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 야행(貞洞 夜行)
'정동 야행'은 오후 6시부터 10시까지 풍운과 애환의 근현대사 현장인 정동의 이모저모를 느끼자는 행사다. 서울에 정동만큼 작은 길 하나 땅 한 조각에도 역사의 숨결이 배어 있는 곳은 드물다. 정동에는 고종 아관파천(俄館播遷), 을사늑약의 아픈 흔적이 남아 있다. 러시아 공사관 터, 구세군 중앙회관, 배재학당, 정동제일교회 같은 근대의 새벽을 알린 문화유산도 즐비하다.
서울 중구 정동 10-1번지. 주한 미국대사관저는 1970년대 미국대사를 지낸 필립 하비브의 이름을 따서 ‘하비브 하우스’라 불린다. 1884년 조선 왕실이 서양인에게 매각한 최초의 부동산이자 미국 정부가 해외에 갖고 있는 공관 중 가장 오래된 곳이다. 이끼와 담쟁이가 덮인 높은 담장에 둘러싸인 탓에 관저를 실제로 본 이는 드물었다. 한국 근대사의 숨결이 배어 있는 이곳이 일반 시민들에게 최초로 공개된다. 오는 29일부터 이틀간 열리는 정동길 첫 야간축제인 ‘정동야행(貞洞夜行)’에서다.
주한 미국 대사관저는 한국의 전통 건축양식을 따라 지은 건물이다. 이번 축제에선 거주 공간을 제외하고 옛 공사관과 정원만 공개된다. [사진 서울 중구청]
행사 기간 미국대사관저를 비롯해 덕수궁과 성공회 서울성당, 정동제일교회, 서울역사박물관 등 20개 문화시설이 오후 10시까지 개방된다. 정동길 체험부스에선 전통한지로 조족등(照足燈·조선시대 포졸이 밤에 순찰할 때 쓰던 등)을 직접 만들어볼 수 있다. 조족등을 든 사람은 덕수궁에 무료로 입장시켜준다. 인력거 끌기와 거리 마당극, 파이프오르간 연주회 등 다양한 문화체험 프로그램도 준비돼 있다.
행사를 주관한 중구청은 덴마크 코펜하겐의 ‘컬처 나이트(Culture Night)’를 벤치마킹했다. 컬처 나이트는 20년 넘게 이어지며 덴마크의 대표 관광상품으로 자리잡았다. 최창식 중구청장은 "중국어·영어·일어가 가능한 안내 도우미를 배치해 외국인들도 축제를 즐길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역 특색을 살려 개성 있는 축제를 여는 자치구는 중구뿐만이 아니다. 서대문구의 ‘신촌 물총 축제’는 자치구 축제의 대표적 성공사례다. 지난해 2만5000여 명이 참여해 “구청 축제는 시시하다”는 인식을 깨뜨렸다. 홍대 거리에 밀리고 있는 신촌에 ‘키덜트(kidult·아이의 감성을 지닌 어른)’, ‘레저’ 등 20~30대의 트렌드를 정확히 읽은 축제라는 분석도 나온다. 서대문구청 측은 “올 7월 열리는 행사는 워터슬라이드와 에어바운스를 추가로 설치해 대형 워터파크 못지 않은 규모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오는 23일 열리는 제19회 서울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SICAF)도 주목받고 있다. 국내에서 가장 큰 규모의 만화축제로 서울광장으로 행사장을 확대했다. 세계 5대 애니메이션 영화제로 꼽히는 ‘SICAF 영화제’에선 ‘러브레터’로 국내에 잘 알려진 이와이 슌지 감독의 첫 장편 애니메이션 ‘하나와 앨리스:살인사건’을 개막작으로 상영한다.
중랑구는 29일부터 사흘간 ‘서울장미축제’를 연다. 중랑천 둔치를 따라 1000만여 송이의 장미를 심은 5.2㎞ 길이의 터널이 장관이다. 장미쿠키·장미솜사탕 등을 판매하는 ‘장미마켓’, 꽃과 장미를 주제로 한 노래 경연대회인 ‘장미가요제’도 즐길거리다. 17일 성북구 성북동 거리 일대에서 열리는 ‘세계음식축제’에선 25개국 90여 가지 세계 음식들을 맛볼 수 있다. 15~17일 용산구 이태원에선 클래식 연주회와 고미술사 강연과 함께 최대 80%까지 할인된 가격에 유럽산 중고가구를 살 수 있는 ‘앤틱 페스티벌’이 진행된다.
(2015.5.15 중앙일보 장혁진 기자, 김지은(인하대 건축학) 인턴기자 analog@joongan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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