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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유물(慶州 祇林寺 所藏遺物)'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4.07.08 경주 함월산 기림사(2)
  2. 2014.07.02 경주 장항리 오층석탑(2)

 

 

 

 

 

 경주 함월산 기림사(2)

 

기림사 관음전

천수천안관세음보살

역시 근래에 조성된 건물로 천수천안관세음보살(千手千顔觀世音菩薩)을 모신 전각이다.

천개의 손과 천개의 눈과 열 한 개의 얼굴을 하고 있다. ()은 광대무변(廣大無邊)의 뜻을 나타낸다.

수없이 많은 중생의 고통소리를 보아야 하므로 그렇게 많은 눈이 필요하고, 수많은 중생을 손을 내밀어 구제해야 하므로 그렇게 많은 손이 필요하다는 것을 상징한다.

열 한 개의 얼굴을 한 십일면(十一面)관세음보살은 아수라도에 있는 것을 구제하는 보살이다

맨 위의 불면(佛面)은 불과(佛果)를 표현한 것이고, 전후좌우 십면은 보살이 수행하는 계위(階位) 10()를 나타낸다. 이것은 중생의 11품류의 무명번뇌를 끊고 불과를 얻은 뜻을 상징한다고 한다

 

경주 기림사 소장유물(慶州 祇林寺 所藏遺物)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자료301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양북면 호암리 419

 

이 유물들은 기림사가 소장하고 있으며, 3종류 10점이다. 치미(鴟尾)는 건물의 용마루 양 끝을 장식하던 것인데, 전체적으로 많이 파손되어 현재 95, 너비 70, 두께 26.5㎝이다.

능골, 종대, 날개부분과 몸통에 꽃무늬 2개가 남아 있다. 조각 수법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되고, 치미 중에 돌로 된 것으로는 국내 유일한 것이다.

금구(金口) 1점은 크기가 직경 70, 두께 11.5, 뒷면 입지름 56㎝이다, 청동으로 만들었고 뒷면의 글에 강희(康熙) 61(1722)이라고 되어 있다. 앞면에는 원을 3개 그리고, 가장 바깥에는 산스크리트문자인 범자 다섯글자를 새겼다. 그 안쪽에는 11개의 잎을 가진 꽃 모양 넷이 있다. 세 곳에 고리가 달려있어 고정 시킬 수 있도록 하였다.

나무로 된 비() 8점은 조선시대 후기의 작품으로 절의 수리 상항을 알려 준다는 점도 중요하지만, 돌이나 철로 된 비는 많으나 나무로 된 비는 흔하지 않아 더욱 중요하다.

 

 

 

 

 

 

 

 

 

 

 

 

 

 

 

 

 

 

[ 사진제공 ]

경주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멋쟁이 사진작가 김춘수님

 

 

 

Posted by 호롱불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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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장항리 오층석탑(2)

 

 

 

경주 장항리 사지

(慶州 獐項里 寺址)

사적 제45

소재지 : 경북 경주시 양북면 장항리 1081

 

 

 

 

이 절터는 토함산(吐含山)에서 동쪽으로 뻗어내린

 

산줄기가 두 계곡과 만나는 곳에 위치해 있다.

 

 

잘 다듬은 돌로 기단을 만들고 위에

 

덮개돌을 얹었던 흔적이 있으며

 

건물의 앞쪽으로 계단을 마련하였다.

 

 

계곡의 높은 절벽 위에 터를 닦아

중앙에는 불상을 모시기 위한 금당을 마련하였다.

 

 

 

 

 

계곡물은 대종천(大鐘川)을 따라 흘러

감은사지(感恩寺址)를 지나

대왕암(大王岩) 근처에서 동해에 이른다.

 

 

 불상을 놓았던 대좌(臺座)가 남아 있는데 아래, 위 두 개로 되어 있다. 아래 돌은 여덟 방향에 창 모양의 안상(眼象)을 만들어 네 곳에는 동물을, 다른 네 곳에는 신장(神將)을 조각하였다. 위에 얹은 돌은 아래, 위로 붙은 연꽃을 16송이씩 조각하였다.

 

이곳에 깨어진 불상이 있었는데 1932년 서탑을 복원하면서 국립경주박물관 정원에 옮겨 일부를 붙여 세웠다. 통일신라시대의 일반적인 절 배치에서 보이는 금당 앞의 중문이나 뒤의 강당, 회랑에 대해서는 아직 밝혀진 것이 없다.

 

 

서탑은 일제시대에 도굴범이 탑 속에 들어 있는 보물을 훔치기 위해 폭파시켜 파괴한 것을 수습하여 다시

 

 세웠다. 동탑은 계곡에 흩어져 있던 것들을 절터에 모아두고 있다. 장항리사지는 계곡 사이의 좁은 공간을

 

이용하여 쌍탑을 세우고 그 뒤쪽 중앙에 금당을 배치한 점이 주목할 만하다.

 

 

 

쌍탑 1금당으로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을 보이나¸

아직 강당과 회랑의 자리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 사진제공 ]

경주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멋쟁이 사진작가 김춘수님

 

 

 

Posted by 호롱불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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