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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는여행/우리문화답사

부여 궁남지 (宮南地) 여행-2015.6.3 계절마다 다른 느낌이 연출되는 아름다운 정원 부여 궁남지(宮南地) 여행 2015.6.3 궁남지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16-1 최초의 인공 정원 경주의 안압지가 통일신라 궁궐건축의 당당함을 보여준다면 궁남지의 차분한 아름다움은 백제의 단아한 옛 멋을 느끼게 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 연못이라 하여 사가의 작은 정원을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궁궐의 남쪽이라는 뜻의 궁남지는 수양버들이 하늘거리는 주변을 따라 산책하기에 좋다. 신선이 노니는 산을 형상화하였다는 연못 중심의 작은 산에는 정자가 세워져 있는데 연못을 가로지르는 다리와 어울려 그 모습이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하다. 신라 진평왕의 딸인 선화공주와의 아름다운 사랑으로 유명한 백제 무왕의 전설이 전해지는 곳이기도 하다. 부여 사비성의 이궁지로.. 더보기
우리문화답사 제천 여행(2)-2015.7.12 우리문화답사 제천여행(2) 2015.7.12 제천 신륵사 고산사 황강영당 수암사 송계계곡 명오리 고가 김세균 판서 고택 더보기
우리문화답사 제천 여행(1)-2015.7.12 우리문화답사 제천여행(1) 2015.7.12 제천 신륵사 고산사 황강영당 수암사 송계계곡 명오리 고가 김세균 판서 고택 우리말천수경 멀리 신비로운 영산이 희미하게 보인다 영험하다는 나한상 복분자 피마자 한석봉의 글씨라는 설이 있다는데... 더보기
하회탈의 기원과 사랑이야기 하회탈의 기원과 사랑이야기 The Origin od Hahae Mask and The Love Story 먼 옛날 하회마을에 전염병이 돌아서 많은 사람들이 죽고 원인 모들 화재가 자주 발생하자 마을 사람들의 걱정이 대단하였다. 어느날 이 마을에 사는 젊은 청년인 허도령의 꿈에 산신령이 나타나서 "지금 마을에 퍼지고 있는 재앙은 이 마을을 지켜주는 신의 노여움을 샀기 때문이다"고 일러주며 " 그 신을 위해 탈을 만들어 춤을 추면 신의 노여움이 풀리고 마을이 다시 평안을 찾을 것이다"라고 했다. 그러나 "탈을 만드는 것을 아무도 모르게 하여야 하며 만일 누군가 엿보거나 알게 되면 너는 그자리에서 피를 토하고 죽게 될 것이다"라고도 했다. 허도령은 꿈이 너무나 기이하고 생시감이 느껴져서 그날부터 마을 어귀에 .. 더보기
남한산성 탐방 여행-2015.6.27 남한산성 탐방 여행 2015.6.27 남한산성 비석군 비온 뒤 날씨가 맑아 시야가 좋다 잠실 롯데 123층 건물도 보인다 성남이 한 눈에 들어오네 요즘 관광지에 이런 것을 깔아서 눈비올때 걷기 편하게 하는 것이 유행이다 때마침 지나가는 비행기 포착 때마침 지나가는 비행기 포착 효자우물 다리가 떨릴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참지 말고 가슴이 떨릴 때 더 넓은 세상으로 여행을 떠나자 그리하면 힐링이라는 값진 선물이 주어질 것이다 켜켜이 쌓인 내 절망의 찌꺼기는 어느새 다 사라져버리고 새로운 희망에 벅차서 다시 일터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이제 내 가족 내 이웃을 더 열심히 사랑하고 더 큰 열정으로 즐겁게 일을 하는 큰 가슴이 되어 새로운 일상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가슴이 떨릴 때 여행을 떠나자!! 더보기
백제의 왕도 부여 백제역사문화관 여행 백제의 왕도 부여 백제역사문화관 여행 2015.6.3 백제문화단지 "우수하고 화려했던 백제문화로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다!" 국내 최초로 삼국시대 백제 왕궁과 평민들의 사는 모습까지 그대로 재현한 백제문화단지. 부여군은 우수한 문화로 번성했던 백제의 역사를 후세에 알리고자 1994년부터 2010년까지 17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공을 들여 단지를 조성했다. 롯데 리조트 롯데가 여기에...또...단지를 조성할려나... 다리가 떨릴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참지 말고 가슴이 떨릴 때 더 넓은 세상으로 여행을 떠나자 그리하면 힐링이라는 값진 선물이 주어질 것이다 켜켜이 쌓인 내 절망의 찌꺼기는 어느새 다 사라져버리고 새로운 희망에 벅차서 다시 일터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이제 내 가족 내 이웃을 더 열심히 사랑하고 더.. 더보기
백제의 왕도 부여 부소산성(扶蘇山城) 여행-2015.6.3 성곽 안에 산 정상과 골짜기가 모두 있는 대규모 산성 백제의 왕도 부여 부소산성(扶蘇山城) 여행 충남 부여군 부여읍 관북리 2015.6.3 부소 산성(扶蘇山城 ) 사적 제 5호. 충청남도 부여군 부소산에 있는 백제 시대의 성터부소 산성은 538년 백제 성왕이 웅진에서 사비로 도읍을 옮긴 후 백제가 멸망할 때까지 123년 동안 백제의 도읍이었던 곳으로, 당시에는 사비성이라 불렀다. * 백제 문화의 보고, 부소산과 부소산성 * 부여에 들어서면 시가지 북쪽에 검푸른 숲을 이룬 해발 106m 의 나지막한 부소산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 온다. 부여의 진산인 부소산에는 수많은 백제 여인들이 꽃잎처럼 떨어져 죽음으로 절개를 지킨 낙화암, 백화정, 사자루, 반월루, 궁녀사, 고란사, 부소산성(사적 제5호), 해맞이하는.. 더보기
백마강 구드래나루터 여행-2015.6.3 백마강 구드래나루터 여행 2015.6.3 여행에는 주제와 목적도 있어야 한다. 주제가 없는 여행은 방황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주제와 목적이 있는 여행을 할 때 열린 마음으로 만나는 것들을 통해 비로소 여행의 기쁨과 지혜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인생도 일종의 여행과 같다. 출발점이 있으면 종착점도 있다 인생도 여행도 가끔 휴식과 재충전이 필요하다 지금 당신은 어떤 여행자의 모습으로 인생길을 걷고 있는가? (호프만 지음, 행복은 돈이 되는 것일까? p.189) 더보기
부여 낙화암(落花岩) 여행-2015.6.3 한송이 꽃으로 산화된 3천 궁녀의 넋이 머무는 곳 부여 낙화암(落花岩) 여행 2015.6.3 낙화암(落花岩)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부소산(扶蘇山)에 있는 바위.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문화재자료 제110호로 지정되었다. 서기 660년(백제 의자왕 20) 백제가 나당연합군(羅唐聯合軍)의 침공으로 함락되자 궁녀 3,000여 명이 백마강(白馬江) 바위 위에서 투신하여 죽었다고 한다. 그 바위를 사람들이 낙화암이라고 불렀는데, 이 암석 위에 1929년 다시 그곳 군수 홍한표(洪漢杓)가 백화정(百花亭)을 지었고, 절벽 아래에는 ‘낙화암(落花岩)’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바위 위에는 백화정(百花亭)이라는 조그마한 정자가 있다. 《삼국유사》에 인용된 백제고기(百濟古記)에 의하면 부여성 북쪽 모퉁이에 큰 .. 더보기
경기도 연천 조선왕가 한옥호텔 조선왕가 한옥호텔 경기도 연천군 연천읍 고문리 420-1 (현문로 339-10) 전화: 031-834-8383 서울시 명륜동 성균관대학교 기숙사에 터를 내주고, 경기도 연천의 새로운 터로 옮겨 앉은 조선왕가의 본채 염근당. 집을 옮기기 위해 해체하던 중, 고종 황제의 손자 ‘이근’의 집이라는 상량문이 발견되었다. 높은 기단 위에 우뚝 자리한 염근당은 일반 민가에서 보기 힘든 곧게 뻗은 기둥과 서까래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어디 하나 금 가고 터진 곳이 없는 자재는 모두 궁궐을 지을 때 쓰이는 금강송을 잘 말려 사용한 것이라고. 연천평야가 한눈에 들어오는 누마루가 인상적인 사반정과 어우러져 ‘ㅁ’자 마당을 완성하는 염근당 뒤편엔 별채인 자은정이 있다. 모두 황토로 벽과 바닥을 채워 힐링을 위한 장소로 재탄생.. 더보기
남한산성 기행-2014.11.23 남한산성 기행-2014.11.23 남한산성 기행-2014.11.23 남한산성의 남문(지화문)에서 좌익문(동문)을 거쳐 동장대터를 지나 전승문(북문)가지 걸어서 기행하다 남한산성 기행-2014.11.23 남한산성 기행-2014.11.23 남한산성 기행-2014.11.23 남한산성 기행-2014.11.23 남한산성 기행-2014.11.23 남한산성 기행-2014.11.23 남한산성 기행-2014.11.23 남한산성 기행-2014.11.23 남한산성 기행-2014.11.23 ........................................................................... 여행에는 주제와 목적도 있어야 한다. 주제가 없는 여행은 방황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주제와 목적이 있는.. 더보기
경북 영주 무섬마을 경북 영주 무섬마을 2013년 08월 23일 국가지정 중요민속문화재 제278호로 지정되었다. 무섬마을은 물 위에 떠 있는 섬을 뜻하는 '수도리(水島里)'의 우리말 원래 이름이다. 낙동강의 지류인 내성천(乃城川)이 동쪽 일부를 제외한 3면을 휘돌아 흐르고, 내 안쪽으로 넓게 펼쳐져 있는 모래톱 위에 마을이 똬리를 틀고 앉아 있다. 풍수지리학상으로는 매화 꽃이 피는 매화낙지, 또는 연꽃이 물 위에 떠 있는 연화부수(蓮花浮水) 형국이라 하여 길지(吉地) 중의 길지로 꼽힌다. 이곳에 사람이 정착해 살기 시작한 것은 17세기 중반으로 여겨진다. 반남박씨(潘南朴氏) 입향조(入鄕祖)인 박수가 처음으로 들어와 살기 시작한 뒤, 그의 증손녀 사위인 선성김씨(宣城金氏) 대(臺)가 영조 때 다시 무섬에 들어왔다. 이 무렵부.. 더보기
영주 부석사 단풍여행-2014.11.2 영주 부석사 단풍여행-2014.11.2 부석사(浮石寺) 영주 부석사 단풍여행-2014.11.2 한국 화엄종(華嚴宗)의 근본도량(根本道場)이다. 676년(신라 문무왕 16) 의상(義湘)이 왕명을 받들어 창건하고, 화엄의 대교(大敎)를 펴던 곳으로, 창건에 얽힌 의상과 선묘(善妙) 아가씨의 애틋한 사랑의 설화는 유명하다. 1016년(고려 현종 7)에 원융국사(圓融國師)가 무량수전(無量壽殿)을 중창하였고 1376년(우왕 2)에 원응국사(圓應國師)가 다시 중수하고, 이듬해 조사당(祖師堂)을 재건하였다. 그 후 여러 차례 중수와 개연(改椽)을 거쳐 1916년에는 무량수전을 해체 수리하였다. 경내에는 무량수전(국보 18)·조사당(국보 19)·소조여래좌상(塑造如來坐像:국보 45)·조사당 벽화(국보 46)·무량수전 앞.. 더보기
한양도성 순례기 조규창님의 한양도성 순례기 고려 숙종 때 북악산 아래는 남쪽의 수도인 남경(南京)의 궁궐이 있었던 자리였으며 당시에는 북악산을 면악이라 기록하여 전한다. 이후 조선시대에 들어와 북악산을 백악산(白岳山)이라고도 불렀는데 백악산신(白岳山神)을 모시는 사당이 있었기 때문에 부르게된 이름이다. 이후 도성(都城)인 한양을 둘러싸고 있는 산들 중에 북쪽에 위치하기 때문에 북악산(北岳山)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남쪽으로 마주보고 있는 산을 남산(南山)이라고 불렀다. 북악산의 높이는 342m이며 남쪽으로 완만한 평지를 이루고 있으며 모양은 삼각형으로 뾰족하게 솟아난 형상으로 주변의 산에 비해 도드라져 보인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朝鮮)이 건국되면서 태조 이성계의 신망이 두터웠던 무학대사(無學大師)에 의해 왕가의 기운을 .. 더보기
덕수궁돌담길 가을 풍경(1) 덕수궁돌담길 가을 풍경(1) 덕수궁돌담길 가을풍경-2014.9.27 전철 시청역 12번 출구 정동극장 배비장전 광고 판 덕수궁돌담길 가을풍경-2014.9.27 토요일이라 삼삼오오 가족 나들이객이 몰려든다 덕수궁돌담길 가을풍경-2014.9.27 아저씨 같이 사진 찍어요~ 덕수궁돌담길 가을풍경-2014.9.27 북소리를 한 번 울려볼까나~ 덕수궁돌담길 가을풍경-2014.9.27 세월호의 여운은 아직도 이렇게... 덕수궁돌담길 가을풍경-2014.9.27 요기를 지나서...가면 덕수궁돌담길 가을풍경-2014.9.27 경복궁 돌담길... 행객들이 한가롭게 거닌다 덕수궁돌담길 가을풍경-2014.9.27 웰빙 찰옥수수 사세요~ 덕수궁돌담길 가을풍경-2014.9.27 호박엿도 사시구요~ 덕수궁돌담길 가을풍경-2014... 더보기
세계문화유산 남한산성 답사 세계문화유산 남한산성 답사 세계문화유산 남한산성 답사 남한산성의 아침 등산로 깨진 기와장에서 역사의 흐름을 느낀다! 세계문화유산 남한산성 답사 남한산성에서 보는 하남시 조망 넓고 광활한 전경이 시원하다~ 세계문화유산 남한산성 답사 햇빛마저 가려주는 시원한 등산로 세계문화유산 남한산성 답사 초록색과 흰색이 조화로운 키 큰 나무 .... 이름이 뭐지? 세계문화유산 남한산성 답사 성벽따라 전개되는 남한산성 둘레길 세계문화유산 남한산성 답사 서문에서 남문가는 사이의 데크길 세계문화유산 남한산성 답사 누군가가 공들여 쌓은 돌탑 비나이다 비나이다~ 세계문화유산 남한산성 답사 전쟁을 할 때 임시 비밀통로로 사용되었던 암문 세계문화유산 남한산성 답사 수어장대-아픈 역사와 끈기의 민족정기가 서린 곳 세계문화유산 남한산성.. 더보기
경주 대릉원 천마총 경주 대릉원 천마총 경주 대릉원 일원(慶州 大陵園 一圓) 사적 제512호 경주시내 황남동 일대에 분포되어 있는 신라 초기의 무덤들로 일부는 대릉원 구역안에 있다. 일제강점기에 붙여진 일련번호90~114, 151~155호인 원형으로 흙을 쌓아올린 30기의 무덤은 돌무지 덧널무덤(積石木槨墳)이고 주변에는 봉분이 없어진 작은 무덤이다. 대릉원 안에는 전 미추왕릉(傳 味鄒王陵)을 비롯하여 천마총(天馬冢)과 황남대총(皇南大塚)등이 있다. 1973년에 발굴 조사된 천마총은 지름 47m, 높이 12.7m로 금관을 비롯하여 많은 뉴물이 나왔다. 당시 천마도가 그려진 말안장 그리개가 출토되었기 때문에 ‘천마총’ 이라 이름 하여 내부를 공개하고 있다. 또한 1973년부터 1975년까지 발굴 조사된 황남대총은 남북길이 12.. 더보기
경주 동궁과 월지 야경 (慶州 東宮, 月池) (4) 경주 동궁과 월지 야경 (慶州 東宮, 月池) (4) 사적 제18호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원화로 102 이곳은 통일 신라 시대 궁궐터의 하나로, 임해전을 비롯한 여러 부속 건물들과 함께 태자(太子)가 거처하는 동궁으로 사용되면서 나라의 경사가 있을 때나 귀한 손님을 맞을 때 연회를 베푸는 장소였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라 문무왕(文武王)14년(674)에 “궁 안에 못을 파고 산을 만들어 화초를 심고 진기한 새와 기이한 짐승을 길렀다.” 라는 기록이 있고, 19년(679)에는 “동궁을 지었다.” 경순왕(敬順王)5년(931)에는 “고려 태조 왕건(王建)을 위하여 임해전에서 잔치를 베풀었다.” 라는 등의 기록이 있어 월지와 동궁의 축조 연대와 주요 건축물들의 성격을 알 수 있다. 1975년 준설을 겸한.. 더보기
경주 동궁과 월지 (慶州 東宮, 月池) 야경 (3) 경주 동궁과 월지 (慶州 東宮, 月池) 야경 (3) 사적 제18호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원화로 102 이곳은 통일 신라 시대 궁궐터의 하나로, 임해전을 비롯한 여러 부속 건물들과 함께 태자(太子)가 거처하는 동궁으로 사용되면서 나라의 경사가 있을 때나 귀한 손님을 맞을 때 연회를 베푸는 장소였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라 문무왕(文武王)14년(674)에 “궁 안에 못을 파고 산을 만들어 화초를 심고 진기한 새와 기이한 짐승을 길렀다.” 라는 기록이 있고, 19년(679)에는 “동궁을 지었다.” 경순왕(敬順王)5년(931)에는 “고려 태조 왕건(王建)을 위하여 임해전에서 잔치를 베풀었다.” 라는 등의 기록이 있어 월지와 동궁의 축조 연대와 주요 건축물들의 성격을 알 수 있다. 1975년 준설을 겸한.. 더보기
경주 동궁과 월지 (慶州 東宮, 月池) (2) 경주 동궁과 월지 (慶州 東宮, 月池) (2) 사적 제18호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원화로 102 이곳은 통일 신라 시대 궁궐터의 하나로, 임해전을 비롯한 여러 부속 건물들과 함께 태자(太子)가 거처하는 동궁으로 사용되면서 나라의 경사가 있을 때나 귀한 손님을 맞을 때 연회를 베푸는 장소였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라 문무왕(文武王)14년(674)에 “궁 안에 못을 파고 산을 만들어 화초를 심고 진기한 새와 기이한 짐승을 길렀다.” 라는 기록이 있고, 19년(679)에는 “동궁을 지었다.” 경순왕(敬順王)5년(931)에는 “고려 태조 왕건(王建)을 위하여 임해전에서 잔치를 베풀었다.” 라는 등의 기록이 있어 월지와 동궁의 축조 연대와 주요 건축물들의 성격을 알 수 있다. 1975년 준설을 겸한 발굴.. 더보기
경주 동궁과 월지 (慶州 東宮, 月池) (1) 경주 동궁과 월지 (慶州 東宮, 月池) (1) 사적 제18호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원화로 102 이곳은 통일 신라 시대 궁궐터의 하나로, 임해전을 비롯한 여러 부속 건물들과 함께 태자(太子)가 거처하는 동궁으로 사용되면서 나라의 경사가 있을 때나 귀한 손님을 맞을 때 연회를 베푸는 장소였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라 문무왕(文武王)14년(674)에 “궁 안에 못을 파고 산을 만들어 화초를 심고 진기한 새와 기이한 짐승을 길렀다.” 라는 기록이 있고, 19년(679)에는 “동궁을 지었다.” 경순왕(敬順王)5년(931)에는 “고려 태조 왕건(王建)을 위하여 임해전에서 잔치를 베풀었다.” 라는 등의 기록이 있어 월지와 동궁의 축조 연대와 주요 건축물들의 성격을 알 수 있다. 1975년 준설을 겸한 발굴.. 더보기
경주 함월산 기림사(2) 경주 함월산 기림사(2) 기림사 관음전 천수천안관세음보살 역시 근래에 조성된 건물로 천수천안관세음보살(千手千顔觀世音菩薩)을 모신 전각이다. 천개의 손과 천개의 눈과 열 한 개의 얼굴을 하고 있다. 천(千)은 광대무변(廣大無邊)의 뜻을 나타낸다. 수없이 많은 중생의 고통소리를 보아야 하므로 그렇게 많은 눈이 필요하고, 수많은 중생을 손을 내밀어 구제해야 하므로 그렇게 많은 손이 필요하다는 것을 상징한다. 열 한 개의 얼굴을 한 십일면(十一面)관세음보살은 아수라도에 있는 것을 구제하는 보살이다 맨 위의 불면(佛面)은 불과(佛果)를 표현한 것이고, 전후좌우 십면은 보살이 수행하는 계위(階位)인 10지(地)를 나타낸다. 이것은 중생의 11품류의 무명번뇌를 끊고 불과를 얻은 뜻을 상징한다고 한다 경주 기림사 소장.. 더보기
경주 함월산 기림사(1) 경주 함월산 기림사(1) 기림사 연혁(祇林寺 沿革) 함월산(含月山)기림사(祇林寺)는 천축국(天竺國,인도)에서 온 광유성인(光有聖人)이 창건(創建)하여 임정사(林井寺)라고 불렀다. 그 후 신라 선덕여왕(善德女王) 12년(643)에 원효대사(元曉大師)가 사찰(寺刹)을 크게 확장하면서 현재의 이름으로 바꾸었다. 이때에 이미 대적광전(大寂光殿)을 건립하여 삼신여래(三身如來)를 봉안(奉安)하였으며, 동쪽에는 약사여래를 모신 약사전(藥師殿)을 건립 하였다. 그리고 서쪽에는 석조오백나한상(石造五百羅漢像)을 모신 응진전(應眞殿)을, 동쪽에는 삼층목탑(三層木塔)과 전광여래사리각(定光如來舍利閣)을, 남쪽에는 무량수전(無量壽殿)과 진남루(鎭南樓)를 건립하였다. 그러나 사리각은 없어지고, 삼층 목탑은 그 터만 남아있다. 대적.. 더보기
경주 첨성대 경주 첨성대 국보 제31호 첨성대는 신라 선덕여왕(善德女王, 재위632~647)때 만들어진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 관측대이다. 화강석(花崗席)을 가공하여 기단(基壇) 위에 27단의 석단(石段)을 원통형의 곡선으로 쌓아 올리고, 그 위에 장대석(長大石)을 우물정자형(井)으로 축조하여 정상부에서 천문을 살피도록 시설되어 있다. 정남쪽의 석단에는 밑으로부터 제13단과 제15단 사이에 네모난 출입구가 있어 내부로 들어 갈 수 있게 되어있고, 이 출입구 아랫부분 양쪽에는 사다리를 걸쳐 오르내리도록 되어 있다. 이곳을 통해 꼭대기까지 올라가 하늘을 관찰했던 것으로 보인다. 규모는 밑면의 지름이 5.17m, 높이가 9.4m이며 지대석 한변의 길이는 5.35m이다. 신라시대의 석조물로서 직선과 곡선이 잘 어우러진 .. 더보기
경주 장항리 오층석탑(2) 경주 장항리 오층석탑(2) 경주 장항리 사지 (慶州 獐項里 寺址) 사적 제45호 소재지 : 경북 경주시 양북면 장항리 1081 이 절터는 토함산(吐含山)에서 동쪽으로 뻗어내린 산줄기가 두 계곡과 만나는 곳에 위치해 있다. 잘 다듬은 돌로 기단을 만들고 위에 덮개돌을 얹었던 흔적이 있으며 건물의 앞쪽으로 계단을 마련하였다. 계곡의 높은 절벽 위에 터를 닦아 중앙에는 불상을 모시기 위한 금당을 마련하였다. 계곡물은 대종천(大鐘川)을 따라 흘러 감은사지(感恩寺址)를 지나 대왕암(大王岩) 근처에서 동해에 이른다. 불상을 놓았던 대좌(臺座)가 남아 있는데 아래, 위 두 개로 되어 있다. 아래 돌은 여덟 방향에 창 모양의 안상(眼象)을 만들어 네 곳에는 동물을, 다른 네 곳에는 신장(神將)을 조각하였다. 위에 얹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