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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시

저녁노을-도종환 (명시감상) 가을의 시 명시감상 저녁노을 / 도종환 당신도 저물고 있습니까 산마루에 허리를 기대고 앉아 저녁해가 천천히 숨을 고르고 있는 동안 뿜어져나오는 해의 입김이 선홍빛 노을로 번져가는 광활한 하늘을 봅니다 당신도 물들고 있습니까 저를 물들이고 고생대의 단층 같은 구름의 물결을 물들이고 가을산을 물들이고 느티나무 잎을 물들이는 게 저무는 해의 손길이라는 걸 알겠습니다 구름의 얼굴을 분홍빛으로 물들이는 노을처럼 나는 내 시가 당신의 얼굴 한쪽을 물들이기를 바랐습니다 나는 내 노래가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당신을 물들이고 사라지는 저녁노을이기를, 내 눈빛이 한 번만 더 당신의 마음을 흔드는 저녁 종소리이길 소망했습니다 시가 끝나면 곧 어둠이 밀려오고 그러면 그 시는 내 최후의 시가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리하여 .. 더보기
가을 사랑-도종환 (명시감상) 가을의 시 명시감상 가을 사랑 도종환 당신을 사랑할 때의 내 마음은 가을 햇살을 사랑할 때와 같습니다 당신을 사랑하였기 때문에 나의 마음은 바람부는 저녁숲이었으나 이제 나는 은은한 억새 하나로 있을 수 있읍니다 당신을 사랑할 때의 내 마음은 눈부시지 않은 갈꽃 한 송이를 편안히 바라 볼 때와 같습니다 당신을 사랑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내가 끝없이 무너지는 어둠 속에 있었지만 이제는 조용히 다시 만나게 될 아침을 생각하며 저물 수 있습니다 지금 당신을 사랑하는 내 마음은 가을 햇살을 사랑하는 잔잔한 넉넉함입니다 가을 사랑 도종환 당신을 사랑할 때의 내 마음은 가을 햇살을 사랑할 때와 같습니다 당신을 사랑하였기 때문에 나의 마음은 바람부는 저녁숲이었으나 이제 나는 은은한 억새 하나로 있을 수 있읍니다 당신을 .. 더보기
11월-이수희 (11월의 시) 명시감상 가을의 시 11월의 시 11월 이수희 내 그림자가 고집을 피우고 슬그머니 꼬리가 무딜까봐 감나무 몇 잎이 가지를 놓지 못합니다 시간의 그늘을 저만치 두고 비릿한 눈물마저 마른 하늘 끝마저 멉니다 그가 내민 연서를 따라가다가 벌레먹은 낙엽이 되고 휑하게 길어진 돌담길 긴장한 상념도 움츠리며 나무와 나무 사이에서 걸립니다 땅위를 걷는 모든 각진 마음들이 뒹굴어 제 가슴만 헐어내고 제 허무함만 세우고 그래도 그의 가슴마다 기슭마다 세상의 뿌리를 더 훤하게 달고 있습니다 더보기
11월-이외수 (11월의 시) 명시감상 가을의 시 11월의 시 11월 이외수 세상은 저물어 길을 지운다 나무들 한 겹씩 마음을 비우고 초연히 겨울로 떠나는 모습 독약 같은 사랑도 문을 닫는다 인간사 모두가 고해이거늘 바람도 어디로 가자고 내 등을 떠미는가 아직도 지울 수 없는 이름들 서쪽 하늘에 걸려 젖는 별빛으로 흔들리는 11월 더보기
낙엽-구르몽 (명시감상) 명시감상 낙엽 구르몽 시몬, 나뭇잎 져 버린 숲으로 가자. 낙엽은 이끼와 돌과 오솔길을 덮고 있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낙엽은 아주 부드러운 빛깔, 너무나도 나지막한 목소리를 지니고 있다. 낙엽은 버림받고 땅 위에 흩어져 있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해질무렵 낙엽 모습은 너무나도 쓸쓸하다. 바람이 휘몰아 칠 때는 낙엽은 정답게 소리친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발로 밟으면 낙엽은 영혼처럼 운다. 낙엽은 날개 소리와 여자의 옷자락 소리를 낸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가까이 오라, 우리도 언젠가는 낙엽이 되리라. 가까이 오라, 벌써 밤이 되고 바람이 분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구르몽(Remy Gourmont.. 더보기
11월-이서린 (명시감상) 명시감상 11월 이서린 낙엽처럼 불면이 쌓이는 날이 많아졌다 종종 새벽녘에 비가 흩뿌리는 날 생각보다 오래 살았다는 느낌에 유서 같은 일기를 두서없이 쓰기도 한다 가끔 안주도 없이 술을 털어 넣듯 마시다 미친 듯이 밤길을 휘적휘적 걷다가 한 사람 안에 웃고 있는 또 한 사람을 생각하다 모든 걸 게워내듯 오래오래 울기도 하는 아침이면 퉁퉁 부은 눈으로 식구들의 밥을 차리고 빨개진 눈으로 배웅을 하고 꾸역꾸역 혼자 밥 먹는, 이 슬픈 식욕 그래도 검은 커피를 위로 삼아 마당에 빨래를 넌다 조금씩 말라가는 손목은 얇은 햇빛에 맡기고 흐르는 구름을 보다 눈을 감으면 툭, 떨어지는 감나무 잎 세상은 저렇게 떠나야 하는 것 조만간 가야 할 때를 살펴야 하는 것 길어지는 그림자를 보며 지는 해는 왜 붉은가 생각하다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