직원들에게 맡기고 저는 조선왕가 일에만 집중하고 있습니다.

 


조선왕가는 2011.6월 부터 전통한옥 호텔로 일반인에게도 개방됐다. 풍요로운 자연 속에 멋드러지게 지어진 우리 옛 건축물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며 충분히 쉴 수 있는 공간으로 거듭난 것이다.

 

 

“이미 입소문이 나 많은 분들이 다녀가셨는데 반응이 상당히 좋습니다. 자연 속에서 ‘진정한 휴식’을 맛보고 간다 하시면서요. 다양한 프로그램도 상시 진행하려고 해요. 2011.7.22일부터 85일까지 4차에 걸쳐 ‘2011 글로벌 미래 인재 개발 리더십 캠프’를 열어 해외동포 자녀들에게 한국의 아름다움과 우수한 문화를 알렸다.” 남 회장은 “세계적으로 왕손의 집을 온 국민에게 개방해 직접 묵을 수 있게 한 사례는 조선왕가가 최초”라고 강조했다.

 


 

“우리나라가 ‘문화 강국’으로 나아가는 데 작은 보탬이 되고 싶어요. 조선왕가 복원공사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앞으로는 조선왕가 건립사업을 외국에서도 적극 추진해 볼 계획입니다.

=홍연정기자 hong@ 사진=조선왕가 제공 http://www.cnews.co.kr/uhtml/read.jsp?idxno=201107190915311630061

 

 

 

 

여행에는 주제와 목적도 있어야 한다.

주제가 없는 여행은 방황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주제와 목적이 있는 여행을 할 때

열린 마음으로 만나는 것들을 통해

비로소 여행의 기쁨과 지혜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인생도 일종의 여행과 같다.

출발점이 있으면 종착점도 있다

인생도 여행도 가끔 휴식과 재충전이 필요하다

 

지금 당신은 어떤 여행자의 모습으로

인생길을 걷고 있는가?

(호프만 지음,

행복은 돈이 되는 것일까?

p.189)

 

Posted by 호롱불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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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신영헌 2015.02.05 08: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가보고 싶은 버킷리스트에 등록하다

 

 

 

 

 

 남한산성 기행-2014.11.23

 

 

 

 남한산성 기행-2014.11.23

 

남한산성의 남문(지화문)에서

좌익문(동문)을 거쳐

동장대터를 지나

전승문(북문)가지 걸어서 기행하다

 

  

 남한산성 기행-2014.11.23

 

  

 남한산성 기행-2014.11.23

 

  

 남한산성 기행-2014.11.23

 

  

 남한산성 기행-2014.11.23

 

  

 남한산성 기행-2014.11.23

 

  

 남한산성 기행-2014.11.23

 

  

 남한산성 기행-2014.11.23

 

  

 남한산성 기행-2014.11.23

 

  

 남한산성 기행-2014.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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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는 주제와 목적도 있어야 한다.

주제가 없는 여행은 방황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주제와 목적이 있는 여행을 할 때

열린 마음으로 만나는 것들을 통해

비로소 여행의 기쁨과 지혜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인생도 일종의 여행과 같다.

출발점이 있으면 종착점도 있다

인생도 여행도 가끔 휴식과 재충전이 필요하다

 

지금 당신은 어떤 여행자의 모습으로

인생길을 걷고 있는가?

(호프만 지음,

행복은 돈이 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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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제공 ]

 

명품 사진작가

조규창님

 

 

 

Posted by 호롱불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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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화호텔앤드리조트 2014.11.25 09: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와~ 저도 남한산성을 쭉 걸어보고 싶어요.
    끝에서 끝까지 걸으면 기분전환도 되고,
    제대로 된 등산을 한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힐 듯 합니다!

  2. 예예~ 2014.11.25 11: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개가 자욱한 풍경이 근사합니다.
    여행에도 휴식과 재충전이 필요하다는 말씀이 가슴에 와 닿네요.^^

 

 

 

 

경북 영주 무섬마을

 

2013 08 23일 국가지정 중요민속문화재 제278호로 지정되었다. 무섬마을은 물 위에 떠 있는 섬을 뜻하는 '수도리(水島里)'의 우리말 원래 이름이다.

 

 

낙동강의 지류인 내성천(乃城川)이 동쪽 일부를 제외한 3면을 휘돌아 흐르고, 내 안쪽으로 넓게 펼쳐져 있는 모래톱 위에 마을이 똬리를 틀고 앉아 있다.

 

 

풍수지리학상으로는 매화 꽃이 피는 매화낙지, 또는 연꽃이 물 위에 떠 있는 연화부수(蓮花浮水) 형국이라 하여 길지(吉地) 중의 길지로 꼽힌다.

 

 

이곳에 사람이 정착해 살기 시작한 것은 17세기 중반으로 여겨진다. 반남박씨(潘南朴氏) 입향조(入鄕祖)인 박수가 처음으로 들어와 살기 시작한 뒤, 그의 증손녀 사위인 선성김씨(宣城金氏) ()가 영조 때 다시 무섬에 들어왔다. 이 무렵부터 반남박씨와 선성김씨가 함께 세거(世居)해 오늘날까지 두 집안의 집성촌으로 남아 있다.

 

 

모두 48가구(2004) 10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데, 가옥 가운데 38동이 전통가옥이고, 16동은 100년이 넘은 조선시대 후기의 전형적인 사대부 가옥이다.

 

 

그야말로 마을 전체가 고택과 정자로 이루어져 있고, 안동 하회마을과 지형적으로도 비슷해 천혜의 자연조건을 자랑한다.

 

 

하회마을과 달리 일반에 그리 알려지지 않아 옛 선비고을의 맛을 흠씬 맛볼 수 있는 것도 무섬마을만이 가진 특징이다.

 

 

문화재도 많아 김규진가옥(金圭鎭家屋), 김위진가옥(金渭鎭家屋), 해우당고택(海遇堂古宅), 만죽재고택(晩竹齋古宅) 9점이 경상북도 문화재자료와 민속자료로 지정되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영주 무섬마을 [榮州]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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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는 주제와 목적도 있어야 한다.

주제가 없는 여행은 방황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주제와 목적이 있는 여행을 할 때

열린 마음으로 만나는 것들을 통해

비로소 여행의 기쁨과 지혜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인생도 일종의 여행과 같다.

출발점이 있으면 종착점도 있다

인생도 여행도 가끔 휴식과 재충전이 필요하다

 

지금 당신은 어떤 여행자의 모습으로

인생길을 걷고 있는가?

(호프만 지음,

행복은 돈이 되는 것일까?

p.189)

 

[ 사진 제공 ]

영주맛집

 육회전문식당

흥부가 주인장

권석영님

전화: 054-638-2094

 

 

http://hoffmantimes.tistory.com/entry/맛집멋집영주-한우육회비빔밥의-명가-흥부가소통의-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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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화호텔앤드리조트 2014.11.20 09:4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옛 모습이 남아있기로 유명한 무섬마을 :)
    외나무 다리로 걸어들어가야만 만날 수 있죠!
    참 멋진 마을이랍니다 :)

 

 

 

 

 

영주 부석사 단풍여행-2014.11.2

 

부석사(浮寺)

 

 

 영주 부석사 단풍여행-2014.11.2

 

한국 화엄종(華嚴宗)의 근본도량(根本道場)이다. 676(신라 문무왕 16) 의상(義湘)이 왕명을 받들어 창건하고, 화엄의 대교(大敎)를 펴던 곳으로, 창건에 얽힌 의상과 선묘(善妙) 아가씨의 애틋한 사랑의 설화는 유명하다.

 

1016(고려 현종 7)에 원융국사(圓融國師)가 무량수전(無量壽殿)을 중창하였고 1376(우왕 2)에 원응국사(圓應國師)가 다시 중수하고, 이듬해 조사당(祖師堂)을 재건하였다. 그 후 여러 차례 중수와 개연(改椽)을 거쳐 1916년에는 무량수전을 해체 수리하였다.


경내에는 무량수전(국보 18)·조사당(국보 19)·소조여래좌상(塑造如來坐像:국보 45)·조사당 벽화(국보 46)·무량수전 앞 석등(국보 17) 등의 국보와 3층석탑·석조여래좌상·당간지주(幢竿支柱) 등의 보물, 원융국사비·불사리탑 등의 지방문화재를 비롯하여 삼성각(三聖閣)·취현암(醉玄庵)·범종루(梵鐘樓)·안양문(安養門)·응향각(凝香閣) 등 많은 문화재가 있으며 또 신라 때부터 쌓은 것으로 믿어지는 대석단(大石壇)이 있다.

 


의상은 제자가 3,000명이나 있었다고 하며 그 중에서 10대덕(十大德)이라 불리는 오진(悟眞)·지통(智通)·표훈(表訓)·진정(眞定)·진장(眞藏)·도융(道融)·양원(良圓)·상원(相源)·능인(能仁)·의적(義寂) 등은 모두 화엄을 현양(顯揚)시킨 승려들이었다.



이 밖에도 《송고승전(宋高僧傳)》에 그 이름이 보이는 범체(梵體)나 도신(道身)및 신림(神琳) 등도 의상의 훌륭한 제자였으며 의상 이후의 부석사와 관계된 고승으로는 혜철국사(惠哲國師)·무염국사(無染國師)·징효대사(澄曉大師)·원융국사·원응국사 등이 그 법통을 이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부석사 [浮石寺] (두산백과)

  

 

 영주 부석사 단풍여행-2014.11.2

 

  

 영주 부석사 단풍여행-2014.11.2

 

 

 영주 부석사 단풍여행-2014.11.2

 

 

 영주 부석사 단풍여행-2014.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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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는 주제와 목적도 있어야 한다.

주제가 없는 여행은 방황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주제와 목적이 있는 여행을 할 때

열린 마음으로 만나는 것들을 통해

비로소 여행의 기쁨과 지혜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인생도 일종의 여행과 같다.

출발점이 있으면 종착점도 있다

인생도 여행도 가끔 휴식과 재충전이 필요하다

 

지금 당신은 어떤 여행자의 모습으로

인생길을 걷고 있는가?

(호프만 지음,

행복은 돈이 되는 것일까?

p.189)

 

[ 사진 제공 ]

멋쟁이 사진작가

김태영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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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규창님의

 

한양도성 순례기

 

 

 

고려 숙종 때 북악산 아래는 남쪽의 수도인 남경(南京)의 궁궐이 있었던 자리였으며 당시에는 북악산을 면악이라 기록하여 전한다. 이후 조선시대에 들어와 북악산을 백악산(白岳山)이라고도 불렀는데 백악산신(白岳山神)을 모시는 사당이 있었기 때문에 부르게된 이름이다. 이후 도성(都城)인 한양을 둘러싸고 있는 산들 중에 북쪽에 위치하기 때문에 북악산(北岳山)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남쪽으로 마주보고 있는 산을 남산(南山)이라고 불렀다북악산의 높이는 342m이며 남쪽으로 완만한 평지를 이루고 있으며 모양은 삼각형으로 뾰족하게 솟아난 형상으로 주변의 산에 비해 도드라져 보인다고려가 망하고 조선(朝鮮)이 건국되면서 태조 이성계의 신망이 두터웠던 무학대사(無學大師)에 의해 왕가의 기운을 받은 명산으로 칭송되었으며 그 아래 조선왕조의 궁궐을 세우고 도읍으로 정하게 되었다. 조선왕조가 세워지자 산정부에는 백악산신을 모시는 신사가 만들어졌다. 1394(태조 4)에 북악산 아래 경복궁을 축성하였으며 대한민국에 들어서 대통령의 집무실인 경무대(景武臺)도 이곳에 위치했다. 현재도 대통령의 집무실인 청와대(靑瓦臺)가 북악산 아래 위치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북악산 [北岳山] (두산백과)

 

 

 

한양도성은 원래 조선시대 태조 때 구축되었고,

세종조에 작은 돌로 수리하고

 

 

 

숙종조에는 제법 큰 네모반듯한 큰 돌로 쌓아

 

현재에 이르고 있다.

 

 

심우장은 1985 7 5일 서울특별시기념물 제7호로 지정되었다. 일제강점기인 1933년에 만해(萬海) 한용운(1879~1944)이 지은 집으로 남향을 선호하는 한옥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북향집인데 독립운동가였던 그가 남향으로 터를 잡으면 조선총독부와 마주보게 되므로 이를 거부하고 반대편 산비탈의 북향터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일제에 저항하는 삶을 일관했던 한용운은 끝내 조국의 광복을 보지 못하고 1944년 이곳에서 생애를 마쳤다.

 

 

심우장(尋牛莊)이란 명칭은 선종(禪宗)의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는 과정을 잃어버린 소를 찾는 것에 비유한 열 가지 수행 단계중 하나인 ‘자기의 본성인 소를 찾는다’는 심우(尋牛)에서 유래한 것이다. 왼쪽에 걸린 현판은 함께 독립운동을 했던 서예가 오세창(1864~1953)이 쓴 것이다.

정면 4, 측면 2칸 규모의 장방형 평면에 팔작지붕을 올린 민도리 소로수장집으로 한용운이 쓰던 방에는 그의 글씨, 연구논문집, 옥중공판기록 등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만해가 죽은 뒤에도 외동딸 한영숙이 살았는데 일본 대사관저가 이 곳 건너편에 자리잡자 명륜동으로 이사를 하고 심우장은 만해의 사상연구소로 사용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만해한용운심우장[萬海韓龍雲尋牛莊] (두산백과)

 

 

 

 

 

 

 

 

이밖에도 최순우 전 국립박물관장의 고택,

와룡공원, 창의문, 윤동주문학관,

세종마을로 조정된 서촌예술촌과 여러 공방

박노수 미술관을 둘러보고

세종마을음식문화거리에서 간단한

식사후 일정을 마쳤습니다.

 

이글을 보시는 모든 분들에게 행복한 전합니다.

 

[ 사진 제공과 글]

멋쟁이 사진작가

조규창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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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돌담길 가을 풍경(1)

 

 

 덕수돌담길 가을풍경-2014.9.27

 

전철 시청역 12번 출구

정동극장 배비장전 광고 판

 

 

 

 덕수궁돌담길 가을풍경-2014.9.27

 

토요일이라 삼삼오오 가족 나들이객이 몰려든다

 

 

 덕수궁돌담길 가을풍경-2014.9.27

 

아저씨 같이 사진 찍어요~

 

 

 덕수궁돌담길 가을풍경-2014.9.27

 

북소리를 한 번 울려볼까나~

 

 

 

  덕수궁돌담길 가을풍경-2014.9.27

 

세월호의 여운은 아직도 이렇게...

 

 

 덕수궁돌담길 가을풍경-2014.9.27

 

요기를 지나서...가면

 

 

 덕수궁돌담길 가을풍경-2014.9.27

 

경복궁 돌담길...

행객들이 한가롭게 거닌다

 

 

 덕수궁돌담길 가을풍경-2014.9.27

 

웰빙 찰옥수수 사세요~

 

 덕수궁돌담길 가을풍경-2014.9.27

 

호박엿도 사시구요~

 

 

 덕수궁돌담길 가을풍경-2014.9.27

 

언제부턴가 이곳이 이렇게 노점상이 하나 둘씩...

 

 

 덕수돌담길 가을풍경-2014.9.27

 

노점상이 이곳의 풍경이 되었다

 

 

 덕수궁돌담길 가을풍경-2014.9.27

 

악기를 연주하는 외국인까지 등장!

 

 

 덕수궁돌담길 가을풍경-2014.9.27

 

꽃길도 화사하고...

 

 

 

 덕수궁돌담길 가을풍경-2014.9.27

 

멈춤의 여유도 있고...

 

이렇게 가을이 점점 익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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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윤중구 2014.09.30 08: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첫사랑이 생각나는 가을 그리고 덕수궁돌담길, 좋네요. 금주에는 저도 다녀올게요.^^

  2. 이철호 2014.09.30 09: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 길 가보고 싶네요 ..........

 

 

 

 

 

 세계문화유산 남한산성 답사

 

 

 

세계문화유산 남한산성 답사

 

남한산성의 아침 등산로

깨진 기와장에서 역사의 흐름을 느낀다!

 

 

세계문화유산 남한산성 답사

 

남한산성에서 보는 하남시 조망

넓고 광활한 전경이 시원하다~

 

 

세계문화유산 남한산성 답사

 

햇빛마저 가려주는 시원한 등산로

 

 

세계문화유산 남한산성 답사

 

초록색과 흰색이 조화로운 키 큰 나무

....

이름이 뭐지?

 

 

세계문화유산 남한산성 답사

 

성벽따라 전개되는 남한산성 둘레길

 

 

 

세계문화유산 남한산성 답사

 

서문에서 남문가는 사이의 데크길

 

 

세계문화유산 남한산성 답사

 

누군가가 공들여 쌓은 돌탑

비나이다 비나이다~

 

 

세계문화유산 남한산성 답사

 

전쟁을 할 때 임시 비밀통로로 사용되었던 암문

 

 

세계문화유산 남한산성 답사

 

수어장대-아픈 역사와 끈기의 민족정기가 서린 곳

 

 

세계문화유산 남한산성 답사

 

성벽 중간중간에 설치된

총포대의 모습

............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새롭게 각광받고 있는 남한산성!

가까운 곳에 좋은 장소가 있어

등산객, 관람객의 발길를 끌고 있다.

시간되면 꼭 한번 들러보시길 권합니다!

 

 [ 사진 제공 ]

멋쟁이 사진작가

백종화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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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대릉원 천마총

 

경주 대릉원 일원(慶州 大陵園 一圓)

사적 제512

 

경주시내 황남동 일대에 분포되어 있는 신라 초기의 무덤들로 일부는 대릉원 구역안에 있다. 일제강점기에 붙여진 일련번호90~114, 151~155호인 원형으로 흙을 쌓아올린 30기의 무덤은 돌무지 덧널무덤(積石木槨墳)이고 주변에는 봉분이 없어진 작은 무덤이다. 대릉원 안에는 전 미추왕릉( 味鄒王陵)을 비롯하여 천마총(天馬)과 황남대총(皇南大塚)등이 있다.

1973년에 발굴 조사된 천마총은 지름 47m, 높이 12.7m로 금관을 비롯하여 많은 뉴물이 나왔다. 당시 천마도가 그려진 말안장 그리개가 출토되었기 때문에천마총이라 이름 하여 내부를 공개하고 있다. 또한 1973년부터 1975년까지 발굴 조사된 황남대총은 남북길이 120m, 동서길이 80m, 높이 23m의 거대한 쌍무덤으로 남쪽 무덤에서는 금동관과 남자의 뼈 일부 및 많은 유물이 나왔다. 북쪽 무덤에서는 금관과부인대(夫人帶)라는 글씨가 있는 과대(銙帶)등 많은 유물이 나왔다. 남쪽 무덤의 주인은 남자, 북쪽 무덤의 주인은 여자로 부부의 무덤을 붙여 만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천마총(天馬塚)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황남동

 

천마총은 신라시대의 대표적인 돌무지 덧널무덤(積石木槨墳)이다. 밑둘레 157m, 높이 12.7m, 되는 비교적 큰 무덤으로 5~6세기경에 축조된 어느 왕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구조는 평지 위에 나무널(木棺)과 껴묻거리(副葬品) 상자를 놓고, 그 바깥에 나무로 짠 덧널(木槨)을 설치하여 돌덩이를 쌓고 흙으로 덮었다.

발굴 조사했을 때 금관을 비롯한 유물 11,500여 점이 출토되었다. 그 중 자작나무 껍질에 하늘을 나는 말 그림(天馬圖)이 그려진 말다래(障泥)가 나왔으므로천마총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출토된 주요 유물은 복제품으로 만들어 전시하고 무덤의 내부구조를 볼 수 있도록 꾸몄다.

 

[ 사진제공 ]

경주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멋쟁이 사진작가 김춘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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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동궁과 월지

야경 (慶州 東宮, 月池) (4)

 

사적 제18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원화로 102

 

이곳은 통일 신라 시대 궁궐터의 하나로, 임해전을 비롯한 여러 부속 건물들과 함께 태자(太子)가 거처하는 동궁으로 사용되면서 나라의 경사가 있을 때나 귀한 손님을 맞을 때 연회를 베푸는 장소였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라 문무왕(文武王)14(674)궁 안에 못을 파고 산을 만들어 화초를 심고 진기한 새와 기이한 짐승을 길렀다.” 라는 기록이 있고, 19(679)에는동궁을 지었다.” 경순왕(敬順王)5(931)에는고려 태조 왕건(王建)을 위하여 임해전에서 잔치를 베풀었다.” 라는 등의 기록이 있어 월지와 동궁의 축조 연대와 주요 건축물들의 성격을 알 수 있다.

1975년 준설을 겸한 발굴 조사에서 신라 때 축조되었던 월지(月池)의 모습 대부분이 확인되었고, 동궁 건물터에서 출토된 기와와 보상화문전(寶相華文塼)에 새겨진 기년명(紀年銘)을 통해 축조 연대가 기록과 일치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월지는 조선 시대에 폐허가 된 이곳에 기러기와 오리가 날아들어안압지(雁鴨池)’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임해전은 신라 궁궐에 속해 있던 건물이지만 그 비중이 매우 컸던 것으로 보이며, 월지는 동궁의 원지(苑池)로서 신라 원지를 대표하는 유적이다.

 

 

 

 

 

 

 

 

 

 

 

 

 

 

 

[ 사진제공 ]

경주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멋쟁이 사진작가 김춘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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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병호 2014.07.08 08: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압지 87년에 집사람과 가봤나 ?
    기억도 가물가물하는군요
    어제 하루 즐거웠고, 좋은 하루되세요 !

  2. 남기숙 2014.07.08 09: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웅장하고 아름답군요.
    꼭가봐야겠네요

  3. 이철호 2014.07.08 10: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머시따......즐거운 하루...........

 

 

 

 

 

경주 동궁과 월지

(慶州 東宮, 月池) 야경 (3)

 

사적 제18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원화로 102

 

이곳은 통일 신라 시대 궁궐터의 하나로, 임해전을 비롯한 여러 부속 건물들과 함께 태자(太子)가 거처하는 동궁으로 사용되면서 나라의 경사가 있을 때나 귀한 손님을 맞을 때 연회를 베푸는 장소였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라 문무왕(文武王)14(674)궁 안에 못을 파고 산을 만들어 화초를 심고 진기한 새와 기이한 짐승을 길렀다.” 라는 기록이 있고, 19(679)에는동궁을 지었다.” 경순왕(敬順王)5(931)에는고려 태조 왕건(王建)을 위하여 임해전에서 잔치를 베풀었다.” 라는 등의 기록이 있어 월지와 동궁의 축조 연대와 주요 건축물들의 성격을 알 수 있다.

1975년 준설을 겸한 발굴 조사에서 신라 때 축조되었던 월지(月池)의 모습 대부분이 확인되었고, 동궁 건물터에서 출토된 기와와 보상화문전(寶相華文塼)에 새겨진 기년명(紀年銘)을 통해 축조 연대가 기록과 일치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월지는 조선 시대에 폐허가 된 이곳에 기러기와 오리가 날아들어안압지(雁鴨池)’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임해전은 신라 궁궐에 속해 있던 건물이지만 그 비중이 매우 컸던 것으로 보이며, 월지는 동궁의 원지(苑池)로서 신라 원지를 대표하는 유적이다.

 

 

 

 

 

 

 

 

 

 

 

 

 

 

[ 사진제공 ]

경주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멋쟁이 사진작가 김춘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