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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선교장 여행

2015.7.18

 

 

 

 

  

  선교장

 

   ○ 개요

 

선교장은 강원도 지역에서 가장 잘 남아 있는 품위있는 사대부 가옥이다. 강릉시에 경포쪽으로 4㎞ 쯤 떨어진 선교장은 조선시대 상류층의 가옥을 대표하는 곳으로, 중요 민속자료 제5호로 지정되었다. 경포호가 지금보다 넓었을 때, '배타고 건넌다'고 하여 이 동네를 배다리 마을(船橋里)이라 불렀는데, 선교장이란 이름은 바로 여기서 유래한다.

선교장은 조선 영조때(1703) 효령대군의 후손인 이내번이 족제비 떼를 쫓다가 우연히 발견한 명당 자리에 집을 지은 후, 그 후손이 지금도 살고있다. 총건평 1,051.24(318)으로, 긴행랑에 둘러싸인 안채, 사랑채, 동별당, 가묘 등이 정연하게 남아있고, 문 밖에는 수백평의 연못 위에 세워진 활래정이라는 정자가 있어, 정원까지 갖춘 완벽한 구조를 보여 준다. 선교장은 건물 뿐 아니라 조선 후기의 주거생활과 생활용구를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으며, 주변경관과 어우러진 풍치가 아름답다. 선교장의 사랑은 열화당이라하며, 여기에는 용비어천가, 고려사 등 수천 권의 책, , 그림 등이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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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채

안채는 1700년 이전에 건립된 건물로 세종의 형인 효령 대군의 10대손인 이내번이 창건한 것으로 선교장 건물 중 가장 서민적인 성격을 띠고 있으며 안방과 건너방이 대청을 사이에 두고 있으며 부엌이 안방에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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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화당(
悅話堂)
열화당은 남주인 전용의 사랑채로서 내번의 손자 후가 순조15(1815)에 건립하였으며 당호인 열화당은 도연명의 귀거래사 중 (
悅親戚之情話)에서 따왔다고 한다. 열화당은 3단의 장대석 위에 세워진 누각형식의 건물로 아주 운치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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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별당(
東別堂)
안채와 연결된 주인 전용의 별당건물로 이근우가 1920년에 지은 ㄱ자형 건물이다. 동쪽에 2, 서쪽에 1 개의 온돌방을 만들고 앞면에는 넓은 툇마루를, 뒷면과 동쪽은 좁은 툇마루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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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안채와 열화당 사이에 서재겸 서고로 사용하던 서별당이 있는데 소실되었다가 1996년에 다시 복원하였으며, 건물의 전면에는 행랑채가 있다. 또한 건물의 측면에는 원래 창고였으나 개화기때 신학문을 가르치던 동진학교(
東進學校)터가 있다.

 

 

 

천하의 명당

 

선교장은 전주 이씨 가문의 효령대군 11세손인 가선대부(嘉善大夫) 무경(茂卿) 이내번(李乃蕃, 1703~1781)이 처음 자리를 잡은 양반 주택이다. 이내번은 원래 전주에 살다가 강릉으로 옮겨와 경포대 주변의 저동에 살았는데, 어느 날 족제비 떼를 쫓다가 지금의 터를 발견했다고 한다. 시루봉에서 뻗어 내린 그리 높지 않은 산줄기와 울창한 송림이 평온하게 둘러쳐져 바람을 막는다. 왼쪽으로는 살아 있는 용의 형상으로 재화가 증식할 만하고, 오른쪽으로는 약진하려는 듯 내달린 언덕이 자손의 번창을 보이는 풍수이다. 앞에는 얕은 내가 흐르고 안산과 조산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천하의 명당이다.

이내번이 이곳에 터를 잡은 이후 가세가 크게 번창하고 여러 대에 걸쳐 많은 집들이 지어졌다. 선교장은 대문이 달린 행랑채와 안채·사랑채[
悅話堂]·별당·사당 및 연당과 정자[活來亭]까지 갖춘 완벽한 조선 사대부가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선교장의 건물 배치는 일반적으로 사대부가의 ㅁ자형 통말집의 법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스럽고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긴 행랑채 가운데 사랑으로 통하는 솟을대문과 안채로 통하는 평대문을 나란히 두어 창경궁 후원의 연경당 대문과 비슷하다. 선교장의 또다른 특징은 추운 지방의 폐쇄성과 따뜻한 지방의 개방성이 공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랑채의 높은 마루와 넓은 마당은 아주 시원한 느낌을 주며, 안채의 낮은 마루와 좁은 마당은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동해의 해양성 기후에서 오는 자연조건이 건축에도 자연스럽게 영향을 끼친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선교장 - 완벽한 사대부가의 면모 (한국의 미 산책, 2007. 11. 30., 해냄)

 

 

수령 520년 보호수 소나무 

 

 

 

 

 

 

 

 

 

 

 

 

 

 

선교장은 조선의 양반 주택이다. 전주 이씨 가문의 효령대군 11세손 이내번이 지었다. 그가 터 잡은 후 가세가 크게 번창했단다. 여러 대에 걸쳐 많은 가람이 들어선 덕에 지금은 규모가 제법 커졌다. 경포호에서 운정삼거리까지 간 다음 우회전 해 김시습기념관 지나면 선교장이다. 전통음식만들기, 다도체험, 한옥숙박체험 등도 가능하다.

활래정과 열화당은 이곳 대표 건물이니 꼭 본다. 활래정은 앞마당 인공연못에 지은 누각이다. 여름에 연꽃 활짝 피면 우아한 멋이 끝내준다. 띠살문의 고상한 멋은 물론 연꽃 없는 지금도 볼만하다. 열화당은 선교장의 사랑채다. 1815년 지어졌는데 동판으로 만든 러시아식 테라스가 이색적이다. 고색창연한 전통한옥과 서양식 테라스의 조화가 약간 어색해 보이지만 어디 가서 구경 못할 것이니 잊지 말고 관람한다. 조선말 러시아공사관 사람들이 이곳에 잠시 머물렀는데 이 동판 테라스가 이에 대한 보답의 선물이란다
.

창고였던 자미재, 집안일 돕던 여인들의 숙소 연지당, 안방마님 거주하던 안채, 손님 머물던 별당, 그리고 행랑채와 열화당 후원 정자인 초정까지. 조선 사대부가 둘러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힘겨우면 가람들 툇마루에 앉아 봄볕 만끽하며 쉬어간다. 고즈넉함에 기분 참 상쾌해진다
.

선교장 둘레길도 걸을 수 있는 만큼 걸어본다. 선교장 주변 야트막한 산을 에두르는 길인데, 길 주변의 아름드리 소나무가 아주 멋지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위로 쭉쭉 뻗은 자태가 꽃 못지않게 화려하다. 높이 23m에 수령이 520년 된 소나무도 있다. 이거 보면 한철 사는 꽃 본 것 보다 여운 오래간다.

 

 

자미재

 

 

 

 

 

 

 

 

 

 

 

 

 

 

 

 

 

 

 

가승음식 체험관

 

 

 

 

 

 

 

 

 

 

 

 

* 활래정(活來亭)


활래정은 선교장 정원에 판 인공 연못 위에 세운 정자로 순조16(1816) 열화당을 세운 다음해에 세웠다. 정자명은 주자의 시 (관서유감) "
爲有頭源活水來" 에서 땄다고 한다. 이 건물은 마루가 연못 안으로 들어가 돌기둥으로 받친 누각형식의 ㄱ자형 건물이다. 활래정은 벽면 전부가 분합문의 띠살문으로 되어 있으며 방과 마루를 연결하는 복도옆에 접객용 다실이 있다.


 

 

 

 

 

 

 

 

 

 

활래정 다실 다도 체험장

 

 

 

 

 

 

 

 

 

 

 

 

 

 

 

 

 

 

 

 

 

 

 

 

선교장 숙소

 

 

 

 

 

 

 

 

 

 

 

 

 

 

 

 

행랑채

 

 

 

 

 

 

 

 

선교장 숙소

일박에 7만원

 

 

 

 

 

 

 

 

 

 

 

 

 

 

 

 

 

 

 

 

다리가 떨릴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참지 말고

가슴이 떨릴 때

더 넓은 세상으로 여행을 떠나자

   

그리하면

힐링이라는 값진 선물이 주어질 것이다

켜켜이 쌓인 내 절망의 찌꺼기는 어느새

다 사라져버리고

새로운 희망에 벅차서

다시 일터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이제

내 가족 내 이웃을 더 열심히 사랑하고

더 큰 열정으로 즐겁게 일을 하는

큰 가슴이 되어

새로운 일상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가슴이 떨릴 때 여행을 떠나자!!

 

 

Posted by 호롱불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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