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생활/좋은 시
입추-안도현 (명시감상)
호롱불촌장
2014. 8. 7. 21:04
명시감상
입추
안도현
이 성문으로 들어가면 휘발유 냄새가 난다
성곽 외벽 다래넝쿨은 염색 잘하는 미용실을 찾아나서고 있고
백일홍은 장례 치르지 못한 여치의 관 위에 기침을 해대고 있다
도라지꽃의 허리 받쳐주던 햇볕의 병세가 위중하다는 기별이다
방방곡곡 매미는 여름여름 여름을 열흘도 넘게 울었다지만
신발 한 짝 잃어버린 왜가리는 여태 한강을 건너지 못하고 있다
한성부 남부 성저십리(城底十里)의 참혹한 소식 풀릴 기미 없다
시 두어 편 연필 깎듯 깎다가 덮고 책상을 친다
오호라, 녹슨 연못의 명경을 건져 닦으니 목하 입추다
-안도현 시집 <북항>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