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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 손곡( 손골)의 지명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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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 손곡( 손골)의 지명 유래

 

 

상손곡 (上蓀谷)

 

손곡 손골이라고도 하는데 ()은 창포나 란과 같은 식물을 말하므로 손초(蓀草)가 자생한 골이라는 데서 연유된 지명인 것으로 추측된다. 아랫손골 위쪽에 마을이 이루어 졌다하여 위손골, 상손골 등으로 불리워진다.

 

중손곡 (中蓀谷)

상손곡과 하손곡 중간에 마을이 형성되었으므로 중손곡이라 칭하게 되었다.

 

하손곡

마을이 위 아래에 형성되어 있어 윗마을을 상손곡 아랫마을을 하손곡이라 하였다. 본래 용인현의 수진면(水眞面)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을 개편시 손기동(遜基洞), 고분현(古分峴)을 합쳐 고기리라 하였다. 집이 한 채도 없고 집터만 남았으나 고기리가 무공해 청정지역으로 주목 받기시작하더니 별장과 민가가 늘어가고 있다.

 

 

 

 

 

머 내 (險川)

읍지, 기타 지리지등을 보면 옛지명에 험천 또는 험천점(險川店)으로 표기된 지명이 있다. 우리나라 말의 고어(古語) "머흐다"라는 말이 있는데 머흐다는 험하다는 뜻이며 " "는 천()을 뜻하므로 한자의 의역하면 험천이 된다. 따라서 험천의 한자표기 지명을 우리말로 쓸 때는 머흔천이 되고 이것이 속음 탈락되면서

먼천 또는 머내, 모내로 변형된 것인데, 다시 한자로 의역하여 원천(遠川)으로 표기하기도 하였다.따라서 본래의 표준 지명은 머흔천, 한자로는 험천이라 표기하는 것이 적합한 지명이다

 

 

손골성지는 경기도 용인 동천동에 위치한 천주교 성지다. 풀이 많고 난초가 무성한 향기로운 골짜기라는 뜻의 손곡(蓀谷)에서 현재 손골의 이름이 유래했다고 전해진다. 손골은 천주교 신자들의 마을, 성교촌으로 불렸으며 이요한과 그의 아들, 손자에 이르기까지 삼대가 이곳에서 머무르다 병인박해 때 피신했다고 한다. 또한 1865년 조선에 입국, 손골에서 선교활동을 펼쳤던 성 도리 헨리코 신부는 포졸들에게 체포되어 27세의 나이로 새남터에서 순교하기도 했다. 1839년 기해박해를 피해 숨어든 신자들이 교유촌을 이루고 모여살기 시작했으며 1866년 병인박해 당시에는 그 수가 10여 호 정도였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집단 거주지가 형성된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다. 천주교 성지로 이름을 알린 것은 프랑스 파리 외방 전교회 소속 선교사들의 전교 유적지로 알려진 것 때문이었다. 현재 손골성지는 경기도 수원의 북쪽과 경기도 용인의 서쪽에 걸쳐 있는 광교산의 깊은 골짜기 안 족에 위치하고 있으며, 한국순교자연구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