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 신륵사(神勒寺) 의 일출
2014.12.18
신륵사의 일출-2014.12.18
신라 진평왕(眞平王) 때 원효(元曉)가 창건하였다고 하나 확실한 근거는 없다. 고려 말인 1376년(우왕 2) 나옹(懶翁) 혜근(惠勤)이 머물렀던 곳으로 유명한데, 200여 칸에 달하는 대찰이었다고 하며, 1472년(조선 성종 3)에는 영릉 원찰(英陵願刹)로 삼아 보은사(報恩寺)라고 불렀다.
신륵사로 부르게 된 유래는 몇 가지 설이 전해지고 있다. 그 하나는 "미륵(혜근을 가리킴)이, 또는 혜근이 신기한 굴레로 용마(龍馬)를 막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고려 고종 때 건너마을에서 용마가 나타나, 걷잡을 수 없이 사나우므로 사람들이 붙잡을 수가 없었는데, 이 때 인당대사(印塘大師)가 나서서 고삐를 잡자 말이 순해졌으므로, 신력(神力)으로 말을 제압하였다 하여 절 이름을 신륵사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고려 때부터 벽절[甓 寺]이라 불려지기도 하였는데, 이는 경내의 동대(東臺) 위에 있는 다층전탑(多層塼塔)을 벽돌로 쌓은 데서 유래한 것이다.
이 절의 중요문화재로는 보물 제180호인 조사당(祖師堂), 보물 제225호인 다층석탑, 보물 제226호인 다층전탑, 보물 제228호인 보제존자석종(普濟尊者石鐘), 보물 제229호인 보제존자 석종비(普濟尊者石鐘碑), 보물 제230호인 대장각기비(大藏閣記碑), 보물 제231호인 석등이 있으며, 유형문화재로는 극낙보전(極樂寶殿) 과 그이외의 부속건물로 구룡루(九龍樓) ·명부전(冥府殿)·시왕전(十王殿)·산신당 ·육각정 등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신륵사[神勒寺] (두산백과)
신륵사의 일출-2014.12.18
신륵사는 신라 진평왕 때 원효 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신라 시대의 유물이 전혀 남아 있지 않아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어요. 신륵사에서 가장 오래 된 건물은 정면 1 칸과 측면 1 칸의 대들보가 없는 아담한 팔작 지붕집 ‘조사당’입니다. 이 조사당에는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가 스승 무학 대사를 추모하기 위해 지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신륵사에 관해서는 이 밖에도 여러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옵니다.
고려 우왕 2년(1376년)에 경기도 양주 회암사에 머물던 나옹 선사의 ‘중생구제’설법에 감동한 중생들이 비단과 금은보화를 들고 찾아와 중창 불사에 참여했답니다. 이에 조정에서는 너무 많은 사람이 몰려드는 것을 걱정해 왕명으로 절을 폐쇄시켰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이 계속해서 몰려오자 나옹 선사에게 회암사를 떠나 밀양 형원사로 갈 것을 다시금 명했습니다.
나옹 선사는 할 수 없이 회암사를 떠나 밀양으로 가던 중 몸이 아파 이 곳에 도착, 잠시 머문 뒤 죽음을 맞았습니다. 이 때 오색 구름이 산마루를 덮는 등 신기한 일이 벌어졌는데, 이후 사찰이 번성하게 됐다고 합니다. 고려 말 불교를 크게 일으켰던 나옹화상이 신륵사에서 다비식을 치렀습니다. 그 때 나온 사리를 모은‘보제존자 석종부도’가 현재 조사당 뒤에 있지요.
신륵사는 이후 세종 대왕 서거 뒤 헌릉에 있던 능을 여주 대모산으로 옮겨 오면서 다시 한번 번성하게 됩니다. 이 때 신륵사를 영릉을 위해 기도하는 사찰로 삼았고, 절 이름도 잠시 보은사로 불려졌습니다.
또 임진왜란 당시에는 이 절의 스님들이 중심이 되어 500여 명의 승군을 조직, 일본과 맞서 싸웠습니다. 그 때 왜군에 의해 극락전을 비롯한 많은 건물이 불에 탔는데, 현종 12년(1671) 무렵부터 신륵사를 복원시켜 오늘날에 이르고 있습니다( 김남석 작가).
신륵사의 사찰 지킴이 삽살개
靑山兮要我 - 청산은 나를 보고
靑山兮要我 - 청산은 나를 보고
靑山兮要我以無語 (청산혜요아이무어)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蒼空兮要我以無垢 (창공혜요아이무구)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聊無愛而無憎兮 (료무애이무증혜)
사랑도 벗어놓고 미움도 벗어놓고
如水如風而終我 (여수여풍이종아)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靑山兮要我以無語 (청산혜요아이무어)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蒼空兮要我以無垢 (창공혜요아이무구)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聊無怒而無惜兮 (료무노이무석혜)
성냄도 벗어놓고 탐욕도 벗어놓고
如水如風而終我 (여수여풍이종아)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나옹이 위처럼 읊은 것을 뒷부분만
7언으로 옮겨 놓은 것입니다.
靑山要我生無言 蒼空請吾活無塵
解脫貪慾脫去嗔 如水若風居歸天
...................................................................................
여행에는 주제와 목적도 있어야 한다.
주제가 없는 여행은 방황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주제와 목적이 있는 여행을 할 때
열린 마음으로 만나는 것들을 통해
비로소 여행의 기쁨과 지혜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인생도 일종의 여행과 같다.
출발점이 있으면 종착점도 있다
인생도 여행도 가끔 휴식과 재충전이 필요하다
지금 당신은 어떤 여행자의 모습으로
인생길을 걷고 있는가?
(호프만 지음,
행복은 돈이 되는 것일까?
p.189)
[ 사진 제공 ]
박영근 / 김범식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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