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취미생활/좋은 시

자두-이상국 (명시감상)

336x280(권장), 300x250(권장), 250x250, 200x200 크기의 광고 코드만 넣을 수 있습니다.

 

 

 

 

 

 

 자두-이상국 (명시감상)

 

 

 

 

자두

 너랑 만나면 자두를 먹었다

 이건 잘 익었어, 하고 골라주면

 한 입에 넣었다가 다 삼키지 못할 씨 하나

 내 놓았지" 같이 하지 못할 내일처럼

 

 

 

오늘은 혼자서 자두를 먹다가

 익은 것을 고르던 네 손길이 그리웠다

 이제 누가 있어 잘 익은 자두를 골라줄까

 시디 신 눈물방울 내놓을 뿐

 

 

 

자두

―이상국(1946∼ )

 

나 고등학교 졸업하던 해

대학 보내달라고 데모했다

 

 

 

먹을 줄 모르는 술에 취해

땅강아지처럼 진창에 나뒹굴기도 하고

사날씩 집에 안 들어오기도 했는데

아무도 아는 척을 안 해서 밥을 굶기로 했다

 

 

 

방문을 걸어 잠그고

우물물만 퍼 마시며 이삼일이 지났는데도

아버지는 여전히 논으로 가고

어머니는 밭 매러 가고

형들도 모르는 척

해가 지면 저희끼리 밥 먹고

불 끄고 자기만 했다

 

 

 

며칠이 지나고 이러다간 죽겠다 싶어

밤 되면 식구들이 잠든 걸 확인하고

몰래 울 밖 자두나무에 올라가 자두를 따먹었다

 

 

동네가 다 나서도 서울 가긴

틀렸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그렇게 낮엔 굶고 밤으로는

자두로 배를 채웠다

 

 

 

 

내 딴엔 세상에 나와 처음 벌인 사투였는데

어느 날 밤 어머니가 문을 두드리며

빈속에 그렇게 날것만 먹으면 탈난다고

몰래 누룽지를 넣어주던 날

나는 스스로 투쟁의 깃발을 내렸다

나 그때 성공했으면 뭐가 됐을까

자두야

.......

 

행복은 돈이 되는 것일까?

 

[ 사진 제공 ]

멋쟁이 사진작가

신영헌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