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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곽 안에 산 정상과 골짜기가 모두 있는 대규모 산성

 

백제의 왕도 부여 부소산성(扶蘇) 여행

 

충남 부여군 부여읍 관북리

 

2015.6.3

 

 

 

부소 산성(扶蘇山城 )

 

사적 제 5. 충청남도 부여군 부소산에 있는 백제 시대의 성터부소 산성은 538년 백제 성왕이 웅진에서 사비로 도읍을 옮긴 후 백제가 멸망할 때까지 123년 동안 백제의 도읍이었던 곳으로, 당시에는 사비성이라 불렀다.

 

 

* 백제 문화의 보고, 부소산과 부소산성 *


부여에 들어서면 시가지 북쪽에 검푸른 숲을 이룬 해발 106m 의 나지막한 부소산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 온다. 부여의 진산인 부소산에는 수많은 백제 여인들이 꽃잎처럼 떨어져 죽음으로 절개를 지킨 낙화암, 백화정, 사자루, 반월루, 궁녀사, 고란사, 부소산성(사적 제5), 해맞이하는 영일루, 성충ㆍ흥수ㆍ계백의 백제 충신을 모신 삼충사, 곡식 창고터였던 군창지, 백제 군인의 움집 수혈병영지 발길 닿는 곳마다 발걸음을 붙잡는 토성들, 백제의 역사와 백제왕실의 이야기가 곳곳에 배어 있다.

 

 


금강의 남안에 있는 부소산의 산정을 중심으로 테뫼식 산성이 동서로 나뉘어 붙어 있고, 다시 그 주위에 북동쪽의 계곡을 둘러쌓은 포곡식(包谷式)산성을 동반한 복합식 산성으로, 성내에는 사자루, 영일루(迎日樓), 반월루(半月樓), 고란사(皐蘭寺), 낙화암(落花巖), 사방의 문지(門址), 군창지(軍倉址) 등이 있다. 『삼국사기(三國史記)』 백제본기(百濟本紀)에는 사비성, 소부리성(所扶里城)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산성이 위치한 산의 이름을 따서 부소산성으로 불리고 있다.

 

 


이 산성은 백제의 수도인 사비 도성의 일환이며, 왕궁을 수호하기 위하여 538(성왕 16)수도의 천도를 전후한 시기에 축조된 것으로 보이나, 이 보다 먼저 500(동성왕22)경 이미 산성이 축조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후 천도할 시기를 전후하여 개축되었고, 605(무왕 6)경에 대대적인 개수축이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편 일부의 성벽은 통일신라시기에 수축되고 고려와 조선 시대에는 고을의 규모에 맞도록 축소되어 이용된 것으로 여겨진다.

 

 


* 백제 문화를 만난다, 부소산의 유적지 *


* 삼충사
부소산성 정문인 사비문을 지나 조금 걸어올라가면 삼충사가 있다. 외삼문과 내삼문을 지나 사당에 들어서면 백제말 삼충신인 성충, 흥수, 계백의 영정과 위패가 모셔져 있다. 해마다 10월 백제문화제때 제향을 올리고 세분의 숭고한 구국충절을 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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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일루
영일루는 부소산성의 맨 동쪽 산봉우리에 세워져 백제왕과 귀족들이 멀리 계룡산의 연천봉에서 떠오르는 해를 맞이하며 국정을 계획하고, 나라의 태평과 백성들의 평안을 기원했던 영일대에 세운 누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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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창지
일명 만리창(萬里倉)이라 불렀던 이곳은 1915년 불에 탄 쌀이 발견된 군대 곡식을 보관했던 창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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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혈병영지
군창지를 조금 지나면 움집이 보인다. 움집은 백제 때 군인들의 움막을 발굴, 복원한 것으로 1m 가량 움을 파고, 사방을 나무나 짚으로 벽을 두른 뒤 초가지붕을 얹은 모습이다. 원래 움집터와 저장고를 발굴한 곳에 전시실을 지어 구조를 자세히 살필수 있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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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루
부소산 가장 높은 곳(해발 106m)에 위치한 사자루는 동쪽 영일루와 더불어 일월 음양을 뜻하며 달이 밝은 밤 누각에 오르면 아름다운 경치가 눈앞에 펼져지고 시흥이 절로 일어난다. 사자루 건립 당시 터를 파다가 광배 뒷면에 명문이 새겨진(정지원명) 금동석가여래입상(보물 제196)이 발견되었다. 사자루 현판 글씨는 의친왕 이강의 친필이고, 뒤쪽에 붙은
白馬長江은 서예가 해강 김규진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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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정
낙화암 절벽위에 세워진 육각지붕의 정자가 백화정이다. 백마강을 시원하게 내려다 볼 수 있는 백화정은 백제멸망 당시 꽃잎처럼 떨어져 죽음으로 절개를 지킨 숭고한 백제 여인들의 원혼을 추모하기 위해 1929년에 부풍시사(
扶風詩社)라는 시모임에서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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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녀사
반월루 광장에서 동북쪽 태자골로 조금 내려가면 궁녀사가 나온다. 이 궁녀사는 백제 의자왕 20(660)에 나당 연합군에 의해 사비성이 함락되던 날, 낙화암에서 꽃잎처럼 떨어져 죽은 백제 여인들의 충절을 추모하고 그 뜻을 후세에 널리 기리고자, 1965년에 세웠다. 10월 백제문화제 때 제향을 올리고 있다.

*
부여관북리백제유적
부여군 부여읍 관북리 725번지에 위치한 이 유적은 현재 왕궁지로 알려져 있으며, 국립부여 문화재연구소 남쪽일대 184필지 95,048(28,780) 33필지 2,102㎡는 1983 9월 충청남도 기념물 제43호 전백제왕궁지(
傳百濟王宮址)로 지정되어 있다.

1982
년부터 이 일대를 중심으로 충남대학교 박물관에서 5차에 걸쳐 발굴조사하여 1983년도에는 방형석축연지(
方形石築蓮池)가 발견되었고, 1988년 발굴조사에서는 토기 구연부에 북사(北舍)라는 명문이 발견되었으며, 1992년 조사에서는 현재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의 남쪽 50m 지점에서 백제시대의 도로유적과 배수시설이 드러났다. 삼국시대의 궁궐 중 고구려의 안학궁을 제외하면 아직까지 신라와 백제의 왕궁은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지만, 백제시대 마지막 도읍이었던 사비도성의 일부 유적이 밝혀진 것은 매우 중요한 학술적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백제의 마지막을 바라보다

백제의 마지막 도읍지 사비, 지금의 부여 낙화암의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부소산성이 있다. 산이라고 하지만 해발 100m 정도밖에 되지 않는 언덕으로 그 주변을 두르고 있는 산성은 백제의 마지막 보루가 되었던 곳이다. 천천히 걸으면서 백제의 마지막을 기억해보자.

입구에서 올라 오른편으로 돌아가면 먼저 삼충사라는 사당이 나오는데 백제 말의 충신인 성충·흥수·계백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는 곳이다. 임금에게 직언을 하다 감옥에 갇혀서도 나라 걱정을 했던 성충, 성충과 함께 임금께 고하다 유배를 당한 흥수, 황산벌전투로 잘 알려진 계백 등 역사 속 인물들을 만나보자
.


 

 
삼충사를 지나 조금 더 오르면 동쪽을 향하고 있어 해맞이를 할 수 있는 영일루가 나오며, 그 뒤편으로는 곡식창고 자리였던 군창 터가 있다. 낮은 울타리로 둘러놓아 들어가지는 못하지만 이곳에서 불탄 쌀이나 콩들이 발견되는데 바로 군량을 적에게 내어주지 않기 위해 불을 낸 흔적이다
.

 


부소산성 가장 꼭대기의 사자루는 달을 바라보는 서편을 향하여 자리하고 있다. 여기까지 왔으면 이제 내려가는 길만 남았는데 내려가는 길에는 더욱 특별한 장소들이 기다리고 있다. 낙화암이 그곳으로, 삼 천 궁녀가 몸을 던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이다
.

 


삼국사기에 기록된 바에 의하면 이곳의 원래 이름은 사람이 떨어져 죽은 바위라는 뜻의 타사암이라고 하니 백마강이 내려다보이는 시원한 풍경을 마냥 즐기기에는 슬픈 이야기이다. 낙화암 아래에는 한 번 먹을 때마다 3년이 젊어진다는 약수로 유명한 고란사가 있으니 내려가서 고란사도 둘러보고 약수도 마셔보도록 하자.

[네이버 지식백과] 부소산성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국내 여행 1001, 2010.1.15, 마로니에북스)

 

 

 

 

 

 

 

 

 

 

 

 

 

 

 

 

 

 

 

 

 

 

 

 

 

 

 

 

 

 

 

 

 

 

 

 

 

 

 

 

 

영일루

 

 

 

 

 

 

 

 

 

군창지

 

 

 

 

 

 

 

 

 

 

 

 

 

 

 

 

 

 

 

 

 

 

 

 

 

 

 

 

 

 

 

 

 

 

 

 

 

 

 

 

 

 

 

 

 

 

 

 

 

 

 

 

 

 

 

 

 

 

 

 

 

 

 

 

 

 

 

 

 

여행에는 주제와 목적도 있어야 한다.

주제가 없는 여행은 방황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주제와 목적이 있는 여행을 할 때

열린 마음으로 만나는 것들을 통해

비로소 여행의 기쁨과 지혜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인생도 일종의 여행과 같다.

출발점이 있으면 종착점도 있다

인생도 여행도 가끔 휴식과 재충전이 필요하다

 

지금 당신은 어떤 여행자의 모습으로

인생길을 걷고 있는가?

(호프만 지음,

행복은 돈이 되는 것일까?

p.189)

  

 

Posted by 호롱불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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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송이 꽃으로 산화된

3천 궁녀의 넋이 머무는 곳

 

 

부여 낙화암(落花岩) 여행

 

2015.6.3

 

 

 

낙화암(落花岩)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부소산(扶蘇山)에 있는 바위. 1984 5 17일 충청남도문화재자료 제110호로 지정되었다. 서기 660(백제 의자왕 20) 백제가 나당연합군(羅唐聯合軍)의 침공으로 함락되자 궁녀 3,000여 명이 백마강(白馬江) 바위 위에서 투신하여 죽었다고 한다. 그 바위를 사람들이 낙화암이라고 불렀는데, 이 암석 위에 1929년 다시 그곳 군수 홍한표(洪漢杓)가 백화정(百花亭)을 지었고,

 

 

절벽 아래에는 ‘낙화암(落花岩)’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바위 위에는 백화정(百花亭)이라는 조그마한 정자가 있다. 《삼국유사》에 인용된 백제고기(百濟古記)에 의하면 부여성 북쪽 모퉁이에 큰 바위가 있어 아래로는 강물에 임하는데, 모든 궁녀들이 굴욕을 면하지 못할 것을 알고 차라리 죽을지언정 남의 손에 죽지 않겠다고 하고, 서로 이끌고 이곳에 와서 강에 빠져 죽었으므로 이 바위를 타사암(墮死巖)이라 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내용으로 보아 낙화암의 본래 명칭은 타사암이었는데, 뒷날에 와서 궁녀, 즉 여자를 꽃에 비유하고 이를 미화하여 붙인 이름이 분명하다. 이 바위와 관련되어 전해오는 전설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백제의 마지막 왕인 의자왕은 용담(勇談)이 많은 영주(英主)였는데, 여러 차례 신라의 여러 고을을 쳐서 천하에 그 성세(聲勢)를 높인 뒤로는 정사는 돌보지 않고 날마다 궁성 남쪽의 망해정(望海亭)에서 궁녀들을 데리고 가무주연(歌舞酒宴)의 향락을 일삼았다.

 

 

좌평 성충(成忠)은 이를 근심하고 극력 간()하였으나, 왕은 이 말이 귀에 거슬려 그를 옥에 가두어버렸다. 그러자 그는 마음이 아파서 죽고 말았다.

 

 

이러할 때 일찍이 백제의 침략을 받아온 신라는 무열왕 및 김유신(金庾信) 등의 영주와 명신(名臣)이 나타나서 나라의 힘을 크게 길러 복수를 하고자 당나라 군사와 힘을 합하여 백제를 치게 되었다. 이에 백제의 용장 계백(階伯) 4천의 적은 군사로써 황산(黃山)벌에서 신라 군사와 싸웠으나 패하고 말았다.

 

 

그러자 나당연합군의 수많은 군사가 일시에 수륙 양면에서 쳐들어와 왕성(王城)에 육박해오자 왕은 그제야 성충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음을 후회하였다. 왕은 하는 수 없이 해질 때를 기다려 왕자 효()를 데리고 웅진성(熊津城)으로 달아나서 싸웠으나 성문은 부서져 열리고 말았다.

수많은 궁녀들이 슬피 울면서 흉악한 적군에게 굴욕을 당하는 것보다 깨끗하게 죽는 것이 옳다 하여 대왕포(大王浦) 물가 높은 바위 위에서 치마를 뒤집어쓰고 사비수 깊은 물에 몸을 던지고 말았다. 이러한 일로 인하여 이 바위를 낙화암이라 하였다고 한다.

 

 

 

* 백제시대의 전설을 만난다, 낙화암 (백화정) *


부소산 북쪽 백마강을 내려다보듯 우뚝 서 있는 바위 절벽이 낙화암이다. 낙화암은 사비성이 나당연합군에게 유린될 때, 수 많은 백제 여인들이 꽃잎처럼 백마강에 몸을 던졌다는 전설이 깃든 곳이다. 이 전설로 낙화암이라는 꽃답고 애절한 이름을 얻었지만, [삼국유사]에는 타사암(墮死岩-사람이 떨어져 죽은 바위)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백제 성왕이 국가 중흥의 원대한 꿈을 펼치려 사비로 도읍을 옮긴 후 관산성 전투에서 전사하는 비운을 맞기도 하였으나, 위덕왕·무왕·의자왕에 이르는 동안 최강의 국력을 자랑하게 되었다. 이에 신라는 단독으로 백제에 대항하기가 어려워 당나라와 연합하여 백제와 대결하기에 이르렀다. 이때 백제는 국운을 다했던지 의자왕도 정사를 소홀히 하고, 나라가 흔들리게 되었다. 결국 의자왕 20(660) 사비성은 신라·당나라 연합군에게 함락되고, 성내에 살던 궁녀와 도성에 남은 여인들은 부소산성으로 피신하였다. 그러나 침략군이 부소산성까지 몰려들자, 백제 여인들은 적군에게 잡혀가 치욕스러운 삶을 사느니보다 차라리 푸른 강물에 몸을 던져 무너지는 국운과 함께 목숨을 깨끗이 버리는 길을 택했던 것이다.

 


이처럼 여자의 정조를 생명보다 더 소중히 하고, 백제마지막 순간까지 지키려 했던 백제 여인들의 충절과 넋이 어린 곳이 바로 낙화암이다. 바위 절벽에 새겨진 ‘낙화암(
落花岩)’이라는 글씨는 조선시대 학자인 우암 송시열 선생이 쓴 글씨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낙화암  (대한민국 구석구석, 2013.6, 한국관광공사)

 

 

 

 

 

 

 

 

 

 

 

 

 

 

 

 

 

 

 

 

 

 

 

 

 

 

 

 

 

 

 

 

 

 

 

 

 

 

 

 

 

 

 

 

 

 

 

 

 

 

 

 

 

 

여행에는 주제와 목적도 있어야 한다.

주제가 없는 여행은 방황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주제와 목적이 있는 여행을 할 때

열린 마음으로 만나는 것들을 통해

비로소 여행의 기쁨과 지혜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인생도 일종의 여행과 같다.

출발점이 있으면 종착점도 있다

인생도 여행도 가끔 휴식과 재충전이 필요하다

 

지금 당신은 어떤 여행자의 모습으로

인생길을 걷고 있는가?

(호프만 지음,

행복은 돈이 되는 것일까?

p.189)

 

 

 

Posted by 호롱불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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